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원로 백기완 선생 별세…그가 생전에 남긴 말은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1.02.15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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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인터뷰서 “제발 잘못된 세상에 빌붙지 마라” 일갈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2019년 3월 서울 종로구 통일문제연구소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는 모습 ⓒ 시사저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2019년 3월 서울 종로구 통일문제연구소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는 모습 ⓒ 시사저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투병 끝에 15일 영면했다. 일제와 싸우고 독재 정치에 맞섰던 재야 원로의 별세 소식에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검은 두루마기와 하얀 바람머리로 상징되는 백기완 소장은 노동자, 농민, 빈민 등 민중 싸움터에 늘 자리하는 투사였다. 과거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도 맹추위 속에 광화문 촛불 현장을 지켰다. 이후에도 전국 곳곳의 투쟁 현장이 백 소장의 집이었다.

백 소장은 1932년 황해도 은율군 동부리에서 태어나 1950년대부터 한국 사회운동 전반에 적극 참여했다. 1960년대에는 한일협정 반대 투쟁을 계기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3선 개헌 반대와 유신 철폐등 민주화 운동에 많은 활동을 했으며, 1974년 유신헌법철폐 100만인 선언 운동을 주도하여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12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75년 형 집행 정지로 석방되었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지만 김영삼·김대중의 후보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고, 이후 1992년 독자 민중후보로 다시 대선에 출마했다. 대선에서 낙선한 백 소장은 이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뒤, 자신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통일운동과 노동운동 등을 지원했다.

백 소장은 《장산곶매 이야기》 등 소설과 수필집을 낸 문필가이자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이기도 하다. 지난 2019년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민중서사를 담은 소설 《버선발 이야기》를 출간하기도 했다. 

1987년 12월12일 백기완 대통령 후보가 서울 대학로 유세장에서 수많은 지지자를 향해 열변을 토하고 있다. ⓒ 연합뉴스
1987년 12월12일 백기완 당시 대통령 후보가 서울 대학로 유세장에서 수많은 지지자를 향해 열변을 토하는 모습 ⓒ 연합뉴스

“잘못된 체제에 빌붙으면 썩물 된다”

시사저널은 2019년 3월 《버선발 이야기》 출간 당시 백 소장과 인터뷰를 가진 바 있다. (☞ 백기완 “제발 잘못된 세상에 빌붙지 말고 바로잡아라!” 1536호) 백 소장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내 것도 내 것이고 남의 것도 자꾸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그래. 더 부자가 되려고 하잖아. 그것이 의욕을 촉발시켜 경제가 좀 활성화됐다고 해. 하지만 그렇게 풀이하는 건, 경제만능주의야. 사람만능주의가 아니야. 어떻게 된 세상이 경제만능이 사람만능을 능가해. 경제적으로만 잘살면 잘된 세상이라고 하는데 그건 거짓말이라는 거야”라며 현대 사회에 일침을 가했다.

백 소장은 또 “오늘의 잘못된 체제에 두 발만 붙이고자 하면 ‘썩물’이 돼. 자기만 썩는 게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도 썩게 돼. 제발 니나(민중)들은 썩물이 되려고 하지 마라. 제발 잘못된 세상에 빌붙을 생각 하지 마라.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을 생각을 하라고. 니나들한테 해 주고 싶은 새김말이야. 좌우명이란 말야”라고도 일갈했다.

한편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백 소장은 이날 오전 입원 중 별세했다. 그는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생활을 이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백 소장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다.

2월15일 새벽 별세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빈소가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2월15일 새벽 별세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빈소가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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