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업무폰 인계 문제없다”는 서울시 주장, 사실일까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1.01.25 10:00
  • 호수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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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측 “업무폰은 성추행 범죄의 증거물...유족에 인계는 조직적 증거인멸”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업무용 휴대폰은 의혹의 실타래를 풀어줄 ‘스모킹건’으로 꼽힌다. 이 업무폰의 인계 과정을 두고 “증거인멸”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는 “절차상 문제 없다”는 입장이지만, 그 ‘절차’가 무엇인지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박 전 시장의 업무폰을 경찰로부터 전달받아 2021년 1월5일 유족에게 건네줬다. 유족 측의 요청에 따라 박원순 이름으로 명의 변경한 상태였다. 시 관계자는 1월15일 언론에 “통상 근무와 함께 본인 소유의 기기를 서울시 명의로 이전하고 통신요금 등을 지원받다가 퇴직 시에 본인 명의로 다시 이전해 주는 내규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박 전 시장은 ‘퇴직’한 게 아니다. 임기 도중 피고소인 신분 상태에서 사망했다. 성추행 피해자의 고소장이 접수된 건 지난해 7월8일이고, 박 전 시장이 숨진 건 그다음 날이다. 이 경우에 퇴직을 전제로 한 내규를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서울시 정보공개시스템(서울정보소통광장)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업무용 휴대폰 명의가 변경된 경우는 ‘퇴직’ 또는 ‘인사이동’뿐이었다.

2020년 7월13일 서울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재련 변호사가 박원순 시장이 피해자에게 보냈다는 텔레그램 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했다.ⓒ연합뉴스
2020년 7월13일 서울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재련 변호사가 박원순 시장이 피해자에게 보냈다는 텔레그램 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했다.ⓒ연합뉴스

“유족 인계 내규 따른 것”…‘내규’ 묻자 답변 안 해

무엇보다 업무폰 운용에 관한 내규의 존재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 서울시 결산물품팀 관계자는 “휴대폰에 관한 단일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 조례’ 역시 물품 종류를 세부적으로 구분해 놓지 않고 않다. 이 조례는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공유재산법)’을 따르게 돼 있다. 행정안전부 회계제도과 관계자는 “공유재산법은 물품 전반에 적용되는 것”이라며 “휴대폰 등 특정 물품에만 적용되는 운용 지침을 따로 두고 있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문제의 업무폰이 박 전 시장의 소유 물품이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1월19일 업무폰에 대해 “서울시가 개통해 기기 대금과 이용요금을 서울시가 납부하고 있었다”면서 “서울시의 물품”이라고 지적했다. 공유재산법에 따르면 지자체가 공유물품을 처분하는 경우 네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지자체 전체의 이익에 맞도록 할 것 △취득과 처분이 균형을 이룰 것 △공공가치와 활용가치를 고려할 것 △투명하고 효율적인 절차를 따를 것 등이다.

시사저널은 서울시청 내 업무폰 운영·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통신관리팀 관계자에게 1월18일부터 나흘간 10여 차례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이메일을 보냈으나 읽고도 답장이 없었다. 통신관리팀 팀장 역시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성추행 피해자 측은 “업무폰은 강제 추행,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통신매체이용음란 혐의 입증 과정의 증거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전 국민이 실체적 진실을 향한 수사를 주목하고 있어 반드시 포렌식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족에게 넘어가자 각계에서 즉각 반발이 일었다.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는 “조직적 증거인멸 행위”라고 주장하며 “서울시는 공무원인 피해자를 보호하고 피해 구제를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가세했다. 그는 “광범위한 2차 가해가 벌어졌던 점을 생각해 볼 때 서울시 소유인 휴대전화를 이런 식으로 유족에게 넘긴 것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 꼬집었다.

 

검·경, 업무폰 일부만 보고 수사 접었다

검찰과 경찰, 그리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유가족. 지금까지 박 전 시장의 업무용 휴대폰을 들여다본 사람 혹은 기관들이다. 이 중 검찰·경찰은 포렌식을 통해 업무폰의 정보를 한 차례 훑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범죄 무혐의’ 또는 ‘내사 종결’이었다. 업무폰이 유족에게 넘어간 지금은 압수수색 영장을 다시 발부받지 않는 한 열어 볼 수 없다. 서울시 측은 “이미 수사기관에서 들여다봤기 때문에 유족에게 반환한 건 증거인멸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박원순 전 시장이 숨진 지 10여 일 뒤인 2020년 7월22일, 경찰은 사망 경위 파악을 위해 업무폰 포렌식에 착수했다. 포렌식은 크게 △획득 △분석 △선별 등 세 절차로 이뤄진다. 이 중 획득을 위한 주요 작업이 원본 기기의 데이터를 통째로 복사하는 ‘이미징(imaging)’이다. 경찰은 내부 훈령에 따라 유족이 참관한 가운데 이미징 작업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유족 측이 “포렌식을 중단해 달라”며 준항고 및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이에 포렌식 절차는 분석 단계를 앞두고 중단됐다. 그러다 12월9일 법원이 준항고를 기각하며 포렌식의 길이 다시 열렸다. 단 조건이 있었다. 분석 범위를 ‘사망 시각과 근접한 때’로 제한한 것이다. 사망 경위 파악을 위해 일부만 확인하라는 취지다. 경찰은 분석 범위가 제한된 가운데 업무폰의 이미징 파일을 다시 조사했다. 그 결과 12월29일 “변사 사건은 범죄 관련성이 없어 내사 종결할 예정”이라는 발표를 내놓았다.

그 외에도 업무폰을 들여다보려고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앞서 경찰은 7월14일 업무폰을 포함한 박 전 시장의 휴대폰 3대에 대해 통신영장을 신청했다. 법원은 “강제 수사 필요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이후 경찰은 12월14일 업무폰에 대해 다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서울시 직원 성추행 방조’ 혐의 수사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업무폰과 혐의가 직접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또 기각됐다.

그 사이 검찰이 나섰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성추행 피소 사실 유출 의혹을 파악하고자 별도 영장을 청구했다. 영장을 발부받은 검찰은 유족 측 참관하에 업무폰을 포렌식했다. 이때의 포렌식 범위는 수사 중인 의혹 관련 내용으로만 한정됐다. 검찰은 포렌식 결과를 밝히지 않았다. 이후 12월30일 “피고발인들이 피소 사실을 유출한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어 모두 불기소(혐의 없음) 처분한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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