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 파문, 문 대통령 레임덕 소용돌이에 빠지나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1.02.19 14:00
  • 호수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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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계 검찰 인사안’ 재가 과정 불투명…조국 키즈들 활발하게 가동

추미애에 이어 박범계 신임 법무부 장관이 또 사고를 친 걸까. 윤석열 총장의 손발을 묶는 검찰 인사안을 두고 정권 내부에서 큰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법무부와 검찰이 아닌 통치기구 안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청와대와 법무부 장관, 청와대 내 민정수석과 민정비서관 사이의 갈등설이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유임 등을 골자로 하는 ‘박범계 인사안’이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을 거치지 않고, 베일에 싸인 어떤 경로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돼 재가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과연 누가 어떤 방법으로 대통령에게 인사안을 전달한 것일까. 청와대 측은 인사안이 신현수 수석을 거치지 않은 채 재가됐다는 사실을 문 대통령이 뒤늦게 알고, 박범계 장관에게 경고했다는 말을 흘리고 있지만 이는 합리적인 설명이 아니다. 모욕감과 구조적 한계를 느끼고 신현수 수석이 사의를 표명했다. 문 대통령이 내막을 모른 채 검사장 인사안을 재가했다면 임기 후반기 권력누수(레임덕)가 심각하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레임덕의 소용돌이에 빠진 게 아니라면 그동안 문 대통령이 신현수 수석과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말로 보여준 신임은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난다. 즉, 대통령이 이중 플레이를 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해명에 따르면, 박범계 인사안을 놓고 법무부 측과 신 수석이 이견을 보였고(청와대가 이런 사실을 인정한 건 처음이다), 신 수석이 조정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법무부안이 문재인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발표됐다. 이 과정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발탁한 민변 출신 이광철 민정비서관이 신 수석을 건너뛰고 인사를 주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청와대는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연합뉴스·시사저널 박은숙

“조국 라인과 신현수 수석 간 권력암투” 

하지만 야당에서는 조국 전 장관을 거론하며 이번 사태를 조국 라인과 신현수 수석의 ‘권력암투’로 규정하고 있다.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의를 쫓아냈다’는 것이다. 최근까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A씨는 “문재인 정부는 조국으로 시작해 조국으로 끝을 보려는 모양”이라면서 “이광철 비서관이 연루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번 사태의 본질이 ‘조국 전 장관과 뜻을 같이하는 검찰 개혁 극단파들이 온건한 입장을 취한 신현수 수석을 패싱하고 몰아내려고 한 것’만은 틀림없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신현수 몰아내기는 그동안 정권이 추진해 왔던 윤석열 쫓아내기, 검찰 무력화가 숱한 잡음에도 느슨해지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 신 수석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의견을 반영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경질하고, 한동훈 검사장을 복귀시키는 인사안을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월7일 일요일에 기습 발표된 인사는 이성윤의 유임-한동훈의 복귀 불발로 나타났다. 검찰 인사의 최종 결정권자는 문 대통령이다. 결국, 문 대통령이 검찰 개혁 극단파의 손을 들어줬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김용민·김남국 의원 등 ‘조국 키즈’를 중심으로 ‘검찰 개혁 시즌2’에 돌입했다. 검찰 수사권의 완전 폐지를 위해 검찰청을 공소를 담당하는 공소청, 수사를 맡는 중대범죄수사청으로 나누는 법안을 연쇄적으로 발의했다. 또한 조국 라인인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은 “자기 (자)존심만 세우려 한다면 대통령의 비서로는 부적격 아닌가. 수석비서도 비서의 수석일 뿐 비서인 것은 마찬가지”라면서 신 수석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검찰 개혁에 방해가 된다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사람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자세다. 

문 대통령의 스탠스에 의문이 많다. 문 대통령은 올 초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은 윤석열” “지금부터라도 법무부와 검찰이 협력해 검찰 개혁이라는 대과제를 잘 마무리하고 발전시켜 나가기를 기대한다” 등의 발언을 했다. 이를 위해 문재인 정부에서 처음으로 ‘검찰 출신’인 신현수 변호사를 민정수석으로 임명했다. 신현수 수석은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여겨졌던 인물이다. 신 수석은 2004년부터 2005년까지 참여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사정비서관으로 근무했고, 비슷한 시기 문 대통령은 민정수석이었다. 더구나 신 수석은 청와대 근무 후 검찰로 돌아가 보장된 출세길을 밟지 않고 미련 없이 검찰을 떠나 문 대통령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신 수석은 2012년, 2017년 문재인 대선 캠프에 참여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공신록 제일 앞장에 이름을 올렸다. 문 대통령이 권력기관 개혁 중 가장 먼저 실행한 국가정보원(국정원) 개혁에도 신 수석이 나섰다.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첫 공직을 맡은 것이다. 2018년 물러난 신 수석은 공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법무장관 등 굵직굵직한 자리가 날 때마다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신 수석이 정권 말기 민정수석으로 임명되면서 마침내 청와대에 복귀하자 “왕수석이 돌아왔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연합뉴스·시사저널 포토

“이성윤이 임기말 검찰총장으로 낙점됐을 것”

이런 신 수석이 민정수석의 임무 중 가장 중요한 검찰 인사에서 배제됐다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 힘들다. 문 대통령이 신 수석을 이렇게까지 무시하거나 홀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검찰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인(人)의 장막’에 갇혀 신 수석과 박 장관 간의 갈등을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면서 “그게 아니라면 정권 말기에 들어선 문 대통령이 검찰 개혁 극단파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내몰렸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어느 경우든 레임덕에 대한 우려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신 수석이 문 대통령의 만류에도 사의의 뜻을 접지 않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갈수록 꼬일 수 있다. 신 수석이 40여 일 만에 청와대를 떠나면 후임자 선정도 문제거니와 ‘신현수’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감 때문에 정부·여당 내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 신 수석의 사퇴를 계기로 숨 죽이고 있던 온건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여론이 악화되면 4월7일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도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다. 

신 수석이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고 사퇴할 것이라는 관측에는 이성윤 지검장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성윤 지검장의 유임은 곧 강경파가 차기 검찰총장으로 이 지검장을 낙점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지검장의 경질을 요구했던 신 수석으로서는 ‘이성윤 차기 검찰총장’이라는 상황을 감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검찰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는 이 지검장에게 검찰총장을 맡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성윤 지검장은 윤석열 총장의 수사지휘에 대한 항명과 정권 관련 수사 무마 의혹은 물론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법 출금 의혹 사건에도 연루돼 있다. 이 지검장은 친문 세력의 정권 재창출을 누구보다 바랄 것”이라면서 “문재인 정부에 이보다 더 좋은 검찰총장이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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