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와 개미 힘겨루기에 피멍 든 월스트리트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2.21 13:00
  • 호수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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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게임스톱 주가 급등락으로 시장 ‘멘붕’…당국에서도 조사 착수

게임스톱(GameStop)은 미국의 비디오 게임 유통점이다. 미국의 대형 쇼핑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게임 카트리지 매장을 운영한다. 하지만 쇼핑몰의 인기가 떨어지고 온라인 구매 비율이 높아지면서 경쟁력은 예전 같지 않다. 2013년 55달러 수준이던 주가는 지난해 중반 4달러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말부터 월가의 유명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운영 방식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꾼다면 성장 여력이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큰손들이 주식을 매입하면서 주가는 서서히 뛰기 시작했고, 올 초에는 18달러 수준까지 올라갔다.

이 시점에 헤지펀드와 개인투자자들 간 전쟁이 벌어졌다. 펀드 전문 투자자들은 주가가 고평가됐다고 판단했다. 헤지펀드인 멜빈캐피털(Melvin Capital)은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무려 5000만 주를 공매도했다. 공매도는 말 그대로 주식을 빌려서 판 뒤 일정 기간 뒤에 다시 사서 갚는 투자 기법이다. 빌려서 매도할 때보다 매수 시점의 주가가 하락하면 차익을 얻을 수 있다.

멜빈캐피털은 유통 물량의 260%나 되는 주식을 공매도해 놓고 주가가 급락하기를 기다렸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헤지펀드의 반대편에 개인투자자 수백만 명이 모였다. 미국의 온라인커뮤니티 사이트인 ‘레디트(Reddit)’의 하위 게시판인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에 집결한 개인투자자들이 대표적이다. 회원만 현재 500만 명이다. 개인투자자들은 헤지펀드의 공매도에 대항해 무조건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까지 나서 개인투자자의 주식 사재기를 응원했다.

미국 비디오 게임 유통점인 게임스톱의 주가 급등락으로 투자자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사진은 미국 맨해튼에 위치한 게임스톱 매장(왼쪽)과 공매도 반대 기자회견 모습
미국 비디오 게임 유통점인 게임스톱의 주가 급등락으로 투자자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사진은 미국 맨해튼에 위치한 게임스톱 매장ⓒ AP 연합

일론 머스크도 게임스톱 사재기에 가세

주가는 483달러까지 뛰었다.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공매도에 나섰던 헤지펀드들은 위기를 맞았다. 공매도 세력은 손실을 줄이기 위해 원래 사기로 한 시점보다 일찍 현물 주식을 사서 상환해야 하는 ‘숏 스퀴즈(short squeeze)’ 상황을 맞닥뜨렸다. 멜빈캐피털은 공매도 물량을 청산하면서 자산의 절반을 날렸다. 헤지펀드들이 개인투자자들에게 무릎을 꿇었고, 지배계급의 횡포에 대한 민중의 저항이라는 찬사가 나왔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월스트리트에 민주주의가 구현된 사건’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었다.

1월28일 반전이 일어났다. 주가 폭등 때문에 증거금이 늘어났다는 이유로 주식 거래 스마트폰 앱인 ‘로빈후드(Robinhood)’가 게임스톱 주식을 팔 수 있지만 살 수는 없게 만든 것이다. 헤지펀드들은 다시 게임스톱의 주식에 대한 대량 공매도에 나섰고 주가는 하루 만에 4분의 1로 빠졌다. 그 이후 주가는 약세다. 사정이 급했던 펀드들이 공매도 물량을 정리하고 난 뒤에는 주가가 상승 동력을 찾지 못하면서 지금은 최고점의 10분의 1 수준으로 내려왔다. 피를 흘린 건 헤지펀드만이 아니었다. ‘반란’에 뒤늦게 가담해 고점에서 매수한 개인투자자들도 큰 손해를 봤다.

공매도에 나섰던 헤지펀드와 이에 대응해 매수에 나섰던 개인투자자들 가운데 누가 옳은가.

주식시장의 정의(正義)는 시장의 효율적인 작동을 통해 이뤄진다. 헤지펀드든 개인투자자든 주식시장에 뛰어든 이유는 같다. 시장에서 옳은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을 판단하는 기준은 투자 손익뿐이다. 시장은 어리석고 무모한 투자자를 찾아 응징한다. 그 투자자가 헤지펀드인지 아니면 개인투자자인지 가리지는 않는다. 거래량에 비해 턱없이 많은 물량을 공매도한 헤지펀드도, 기업의 가치와 적절한 주가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사재기한 개인투자자도 무모하기는 마찬가지다.

헤지펀드와 공매도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다. 특히 공매도는 국내 개인투자자들에게 그야말로 ‘공공의 적’이다.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간 외국인과 기관의 불법 공매도로 인해 타격을 받았던 경험이 많다. 일반적으로 공매도를 한 헤지펀드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주가를 떨어뜨리려고 한다. 재무 상태를 조사해 약점을 폭로하기도 하고 아예 가짜뉴스를 퍼뜨리기도 한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내부자거래로 처벌받는 경우도 잦다. 그러나 누가 하든 주가를 조작하는 것은 범죄다. 담합도 마찬가지다. 집단행동으로 기업의 가치와 상관없이 터무니없는 수준까지 주가를 급등시키는 것은 투기 세력의 주가 조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식시장에 악(惡)이 존재한다면 시장의 효율적인 작동을 저해하는 모든 것이다. 게임스톱에 대한 주식 거래 앱 로빈후드의 일방적인 매수 금지 조치도 당연히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미 당국의 조사가 시작된 상태다. 집단소송도 예상된다.

개인투자자는 물론이고 기업이나 정부도 공매도를 싫어한다. 다들 싫어하는 공매도가 지금과 같이 존재하는 것은 그만한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공매도 투자자들은 실적을 부풀리고 사기를 치는 기업들을 찾아내는 전문가들이다. 급등하는 주식시장에서 거품을 걷어내는 역할을 하며 기업의 회계 부정을 감시한다. 주식 매수의 위험부담을 줄이는 효율적인 투자 기법이기도 하다. 주가는 결국 기업의 실적이 결정한다. 주가 조작을 시도하는 투자자가 잠시 주가를 띄운다고 해서 회사의 실적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 비디오 게임 유통점인 게임스톱의 주가 급등락으로 투자자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사진은 미국 맨해튼에 위치한 게임스톱 매장(왼쪽)과 공매도 반대 기자회견 모습
미국 비디오 게임 유통점인 게임스톱의 주가 급등락으로 투자자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사진은 공매도 반대 기자회견 모습ⓒEPA 연합

주식시장은 누가 바보인지 확인하는 게임   

반대로 투기 세력이 일시적으로 주가를 떨어뜨린다고 해서 회사의 가치가 낮아지는 것도 아니다.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는데도 공매도 물량으로 하락한 주가가 반등하지 못한다면 과대평가된 주가였다는 뜻이다. 적정한 가격이 아니라면 주가 하락은 단기간에 그칠 것이다. 증권시장이 있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공매도는 허용돼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엄격하게 공매도를 규제하는 국가다. 코로나19 사태에도 대부분은 공매도를 금지하지 않았다. 잠시 금지했더라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사실상 우리나라뿐이라고 한다. 정부는 현재의 공매도 금지 조치를 5월2일까지 연장한 후 5월3일부터 대형주 350개에 한해 공매도를 재개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키스 질(Keith Gill)은 게임스톱 주식 매수를 권하면서 개인투자자의 반란을 주도한 사람이다. 그의 보유 주식 가치는 한때 5000만 달러에 육박했다. 아직도 주식을 갖고 있다면 지금 그의 자산도 10분의 1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전쟁이 진행되는 와중에 조용히 실익을 챙긴 큰손들도 있다. 헤지펀드인 센베스트 매니지먼트(Senvest Management)는 게임스톱의 주식이 주당 10달러도 안 되던 지난해 9월부터 매수하기 시작해 400달러가 넘었던 시점에 모두 팔았다. 4개월 사이에 남긴 수익은 7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주식시장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주식시장은 누가 바보인지 확인하는 게임이다. 만약 누가 바보일지 잘 모르겠다 싶으면 바보는 바로 당신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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