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핀오프’는 어떻게 예능 대세가 됐나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1.02.11 11:00
  • 호수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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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 파생 프로그램이 뜬 세 가지 이유
쌓아온 무기 다각도로 활용해 시너지 극대화

가슴 쿵쾅거리는 새로움은 때때로 익숙함을 지겹게 만들어 버린다. 새로움이 주는 매력에 익숙함은 자주 밀린다. 그런데 익숙함에서 새로움이 가지처럼 뻗어 나온다. 바로 최근 예능가를 점령한 일종의 번외 편, ‘스핀오프’다. 스핀오프(spin-off)는 인기 작품에서 파생한 새 작품을 뜻한다. 오리지널 영화나 드라마를 바탕으로 자주 시도됐다. 최근 스핀오프는 예능으로 그 활동무대를 넓히며 예능 콘텐츠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예능가를 휩쓴 ‘부캐’라는 트렌드는 올해 ‘스핀오프’와 합쳐져 각종 시너지를 내고 있다. 기존 프로그램이 갖고 있던 세계관을 확장하는 동시에 또 다른 새로운 재미를 선사한다.

대한민국 예능판만큼 총성 없는 전쟁터는 없다. 한국의 시청자들은 세계에서 제일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이들은 왜 스핀오프 예능 콘텐츠를 대세로 끌어올렸을까. 제작자들은 왜 ‘부캐’에 이어 ‘스핀오프’라는 방식을 택했을까. 그 배경과 맥락을 짚어낼 수 있으면 최근 예능 콘텐츠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고 소비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이제 예능 콘텐츠는 그저 예능이 아니다. 무수한 도전과 경쟁이 펼쳐지는 종합 엔터테인먼트의 최전선에 바로 예능 콘텐츠가 있다. 그 변화를 읽으면 세상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위)tvN 《코미디빅리그》의 인기 코너 ‘사이코러스’, ‘사이코러스’ 스핀오프 예능 《빽사이코러스》의 한 장면ⓒtvN·코미디빅리그 유튜브

#1. 부캐 신드롬과 시너지 효과

TV는 편성 시간이 한정돼 있다. 심의 규정도 존재한다. 프로그램 콘셉트에 맞추느라 정규 방송에 나가지 못했지만 숨겨진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다. 스핀오프는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콘텐츠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제작진에게도 매력적인 선택지다. 시청자들에게도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의 뒷이야기를 추가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특히 스핀오프는 ‘부캐 신드롬’과 만나 시너지를 내고 있다. 본편에서 다 보여주지 못한 부캐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스핀오프가 열어주는 것이다.

MBC 《나 혼자 산다》의 스핀오프인 《여자들의 은밀한 파티》(이하 《여은파》)는 부캐와 스핀오프가 얼마나 시너지를 내는지 잘 보여줬다. 《여은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박나래, 한혜진, 화사가 아니다. 《나 혼자 산다》에서 보여준 그들의 부캐, ‘조지나’ ‘사만다’ ‘마리아’였다. TV에서 보여줬던 ‘순한 맛’ 버전과 유튜브에 올라왔던 ‘매운맛’ 버전은 차원이 달랐다. 좀 더 화려해진 패션과 볼거리가 쏟아졌다. ‘19금 토크’도 거침없었다. 매 회 ‘역대급 똘끼’를 갱신하며 막을 내린 《여은파》는 아직도 가장 성공한 스핀오프 콘텐츠 중 하나로 평가된다.

희극인들은 부캐와 스핀오프가 조합된 무대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뛰어논다. tvN의 《코미디 빅리그》의 인기 코너 ‘사이코러스’에서 탄생한 《빽사이코러스》가 대표적이다. 출연진들은 코너 속 부캐를 스핀오프로 끌고 가 캐릭터를 더 입체적으로 확장시켰다. 스핀오프의 재미는 TV에서 시도하기 어려운 ‘B급 감성’에서 폭발한다. 의상과 멘트, 행동 하나하나가 시청자들을 들었다 놨다 한다. 담당 PD를 세상 함부로 다룬다. 개그 프로그램은 점점 사라지지만, 스핀오프 속에서 희극인들은 새로운 무대를 창조해 냈다. 담당 PD인 정무원 PD의 말처럼, 스핀오프는 희극인들이 갖고 있는 세계관과 그들의 매력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다. 유튜브라는 새로운 플랫폼은 부캐와 스핀오프가 마음껏 매력을 발산하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무대를 선사했다.

(위)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유 퀴즈 온 더 블럭》 스핀오프 예능《난리났네 난리났어》ⓒtvN

#2.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낳다

대중은 참 얄궂다. 10년 넘게 유재석과 강호동, 신동엽을 사랑하면서 새로움을 원한다. 제작사의 일방통행은 이제 거부한다. 밀도 높은 소통 속에 원하는 바를 주문하기까지 한다. 이 난제에 대한 나름의 답이 바로 스핀오프다. 익숙한 사람으로, 새로운 콘셉트로, 또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다.

올해 가장 주목받고 있는 스핀오프인 tvN의 《난리났네 난리났어》(이하 《난리났네》)가 그 선두주자다. tvN의 간판 예능인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 퀴즈》)에서 파생된 이 스핀오프는 유재석과 조세호라는 친숙한 사람들이 새로운 콘셉트를 시도한다. 《난리났네》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유재석과 조세호라는 진행자 외에 《유 퀴즈》에 등장했던 출연자들을 다시 소환한다는 것이다. 친숙함은 높아지는데 깊이는 한층 더 깊어진다. 시청자들이 애정했던 출연자들은 더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시청자들은 자연스레 프로그램 속으로 더 몰입하게 된다. 《유 퀴즈》의 팬덤이 《난리났네》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위)코미디TV 예능 《맛있는 녀석들》, 《맛있는 녀석들》 스핀오프 예능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의 한 장면ⓒ코미디TV·맛있는 녀석들 유튜브

스핀오프는 시청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본 프로그램에 대한 우려를 승화시켜 버리기도 한다. ‘먹방’ 콘텐츠를 보다 보면 출연진의 건강이 걱정되기 마련이다. 먹방의 선두주자 《맛있는 녀석들》을 만든 이영식 PD는 “멤버들이 건강을 챙겼으면 좋겠다는 시청자들의 니즈를 반영해 시작하게 됐다”며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과 《오늘부터 댄스뚱》이라는 스핀오프를 만들어냈다. 애정하는 출연진의 건강을 염려하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스핀오프로 반영하자 반응은 뜨거웠다. 운동에 탁월한 소질을 보이는 김민경과 전 장르의 댄스에 도전하는 문세윤의 모습은 그동안 먹는 데 특화됐던 그들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했다. 《맛있는 녀석들》의 공식 유튜버 계정은 스핀오프의 인기에 힘입어 11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모았다. 쌍방향 소통으로 만들어낸 스핀오프가 본 프로그램의 인기까지 견인하는 셈이다.

(위)jtbc 예능 《싱어게인》, 《싱어게인》 스핀오프 예능 카카오 TV 《싱어게인 전체공개》의 한 장면ⓒjtbc·카카오TV 제공

#3. 대세 유튜브에 맞춘 짧은 영상

스핀오프 콘텐츠는 ‘짧다’. 대부분의 스핀오프는 짧은 동영상을 뜻하는 ‘숏폼’과 같이 가는 중이다. 유튜브와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때문이다. MZ세대는 유튜브에서 놀고, 짧은 영상을 주로 즐긴다. 화면이 작은 스마트폰으로 1시간 넘는 영상을 보기에는 피로하다. 인기 스핀오프 예능이 10~15분 내외로 구성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걸 제일 잘 만들어낸 사람이 바로 나영석 PD다. 나 PD는 《신서유기 6》에서 《신서유기 외전-삼시세끼: 아이슬란드 간 세끼》를 뽑아냈다. 《신서유기》에서 은지원이 상품으로 뽑은 아이슬란드 여행권이 그 시작이었다. TV로는 5분간 편성해 내보내고, 유튜브로는 20분 풀버전을 공개했다. 당시에는 정말 파격 편성이었다. 짧은 영상이기에 전개는 압축적이고 화법은 직접적이었다. 그게 터졌다. 나 PD는 본 프로그램에서 출연진이 한 사소한 말 한마디를 끄집어내 《강식당》 《라끼남》 《나홀로 이식당》 등 스핀오프 콘텐츠를 만들었다. 본 프로그램의 팬이라면 스핀오프를 보고 싶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본방송에서 공개하지 못한 장면들을 숏폼 영상을 통해 내보내면서 인기열차에 탑승하는 경우도 있다. 카카오TV는 《싱어게인》의 디지털 스핀오프, 《싱어게인 전체공개》를 15분 안팎의 짧은 영상으로 내보내 무대에서 볼 수 없는 스토리와 특별무대를 공개했다. 본방송의 애청자라면 궁금해할 수밖에 없는 출연자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김희경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는 “스핀오프 콘텐츠는 현재 콘텐츠 분야에서 가장 활발한 방식이다.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려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해야 한다. 흥행 여부도 판가름하기가 힘들다. 반면 스핀오프 콘텐츠는 원 콘텐츠에 열광했던 팬들이 이미 확보돼 있는 상황이다. 그들의 기대에 어느 정도 의존할 수 있는 발판이 만들어져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김 교수의 분석처럼 제작진 입장에선 스핀오프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다. 갈수록 TV 채널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유튜브 등으로 헤게모니가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제작진에게 스핀오프는 리스크는 줄이고 성공에 대한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익숙함과 새로움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 TV와 유튜브 등을 모두 활용하기에 다양한 연령층 공략도 가능하다. 스핀오프가 예능가의 새로운 신드롬으로 떠오른 지금, 기존 프로그램들을 바탕으로 한 스핀오프의 변주는 어디까지 가능해질까. 트렌드와 콘텐츠의 변화를 살피고 싶다면, 스핀오프를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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