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체제의 기울어진 대법관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1.02.22 10:00
  • 호수 163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 대통령이 임기 중 13명 임명...헌법재판관은 9명 중 5명이 ‘우국민(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민변)’

이른바 ‘박근혜 세월호 7시간’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탄핵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건이 정치 쟁점화하면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헌재)가 다시 한번 주목을 받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부적절한 발언이 발단이 됐다. 임성근 판사 측은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2월4일, 임 판사와 김명수 대법원장의 면담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녹음파일에는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되고”라는 등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눈치를 보는 듯한 김 대법원장의 발언이 담겨 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지난 2월15일 김 대법원장을 검찰에 고발했는데, 고발장에는 “김 대법원장에겐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음에도, 국회의 탄핵 추진 상황을 언급하면서 임 판사의 사표를 반려한 것은 법원 인사권을 남용한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담겼다. 김 대법원장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논란은 대법원과, 임 판사의 탄핵 심판을 맡은 헌재로까지 비화했다. 진보 성향의 대법관, 헌법재판관들이 다수를 차지하면서 사법부가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왼쪽)유남석 헌재소장·김명수 대법원장ⓒ시사저널 박은숙·최준필 

한규섭 교수, 대법원 판결문 274건 분석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대법관은 전체 14명 가운데 11명이다. 오는 5월 임기를 마치는 박상옥 대법관과 9월 퇴임하는 이기택 대법관의 후임자까지 치면 13명의 대법관을 문재인 정부가 뽑는 셈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진보 성향의 대법관이 현재 8명이며, 박 대법관-이 대법관의 후임자까지 고려하면 최대 10명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과반(7명)을 진보진영이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2005년 9월부터 2020년 9월까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 274건을 분석해, 전·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 등 총 46명의 성향을 분석했다. 기준이 되는 수치 ‘0’은 전체 분석 대상자인 46명의 평균값으로 설정했고, 마이너스(-) 수치는 진보, 플러스(+)는 보수 성향을 의미한다.

마이너스 수치를 기록한 인물은 김 대법원장을 필두로 김선수·박정화·김상환·민유숙·노정희·조재연 대법관 등이다. 지난해 9월8일 퇴임한 권순일 전 대법관 후임이었던 이흥구 대법관 역시 진보 성향으로 평가받는다.

보수 성향으로 평가받은 대법관은 노태악·이기택·안철상·이동원 대법관에 그쳤다. 기준치인 0에 근접한 김재형·박상옥 대법관은 중도로 분류됐다.

한 교수는 문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 10명(2020년 9월 기준)이 평균적으로 가장 진보적인 성향(-0.347)이라고 지적했다. 김선수 대법관은 전·현직 대법관 46명 중 진보 4위를, 박정화-김상환 대법관은 각각 진보 6, 7위를 차지했다.

정권별 진보 성향은 노무현(-0.147), 김대중(0.084), 이명박(0.104), 박근혜(0.175) 전 대통령 순이었다. 특히 문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들의 수치가 압도적으로 낮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 닮은 듯 달랐다”면서 “노 전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 키워드는 ‘다양성’이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김영란(-1.532), 전수안(-1.374), 박시환(-1.227), 이홍훈(-0.973) 등 진보 성향 대법관 톱 5 중 4명을 임명했지만 안대희(1.628), 김황식(1.338), 김용담(0.552) 등 보수 성향 대법관 톱 5 중 3명도 임명했다. ‘코드 임명’으로 볼 만한 대법관은 절반(10명 중 5명) 정도였다”고 분석했다.

‘우국민’ 헌법재판관들 “공수처 합헌”

김명수 대법원장은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후신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김 대법원장이 법원의 수장이 되면서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들이 사법부 주류를 차지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박정화·노정희·이흥구 대법관이 우리법연구회에서 활동했고, 김상환 대법관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이 중 이흥구 대법관은 진보 성향 법관의 상징적 인물이다. 이흥구 대법관은 1985년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징역 2년 집행유예 3년)를 선고받았다가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국보법 위반 1호 판사’로 불린다. 이 밖에 김선수 대법관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 출신이고, 민유숙 대법관은 젠더법연구회 회장을 역임했다.

이와 관련해 2월22일 퇴임한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정파적으로 움직이는 전위대 또는 정치노조에 불과하다”면서 “우리법연구회는 2010년 ‘법원 내 하나회’라는 논란 끝에 해체됐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역시 해체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관 9명 중 3명은 대통령, 3명은 대법원장, 나머지 3명은 국회에서 지명한다. 지명 주체를 고려했을 때 친(親)정부 성향의 재판관은 6명 정도로 분류된다. 문 대통령이 지명한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김 대법원장의 이석태·이은애 재판관, 더불어민주당의 김기영 재판관 등이다. 탄핵심판은 재판관 9명 중 6명이 찬성하면 파면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문형배 재판관은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김기영·이미선 재판관은 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 활동했다. 임성근 판사 탄핵심판의 주심을 맡은 이석태 재판관은 민변 회장,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냈다. 민변은 임 판사의 탄핵을 주장하고 있다. 판사·검사 경력 없이 순수 변호사 출신으로 최초의 헌법재판관이 된 이석태 재판관은 2003년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재직하며 당시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이 밖에 사무처장에도 우리법연구회, 민변, 아름다운재단 이사장 출신인 박종문 변호사가 취임했다.

이와 관련해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에 헌법재판관 8명이 임명됐다. 8명 중 5명이 ‘우국민(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민변)’”이라면서 “초·중등교원의 정치단체 결성 관여 및 가입금지 사건에서 ‘우국민’ 재판관 5명이 똑같이 위헌 의견을 냈다. 헌재가 기울어진 운동장이 돼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대한 헌재의 합헌 결정에도 ‘우국민’ 재판관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헌재는 지난 1월28일 ‘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권력분립 원칙에 반한다며 야당 국회의원들이 낸 헌법소원 심판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 9명 중 5명은 합헌 의견을 냈고 3명은 위헌, 나머지 1명은 각하 의견을 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문형배·김기영·이미선·이석태 재판관이 합헌 결정을 이끌었다.

이들은 공수처가 입법·사법·행정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권력분립 원칙을 위반한다는 지적에 대해 “공수처는 행정부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면서 “공수처의 권한 행사는 국회·법원·헌법재판소 등 여러 기관으로부터 통제가 이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은 “수사·공소권은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행정 영역이며 이를 행정 각부에 소속되지 않은 공수처에 부여하는 것은 헌법을 위반한다”고 소수의견을 냈다.

노정희 선관위원장도 ‘우리법연구회’ 출신 

이석태·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수사가 중복될 경우 공수처가 다른 수사기관으로부터 수사권을 넘겨받을 수 있도록 한 조항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그러나 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은 “공수처는 사실상 고위 공직자 범죄에 관한 수사권 행사에서 행정부 내의 다른 수사기관보다 일방적 우위를 차지하게 돼 수사기관과의 상호협력적 관계를 훼손하게 된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이 밖에 중앙선거관리위원장(선관위원장) 역시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노정희 대법관이 맡고 있다. 선관위원장은 통상적으로 선임 대법관이 맡아왔는데, 노 대법관은 서열이 10위다. 이례적인 임명이라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그러나 책임은 막중하다. 노 대법관은 임기가 2024년 8월까지여서, 오는 4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시작으로 2022년 3월 대통령선거·6월 지방선거, 2024년 4월 총선거까지 모두 관리하게 된다.

야당에서는 사법부의 정치적 편향성이 인사 농단으로 이어지고, 결국 문재인 정부 실세들이 연루된 재판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김 대법원장이 법관 인사권을 고무줄 늘이듯이 늘였다 줄였다 하면서 입맛에 맞는 법관을 활용하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