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격차 완화됐지만 자산 불평등은 심해졌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2.04 14:00
  • 호수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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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성장 3년 반의 평가…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정책 성과 반감

대통령의 신년사에는 없었다. 기자회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말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지난해 말에는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의 홍장표 위원장도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홍장표 전 위원장은 이 정부의 첫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시작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정부의 간판 정책을 설계했고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한 주요 정책 논쟁의 중심에 섰던 사람이다. 물론 청와대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정책의 전환이나 포기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혁신적 포용국가’라는 용어에 소득주도성장의 내용이 모두 담겨 있다는 것이다.

사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이 정부의 상징과도 같다. 취지는 내수 주도, 중소기업 중심의 성장이었다. 임금 인상과 가계소득 증대, 사회복지 확충을 통해 불평등을 개선하며 동시에 성장도 이루겠다는 목표였다. 소득주도성장의 성과에 대한 평가는 곧 현 정부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다. 정부에 비판적인 이들은 소득주도성장이 성장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분배도 망쳤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쯤에서 정책의 성과를 정리해 보자.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이 2019년 12월3일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 호텔에서 열린 소득주도성장 국제컨퍼런스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이 2019년 12월3일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 호텔에서 열린 소득주도성장 국제컨퍼런스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노동소득분배율, 역대 최고 수준

우선 소득주도성장은 정말로 분배를 악화시켰을까.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는 노동소득분배율이다. 노동소득분배율은 국민소득 중에서 자본소득을 제외하고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로 일종의 분배 지표다. 노동소득분배율은 2017년 62.0%에서 2018년 63.5%, 그리고 2019년 65.5%로 계속 높아지고 있다. 65.5%는 한국은행이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5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물론 한 가지 지표만으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게다가 사실 따지고 보면 노동소득분배율은 현 정부 출범 이전부터 높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지표를 봐도 소득분배가 개선되었다는 주장은 근거가 있다. 예를 들어 소득이 불균등할수록 1에 가깝고 균등할수록 0에 가까워지는 처분가능소득 기준 지니계수는 2018년과 2019년에 각각 0.345, 0.339로 역대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전체 가구별 소득 중간값의 절반에 해당하는 ‘상대적 빈곤선’에 소득이 못 미치는 비율도 2018년과 2019년에 각각 16.7%, 16.3%까지 낮아졌다. 2016년에는 상위 20%가 하위 20%보다 소득을 6.98배 더 많이 올렸지만 2018년에는 6.54배, 2019년에는 6.25배로 작아졌다.

노동시장 내의 임금 불평등도 줄어들었다. 고용 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위임금 3분의 2 미만의 임금을 받는 저임금노동자 비율이 2017년 22%에서 2019년에는 17%로 감소했다. 시간당 임금의 지니계수도 2017년 0.316에서 2019년 0.299로 하락했다. 어떤 지표를 봐도 소득주도성장은 소득 또는 임금 부분에서는 제한적이지만 성과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평가에는 많은 지적이 따른다. 무엇보다 오로지 최저임금 인상과 정부의 재정지출로 만들어낸 결과라는 점이다.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운 정부는 저소득층 소득 보전에 집중했다. 일자리를 만들었고, 최저임금을 대폭 올렸으며 각종 지원을 늘렸다. 재정지출을 통한 일자리 창출, 각종 복지 수당을 통한 공적이전소득 강화 정책은 확실히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소득주도성장은 가계소득 증대, 사람에 대한 투자, 사회안전망과 복지 확대라는 3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수요 측면에서 가계 소비의 증가는 기업 성장과 투자로 이어지고, 공급 측면에서 사람에 대한 투자와 복지 확대로 안정적인 인적 역량 강화를 도모하며, 노동시장 안에서 노동자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기대했던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성장에서 민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었다. 2017년과 2018년에는 실질경제성장률에 대한 민간 기여도가 각각 2.5%포인트와 2.1%포인트로 전체 경제성장률의 70~80%를 민간부문이 견인했지만 2019년의 민간 기여도는 0.4%포인트에 그쳐 성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로 낮아졌다. 반면 정부 기여도는 1.6%포인트로 80%에 이르렀다. 정부의 재정지출로 유지한 성장이었다는 뜻이다.

빈곤층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점도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을 합한 빈곤층은 오히려 늘어났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216만여 명이던 빈곤층은 2018년 말 229만여 명, 2019년 말에는 243만여 명, 그리고 지난해 10월에는 처음으로 270만 명을 넘어섰다. 정부가 저소득층 지원 확대를 위해 중위소득 기준을 올린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소득층의 일자리가 줄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임시직과 일용직 일자리는 매년 11월을 기준으로 2017년 662만 개에서 2018년 652만 개, 2019년 636만 개, 2020년 615만 개로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자산의 불균형이다. 소득은 경제활동의 대가다. 자산은 소득을 모아 이룬 결과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소득 불균형이 잡히면 자연스레 소득을 축적한 자산의 격차도 좁힐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다르다. 자산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뛰면서 격차가 커지기 시작하면 정부가 억지로 저소득층의 소득 수준을 높여준다고 해도 양극화를 줄일 수 없다.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순자산 지니계수는 지난해 3월말 기준 0.602다. 이는 2013년 이후 7년 만에 최고치다.

 

재정지출에 의한 성장과 고용 유지엔 한계

순자산 지니계수는 2017년을 기점으로 상승하고 있다. 자산 격차가 다시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지표의 한계를 고려하면 현실의 자산 불평등은 더욱 심각할 것이다. 자산 불평등 확대의 가장 큰 이유는 부동산 가격 급등이다. 국부와 순국민소득의 배율이 2017년 9.5에서 2019년 10.7로 크게 높아졌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소득과 비교해 그만큼 자산 가격이 많이 상승했다는 얘기다. 문제의 해결은 앞으로도 쉽지 않다. 정부가 애써 줄인 소득 격차는 코로나19 이후 다시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소득주도성장의 원형은 국제노동기구(ILO) 같은 곳에서 대안적 성장모델로 제시한 임금주도성장(Wage-led growth)이다. 아직 최종적인 결론이 내려졌다고 하기는 어렵다. 연구 결과는 여전히 엇갈린다. 하지만 지난 3년6개월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성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평가가 가능하다. 제한적이지만 소득 격차 완화의 효과는 있었다. 그러나 자산 불평등의 확대로 의미는 반감됐다. 무엇보다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데는 실패했다. 성장은 경제학 원론에 나오는 대로 결국은 요소의 투입을 늘리거나, 생산성을 높여야 가능하다. 생산성 제고가 없는 임금 인상은 장기적으로 성장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구조개혁은 외면한 채, 재정지출로만 성장과 고용을 오래 유지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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