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열풍] 이승윤 “‘무명’이라는 부제 덕에 부담 없이 출연했다”
  • 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2.19 10:00
  • 호수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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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에 없던 가수의 탄생…《싱어게인》 우승자 ‘30호’ 이승윤

JTBC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오디션’이라는 방송가 단골 포맷이라 ‘설마 될까?’ 했던 프로그램이었다. 한데, 설마 됐다. 매회 자체 시청률을 경신하며 각종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으며, 참가자들의 무대 영상은 조회 수 1700만 뷰를 기록하는 등 뜨거운 화제를 낳았다. 최고 시청률은 11.8%였다.

《싱어게인》은 세상이 미처 알아보지 못한 재야의 실력자, 한땐 잘나갔지만 지금은 잊힌 비운의 가수 등 한 번 더 기회가 필요한 가수들이 대중 앞에 다시 설 수 있도록 돕는 신개념 리부팅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지난해 11월부터 방송됐다. 시청률만큼이나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호평도 이어졌다. 전에 없던 ‘순한 맛’ ‘힐링’ ‘뉴트로’ 예능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남녀노소, 나이대를 불문하고 마니아들을 양산해 냈다. 과도한 경쟁구도와 자극적인 편집에서 벗어난 잔잔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중의 마음이 요동친 것이다. 모든 참가자를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부르는 번호제를 도입해 신박함을 더하기도 했다. 알고 보니 추억 소환 전문 음악 프로그램 JTBC 《슈가맨》 제작진이 기획한 ‘작품’이었다.

71팀 중 최종 우승자는 이승윤. 그는 결승 무대에서 이적의 《물》을 열창해 1위를 차지했다. 정홍일은 마그마의 《해야》로 2위, 이무진은 신촌블루스의 《골목길》로 3위에 올랐다. 그가 우승한 이유는 ‘전에 없던’ 가수였기 때문이다. 장르를 넘나드는 곡들을 자신의 방식대로 편곡해 찰떡같이 소화했다. 덕분에 그는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내내 ‘장르가 30호’라는 영광의 수식어를 달았다. 스스로를 ‘방구석 음악인’이라고 칭하는 그는 “창작자로 살면서 주변에 폐를 너무 끼친 것 같아서 사실 음악을 그만둘 생각이었다”며 “그런 내가 우승을 하다니 어리둥절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JTBC 제공

우승 소감부터 말해 달라.

“끝나자마자 해야 할 것들이 있어서 아직은 적응 중이다. 포기할 때 하더라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자는 생각으로 나온 프로그램이라 지금도 얼떨떨하다. 3월부터 콘서트를 시작한다.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 당장 주어진 일들을 하나씩 해내면서 지낼 생각이다.”

 

1위를 예상했나.

“전혀 하지 못했다. 매 라운드마다 어떤 무대를 할까, 어떤 메시지를 담을까 하는 생각에 급급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얼떨결에 TOP 3가 돼 있더라. 하지만 그 마음은 있었다. 매 무대마다 마지막일 수 있으니 다 보여주자는 마음. 그래서 후회하지 않을 무대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무대 퍼포먼스에 대한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 춤으로 승부를 보는 ‘댄스 가수’가 아니라 제 노래를 들은 분들을 춤추게 하는 ‘댄스 가수’가 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댄스 가수다(웃음).”

 

출연을 결심한 계기는 뭔가.

“나는 ‘무명’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나 고유의 이름이 있지 않나. 한데 빛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이름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그 단어가 사람을 위축되게 만드는 게 있지 않나. 한데 《싱어게인》은 대놓고 ‘무명가수전’이라 명명해서 오히려 좋았다. 둘러 말하지 않으니 마음 편하게 참여할 수 있었다.”

 

당시에 전하지 못한 우승 소감이 있나.

“가요계 선배님들께 감사드린다는 말을 전하지 못했다. 사실 《싱어게인》 무대는 수많은 선배님의 노래를 빌려 무대를 꾸민 것이다. 그 멋진 노래를 세상에 내놓은 원곡 가수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른바 ‘무명’인 내가 그 큰 무대에서 그 주옥같은 명곡들을 언제 불러볼 수 있겠나. 영광이었다.”

 

수상자들의 실력이 모두 막상막하였다. 함께 TOP 3에 오른 정홍일과 이무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무대를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나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두 사람의 가창력이 어마어마하지 않나. 홍일이형의 음악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마그마 같은 뜨거움’이다. 한데 실제 성격은 화끈함보다 스윗한 남자다. 무진씨의 음악은 휘파람 같다. 휘파람 소리를 들으면 바람 소리지만 알맹이가 있지 않나. 유니크하면서도 귀에 쏙쏙 박힌다.”

 

요즘 인기를 실감하나.

“사실 내가 그렇게 인맥이 넓은 줄 몰랐다. 하하. 잠깐 스쳤던 분들까지 방송을 보시고 연락해 주셨다. 이 정도면 출마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엇보다 지인들의 휴대전화에 있던 나의 ‘흑역사’ 영상이 온라인상에 떠도는 걸 보면서 인지도를 느꼈다. 이 자리를 빌려 휴대전화 안에 고이 간직하고 개인적으로 소장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고 싶다(웃음).”

 

매회 방송이 끝나면 늘 화제가 됐다. 댓글을 읽는 편인가.

“엄청나게 찾아본다. 특히 악성 댓글은 찾아다니면서 보는 편이다. 그 조언들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음악적 색깔을 만드는 데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악플은 아니지만 ‘너의 팬이지만, 너의 이마까지는 사랑할 수 없겠다’라는 댓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방송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서울에 눈이 많이 내렸던 날이었다. 정홍일 참가자 및 이정권 참가자와 함께 눈싸움하면서 긴장을 풀었던 기억이 있다. 그날의 기억이 지금도 종종 떠오른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도 궁금하다.

“마음가짐은 이전과 같다. 물론 시도해 볼 수 있는 음악적 영역이 넓어진 것 같기는 하다. 당장은 계획을 세우기보다 주어진 일들을 차근차근 해내겠다.”

 

《싱어게인》이 어떤 프로그램으로 기억될 것 같나.

“‘무명’이라는 직설적인 단어로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줬다. 그래서 하고 싶은 무대를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여러모로 내게 고마운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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