코로나에 신음하는 자영업자들…월매출 3400만원→140만원 ‘뚝’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1.01.15 12:00
  • 호수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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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시 한 필라테스학원의 회계보고서…정세균 총리의 연민은 “악어의 눈물”

유명 헬스 트레이너이자 유튜버 ‘핏블리’로 활동 중인 문석기씨(31). 그는 1월8일 운영 중인 헬스장 네 곳 중 한 곳을 폐업하겠다고 알렸다. 정부의 계속된 운영 중단 지침에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문씨는 “모든 운동기구를 50만원에 팔겠다”면서 전액 기부 의사를 밝혔다.

인터넷에선 ‘우려 섞인 찬사’가 쏟아졌다. 기구 가격을 고려하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란 이유에서다. 문씨가 팔기로 한 기구는 벤치, 바벨 등을 포함한 듀얼렉 세트다. 이 중 바벨을 걸어놓는 보조기구 듀얼렉 하나만 160만원(신품 기준)에 달한다. 한 세트로 따지면 400만원이 넘는다. 이들 기구 대여·구입비는 헬스장 수익을 갉아먹는 매몰비용이다. 게다가 문씨는 “매장 임차료만 총 4000만원”이라고 털어놓은 바 있다.

지난해 12월8일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된 지 한 달이 넘었다. 그동안 집합금지 명령으로 헬스장과 필라테스학원 등 실내체육시설이 일제히 문을 닫았다. 결국 이달 초 업계 권익단체를 중심으로 반발이 일었다. 이후 정부는 1월12일 “수도권 실내체육시설에 대한 단계적 영업 재개 방침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적용 시점은 거리 두기 2.5단계가 끝나는 1월17일 이후다. 그러나 업계에선 “이미 복구하기 힘든 타격을 입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구로구 피트니스센터 ‘어반필드’의 남승준 대표(36)가 텅 비어 있는 센터와 필라테스룸을 보여주며 적자누적과 정부의 조치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17일부터 영업 재개? “이미 복구 불능 타격”

헬스장 운영업은 초기 투자비용이 비교적 많이 필요한 업종이다. 아무리 소규모라도 기구 마련에만 최소 ‘천만원’ 단위의 돈이 들어간다. 또 기구들의 부피가 크다 보니 수용 공간도 넓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임차료도 늘어난다. “매달 적자가 수천만원”이란 업계 종사자들의 호소가 허튼 주장이 아닌 배경이다. 시사저널은 실내체육시설 운영자들로부터 회계장부를 입수해 세부 적자 내역을 따져봤다.

남승준씨(36)는 서울 구로구 피트니스센터 ‘어반필드’를 운영하는 법인 대표다. 이곳에 있는 헬스 기구는 트레드밀(러닝머신) 12대와 사이클 5대, 웨이트 머신 24대 등 총 41대다. 가장 비싼 멀티렉은 310만원짜리다. 또 각종 벤치와 덤벨, 바벨, 중량원판 등도 용도별·무게별로 갖춰져 있다. 그 외에 필라테스 기구도 종류별로 16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운동기구를 사들이는 데 총 1억6180만원이 들어갔다.

기구가 많고 호텔 분위기를 연출하려다 보니 면적은 390평으로 꽤 큰 편이다. 이를 위해 건물 보증금 2억원과 인테리어 비용 2억7500만원이 들어갔다. 여기에 부동산 중개수수료(640만원)와 용도변경 비용(300만원) 등까지 더하면 약 6억4000만원이란 금액이 산출된다. 여기까지가 오픈 전에 들어간 초기 투자비용이다.

남승준 대표는 “초기 비용은 법인을 통해 투자받은 자금에서 지출해 대출을 받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아직 빚 상환의 압박은 없지만, 지출액은 점점 불어날 전망이다. 남 대표는 당초 지난해 12월14일 오픈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연말연초는 헬스장 성수기로 통한다. 그러나 오픈을 불과 6일 앞두고 집합금지 명령이 떨어지면서 모든 계획이 뒤로 밀렸다.

“수입 0원, 비용 2700만원…벌금 내며 영업”

일단 가장 큰 부담은 2000만원의 월세다. 여기에 관리비 300만원이 붙는다. 마케팅과 홈페이지 관리 등 영업비용도 400만원씩 나간다. 또 보안 시스템 유지비(19만원)와 회원관리 시스템 유지비(9만원), 인터넷·TV 수신료(6만원), 정수기 렌털료(6만원) 등으로 40만원을 내고 있다. 이러한 고정비용은 총 2740만원이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인건비 부담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남 대표는 “오픈을 못한 상황이지만 트레이너들에게 급여를 주며 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픈 전까지 지급한 인건비는 1인당 100만원. 고용 직원이 7명이니 총 700만원이다. 고정비와 합하면 3440만원. 이는 ‘개점휴업’ 상태의 헬스장에 고스란히 적자로 남았다. 남 대표는 “성수기를 놓쳐 잃어버린 기회비용을 감안하면 눈에 안 보이는 적자 폭은 더 크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개인사업자 김민구씨(31)는 서울 용산구에서 40평짜리 헬스장을 운영하고 있다. 2018년에 권리금 없이 인수해 초기 비용은 많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지난 1월4일 헬스장 문을 열었다. 집합금지 명령 위반으로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는 행위다.

김씨는 그러나 “벌금을 받고도 영업하는 게 더 이득”이라며 “벌금을 어떻게 내는지 내가 먼저 문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방역수칙 존중 차원에서 그동안 영업 중단 명령을 철저히 지켜왔지만, 일관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오락가락 정책에 지쳤다”며 목소리에 날을 세웠다.

김씨는 헬스장 고정비용으로 월 600여만원을 쓰고 있다.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부분은 공과금을 포함한 임차료 500만원이다. 또 전기·가스·수도요금 100만원, 인터넷·TV수신료 9만원, 정수기 렌털료 3만원 등이 나간다. 다음 달부터는 대출금 상환 이자로 70만~80만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 김씨는 “작년 11월에 연말연초 성수기를 노리고 새 기구를 1500만원에 구입했는데 모두 소용없게 됐다”고 탄식했다.

필라테스학원도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경기 김포시에서 100평 규모의 ‘여우공간 필라테스’를 운영하는 김윤미 대표(37)는 지난해 12월 신규 회원을 단 한 명도 유치하지 못했다. 기존 회원 3명이 재연장을 신청해 벌어들인 144만원이 매출의 전부였다. 매출 3424만원을 올린 2019년 12월과 비교하면 3000만원 넘게 줄어들었다.

그사이 고정비용은 속절없이 빠져나갔다. 세부 내역은 △임대료 503만원 △관리비 80만~100만원 △대출금 상환액 80만원 △정수기 렌털료 30만원 △보안 시스템 유지비 22만원 △세무 기장료 14만원 △통신비(인터넷) 12만원 등이다. 또 김 대표는 필라테스 기구를 리스 운용하고 있어 매달 88만원이 고정비에 포함된다. 최근에는 자동 발열체크기도 설치해 렌털료를 4만원씩 내고 있다. 모두 합하면 833만~1033만원이다. 여기에 인건비(400만원)를 더하면 지난해 12월 적자는 최소 1200만원 이상으로 예상된다. 김 대표는 서울 광진구에서도 매장을 운영 중인데, 크기는 작지만 적자액은 비슷하다고 한다.

김 대표는 상호명과 운영 노하우를 프랜차이즈 법인에 공유해 주고 있다. 현재 같은 이름으로 영업 중인 필라테스학원은 수도권에 11곳 있다. 김 대표가 운영하는 김포 지점은 이 중 매출·규모 면에서 1위였다고 한다. 김 대표는 “다른 지점의 피해도 심각한 상황”이라며 “다른 브랜드 중에서 가게를 내놓은 곳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완전히 정상영업에 돌입한다 해도 흑자 전환은 쉽지 않다. 헬스장과 필라테스 등 실내체육시설은 대부분 회원제로 운영된다. 기간 또는 횟수를 정해 놓고 돈을 받는다. 기존 회원이 재등록하거나 신규 회원이 유입되지 않는 한 매출은 발생하지 않는다. 집합금지 명령으로 문 닫은 일수를 회원권 이용기간에서 빼기도 곤란하다.

이 와중에 소비자가 환불을 요구하면 따라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천재지변이 닥쳐도 마찬가지다. 환불을 안 해 주고 버티거나 ‘먹튀’ 하면 소송에 휘말릴 각오를 해야 한다. 김윤미 대표는 “식당은 폐업해도 자신만 손해 보면 되지만 체육시설은 문 닫으면 다수에게 피해를 끼쳐 마음대로 폐업할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시행으로 영업이 정지된 ‘여우공간필라테스’ 김포운양점 ⓒ시사저널 이종현
여우공간 필라테스 김포운양점 미납세금 독촉장과 마이너스를 기록한 수익계산표 ⓒ시사저널 이종현

아동 헬스 허용에 “아동 0명” 분개

실내체육시설 운영자들의 힘든 사연은 정세균 국무총리 귀에도 들어갔다. 1월8일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국회 현안질문에서 인천 한 헬스장 운영자의 상황을 언급했다. 배 의원은 “헬스장의 임차료 800만원 등 고정지출이 월 1200만원”이라며 “그런데 정부 도움은 대출지원과 공과금 납부기한 연장, 지원금 300만원이 전부”라고 했다. 이를 들은 정 총리는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였다. “충분히 이해되고 역지사지를 해 보면 얼마나 힘들까 눈물이 난다”는 것이다.

바로 이날부터 정부의 완화된 집합금지 조치가 시행됐다. 업계에선 “농락당했다. 총리의 연민은 악어의 눈물”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새 조치의 시행 조건에 현실성이 없기 때문이다. 해당 조건은 아동과 학생 대상으로 9인 이하일 때만 헬스장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김민구씨는 “수능 끝난 학생들이 몰릴 거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라며 “우리 헬스장에 청소년 회원은 단 한 명도 없다”고 꼬집었다. 남승준 대표는 “형평성만 고려하고 실효성은 배제한 탁상공론식 조치”라고 지적했다.

영업 재개 방침이 발표될 1월17일 이후에는 달라질까. 시사저널이 접촉한 업계 종사자들의 예상은 긍정적이지 않았다. 필라테스·피트니스사업자연맹(PIBA) 박주형 대표는 “나이 제한 정도만 풀어주되 평당 수용 인원을 정해 줄 것 같다”며 “밤 9시 영업 제한도 안 풀릴 것 같다”고 내다봤다. 서울시 마포구에서 ‘오픈시위’를 하고 있는 헬스장 운영자 정태영씨의 예상도 비슷했다. 정씨는 “(영업 재개 방침이) 기대에 못 미치면 집단행동에 참가할 의향도 있다”며 “어쨌든 완전 정상 영업이 허락될 때까지 시위는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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