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영 의원 “정치적 동지로부터 존엄 훼손…충격과 고통”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1.2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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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문 통해 심경 밝혀…“여러 공포와 불안 마주”
“‘피해자다움’ 존재하지 않아…일상으로 돌아갈 것”
장혜영 정의당 의원 ⓒ 연합뉴스
장혜영 정의당 의원 ⓒ 연합뉴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김종철 당 대표의 성추행 사건 피해 사실을 밝히며 "젠더폭력 근절을 외쳐왔던 정치적 동지이자 마음 깊이 신뢰하던 당 대표로부터 평등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훼손당하는 충격과 고통은 실로 컸다"는 심경을 밝혔다. 

장 의원은 25일 김 대표가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며 전격 사퇴를 발표한 직후 입장문을 내고 "가해자는 모든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하며 모든 정치적 책임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저는 오늘 이 글을 통해 제가 이번 사건의 피해자임을 밝힌다"며 이같이 말했다. 

장 의원은 "(김 대표로부터) 훼손당한 인간적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저는 다른 여러 공포와 불안을 마주해야 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고 공개적인 책임을 묻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것이 저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자, 제가 깊이 사랑하며 몸담고 있는 정의당과 우리 사회를 위하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설령 가해자가 당 대표라 할지라도, 아니 오히려 당 대표이기에 더더욱 정의당이 단호한 무관용의 태도로 사건을 처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만일 피해자인 저와 국회의원인 저를 분리해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영원히 피해사실을 감추고 살아간다면, 저는 거꾸로 이 사건에 영원히 갇혀버릴 것이다. 그렇기에 저는 제가 겪은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 문제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지고자 한다. 그렇게 정치라는 저의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피해자다움'을 언급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다움'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며 "피해자는 어떤 모습으로나 존재할 수 있다. 저는 사건 발생 당시부터 지금까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사람들은 저의 피해를 눈치채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해자의 정해진 모습은 없다. 그저 수많은 '피해'가 있을 뿐이다. 피해자는 여러분 곁에 평범하게 존재하는 모든 여성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 의원은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바로 ‘가해자다움’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며 "성폭력을 저지르는 사람은 따로 정해져있지 않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현재 일어나는 성범죄의 98%가 남성들로부터 저질러지며 그 피해자의 93%는 여성들이라는 사실이다. 누구라도 동료 시민을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데 실패하는 순간, 성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그가 아무리 이전까지 훌륭한 삶을 살아오거나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없다"고 덧붙였다. 

장 의원은 정치권을 포함해 연이어 발생하는 '미투' 사건을 끊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 개선과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토록 그럴듯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남성들조차 왜 번번이 눈앞의 여성을 자신과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것에 이토록 처참히 실패하는가. 성폭력을 저지르는 남성들은 대체 어떻게 해야 여성들이 자신과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마땅한 존재라는 점을 학습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물으며 "우리는 이 질문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답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장 의원은 "끝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가해자의 사실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죄, 그리고 책임을 지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라며 "가해자 스스로가 이를 거부한다면 사회가 적극 나서서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피해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처절히 싸우고 있다"며 "모든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 우리는 반드시 함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김 대표는 이날 장 의원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자 당 대표직에서 전격 사퇴했다. 정의당 젠더인권본부장인 배복주 부대표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당원과 국민 여러분에게 매우 부끄럽고 참담한 소식을 알리게 됐다"며 "지난 1월15일 김종철 대표의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고 피해자는 당 소속 국회의원인 장혜영 의원"이라고 밝혔다.

배 부대표는 "김 대표가 지난 15일 저녁 여의도에서 장 의원과 당무 면담을 위해 식사 자리를 가진 뒤 나오는 길에 성추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며 "장 의원은 고심 끝에 18일 젠더인권본부장인 저에게 해당 사건을 알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후 여러 차례 피해자, 가해자와의 면담을 통해 조사를 진행했고 가해자인 김 대표 또한 모든 사실을 인정했다"며 "이 사건은 다툼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성추행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정의당 김종철 대표가 20일 오전 국회에서 신년 기자회견에서 머리를 만지는 모습 ⓒ 시사저널 박은숙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1월20일 오전 국회에서 신년 기자회견에서 머리를 만지는 모습 ⓒ 시사저널 박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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