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나를 외면하지 말게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1.02.19 17:00
  • 호수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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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진 숙명여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책장을 넘기다 눈물 글썽한 순간을 맞는다. 시집도, 소설책도, 철학책도 아니다. 경기문화재단의 프로젝트 보고서로 출간된 《진심대면-한 사람을 위한 예술》이라는 작은 화보집이다. 책 속에는 여러 사정으로 예술과 멀리 있던 이들과, 그가 누구이든 단 한 사람, 그를 위해 기꺼이 최선을 다해 마음을 내어준 예술가들의 만남, 서른아홉 장면이 담겨 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예술의 쓸모’를 생각해 봤다.

공연장·전시장에서의 대면 활동이 위축된 코로나19 상황에서 예술가와 수요자들의 만남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갈 즈음, 재단은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의 예술 중매자로 나섰다. 지역주민들에게 ‘당신만을 위한 예술 시간을 드립니다. 필요하신가요?’라고 물었고, 예술가들에게는 ‘당신의 예술이 필요한 분이 계신데, 함께해 주시겠어요’라고 물었다. 재단은 서로 원하는 이들을 연결하고, 그들이 잘 만나 좋은 시간을 누리도록 주선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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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면은 서로 어색했겠지만 끝은 좋았다. 좋은 정도가 아니라,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두고두고 잊지 못할 감동으로 마무리됐을 것이다. 비록 그 현장 근처에도 못 가본 처지지만, 책장을 넘기며 그들의 아름다운 시간에 공감하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그중에 사연 하나. 5년간의 어려운 암 투병을 이겨낸 김아무개씨는 마침 병원에서 완치 판정을 받고 오던 날 ‘나만을 위한 하우스 콘서트’를 오롯이 누렸다. 관객은 남편과 단둘. 이들을 위해 공연을 준비해 온 성악가는 그만을 위해 세심하게 선곡한 노래로 음악회를 시작했으나, 관객보다 먼저 목이 메어 노래는 엉망이 되었고, 관객은 서로 손을 꼭 잡은 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이 무안하고 쑥스러운 시간이 지난 뒤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홀가분해졌을까.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옛얘기도 있다. 화가이자 문장가로 알려진 강세황은 60세 넘어 처음으로 관직에 입문하기까지 평생토록 마음 다스릴 일이 많았다. 어릴 때 배운 거문고를 평생 연주하며 ‘거문고 한 가락, 노래 한 곡’으로 위로 삼곤 했는데, 어느 날 친구 성호 이익의 아들이 병이 깊다는 소식에 거문고를 들고 병문안을 갔다. 그리고 아들과 아버지를 위해 《심방곡》이라는 시절 노래를 연주했다. 이날의 연주 소감은 청중이었던 성호 이익의 글로 전해진다. ‘아들 녀석이 아파 우울하던 차에 친구가 와서 거문고 연주를 들려주었다. 근심 가득한 내 마음은 기뻐지고, 아픈 내 아들은 소생하려는 듯했다.’

안타깝게도 강세황의 병문안 연주를 들었던 그 아들은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고 말았지만, 예술을 통한 ‘진심 대면’의 순간을 나눈 강세황과 성호 이익의 우정은 더욱 깊어졌다. ‘언제나 그대의 얘기에 손뼉 치며 화답해 줄 테니, 그대 나를 외면하지 말게’라고 말한 성호 이익의 진심이 이 글 끄트머리에 적혀 있다.

시작되는 새봄. 우리 예술계가 지난해보다는 좀 나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예술을 통한 진심대면이 도처에서 이루어지기를, 예술가들이 청중들에게 ‘그대 나를 외면하지 말게’라는 말을 수없이 많이 들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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