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투’ 동학개미는 ‘K양극화’의 역설적 결과물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1.02.15 10:00
  • 호수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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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격차 속 사라진 희망…2030의 유일한 선택지 ‘주식’

3000. 올해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나온 공통된 숫자다. 최근 사상 처음으로 3000을 돌파한 코스피지수를 경제 성과로 언급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주가 3000 시대를 열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가장 높은 주가 상승률을 기록했다. 위기 속에서도 한국 경제의 미래 전망이 밝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주가 3000포인트의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가 열렸다”고 밝혔다. 

확실히 한국 증시에 기념비적인 일이다. 코스피지수는 1980년 1월4일 100으로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 코스피는 3저 호황의 영향으로 급등하며 1989년 1000 고지를 뚫었다. 그때부터 18년 걸린 2007년에야 코스피는 2000에 도달했다. 다시 3000까지 오는 데는 14년이란 시간이 더 필요했다. 문 대통령 말처럼 기업의 현재 실적과 미래 가치를 보여주는 주가 상승세는 한국 경제의 희망을 보여주는 하나의 객관적 지표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성과라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개미들의 ‘빚투(빚내서 투자) 열풍’에 다른 이유는 없을까. 언론에서는 초저금리로 엄청나게 풀린 돈이 갈 곳을 못 찾고 부동산과 증시로 유입되고 있다고 한다. 맞다. 그래서 자산 가격이 최근 엄청나게 올랐다. 실제 누군가에게는 코로나 충격으로 1450까지 밀렸던 주가 상황이 기회가 됐다. 그런데 다른 누군가에는 주식투자가 강요된 ‘마지막 선택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마지막 선택지를 위해 마지막 여력인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을 받아야 했을 수도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잠시 멈춤’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집중됐다. 하지만 정작 이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시사저널 이종현·박정훈·최준필
‘사회적 거리 두기’와 ‘잠시 멈춤’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집중됐다. 하지만 정작 이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시사저널 이종현·박정훈·최준필

어떤 청춘에게 ‘영끌 대출’은 최후의 수단

생각해 보자. 우리가 어떻게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위기를 헤쳐 나가고 있는지를. 먼저 고용·실업 문제다. 지난해 취업자 수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작년 실업자도 2000년 이후 가장 많았다. 고용 참사는 젊은 층에게 가장 가혹하게 덮쳐왔다. 지난해 15~29세 청년 실업률은 9%를 기록했다. 전체 연령대 실업률(4%)의 2배를 넘는다. 

무슨 뜻일까. 마이너스 성장 속 지난해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줄이는 식으로 위기 대응을 했다는 얘기다. 너무 당연한 대응일까? 기업들은 구조조정과 명예퇴직이란 카드도 꺼내들었지만, 그것보단 신규 채용을 줄였다. 비용은 어느 쪽이 더 절감될까?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청년들이 바라는 직장은 고용 안정성과 임금의 하방 경직성이 매우 강한 편이다. 기업들이 명예퇴직금 부담이 큰 연령대를 구조조정하기보다는 신규 채용을 확 줄이는 식으로 대응한 것이다. 당연히 그 충격은 20대에게 쏠렸다. 

사실 청년 실업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청년 실업률은 이미 2014년에 9%대로 올라섰고 다른 연령층보다 큰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구인-구직자 간 미스매치 때문인데, 청년들 입장에서는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임금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고 사회적 시선의 차이도 현실에선 분명하기 때문이다. 청년들에게는 어차피 바뀌지 않을 세상인데, 마침 주식시장이 활화산처럼 뜨거워졌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고 인식될 여지가 충분하다. 빚을 내서라도 투자하고 싶지 않을까.

또 생각해 보자. 방역 관련이다. 대규모 감염을 막기 위해 정부는 봉쇄 단계를 연달아 격상했다. 고위험 업종 영업 중단과 5인 이상 모임 금지 조치가 단행됐다. 그리고 이 조치는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했다. 놀랍게도 그 희생을 몰아서 받게 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오랜 기간 동안 협조적이었다. 대규모 시위조차 한 번 없었다. 그나마 하는 저항도 언론에 대고 눈물지으며 하소연하는 수준이었다. 

왜 ‘사회적 거리 두기’와 ‘잠시 멈춤’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집중됐을까. 집단감염의 가장 약한 고리가 정말 여기였을까. 회사를 ‘잠시 멈춤’시켰으면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우린 지금의 상황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사실 봉쇄 조치의 피해는 일부에게 가혹하게 전가됐다. 

더 큰 문제는 피해보상이다. 방역 조치가 시작된 지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피해보상은 아직도 없다시피 하다. 지원 속도와 피해보상 규모 모두 너무 부족했다. 현재 정부에서 4차 재난지원금 논의를 하지만 지금 같은 식이라면 큰 의미는 없다. 일본은 단축 영업에 동참하는 모든 업체에 하루 6만 엔(60만원)의 재정을 지원한다. 독일은 매출이 줄어든 업체들에 대해 고정비의 90%, 최대 월 5만 유로(6700만원)까지 지원한 바 있다. 

불평등과 양극화라는 익숙한 절망

지난해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추가로 쓴 재정 지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4%다. 주요 20개국(스페인 포함 21개국) 가운데 15번째다. 국가의 재정 건전성을 충분히 지킨 결과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고 한다. 그런데 자영업자의 재정은 화수분일까? 재난적 위기 때 누가 더 곳간을 열어야 할까. 국가부채에 대한 갑론을박을 벌이는 동안 거리 곳곳에서 아우성이 넘쳐난다. 그런데 주식시장에는 온기가 흘러넘친다. 누구든 빚투를 해서라도 그간의 손실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고 싶지 않을까.  

또 생각해 보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상·하위 20%의 순자산 격차는 1.67배로 오히려 더 커졌다. 지난해 3월 기준으로 상위 20% 가구의 순자산은 평균 11억2481만원인데, 하위 20% 가구는 675만원에 불과하다. 부동산 양극화는 더 심각하다. KB국민은행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상위 20% 주택 가격은 평균 10억2761만원, 하위 20%(1분위) 주택 가격은 1억1866만원이다. 8.7배의 격차가 난다. 그 사이 올해 1월 서울 주택 매매 중위가격은 8억759만원으로 2013년 통계 집계 이래 처음으로 8억원을 돌파했다. 2030세대 입장에선 주식투자라도 해야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을 이룰 수 있다. 이러다 영영 집을 갖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빚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개미들이 진 빚(신용융자)의 규모가 20조원을 넘어섰다. 희망이 있다면,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개미들이 빚투라는 리스크를 지금처럼 과도하게 짊어졌을까. ‘빚투 시대’에 정작 빚을 지고 있는 건 정치권과 기성세대다. 문 대통령과 이 대표는 주가 3000 시대를 언급하며 각각 새 비전으로 ‘선도국가’와 ‘신복지국가’를 말했다. 이 두 비전은 놀라울 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왜일까. 빚투를 막고 싶은가. 대출 규제는 답이 아니다. 유능함과 진정성으로 희망을 보여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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