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멈춘 사대문”…860억 쓴 ‘박원순표 도시재생’ 성적표는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1.02.24 10:00
  • 호수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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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뉴타운 해제 8년째인 창신동은 지금…재개발 찬반 갈려도 도시재생 앞에선 모두 ‘절레절레’

역한 하수구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왔다. 시멘트벽 곳곳은 부식돼 속이 드러나 있었다. 벽을 덮은 채 말라붙은 페인트는 만져보니 툭툭 떨어졌다. 골목길 안쪽엔 허름한 한옥식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녹슨 가스계량기가 겉면에 줄지어 매달려 있었다. 햇볕이 들지 않는 좁은 골목은 곳곳마다 물웅덩이로 얼룩져 있었다. 간밤에 내린 비가 고여 있는 듯했다. 2월15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모습이다.

창신동은 서울시의 ‘아픈 손가락’이다. 이곳은 인접한 종로구 숭인1동과 함께 2014년 도시재생 대상으로 선정됐다. 서울에서 첫 번째다. 현재 사업이 공식 종료(2017년)된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창신·숭인동에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한 건 박근혜 정부였지만, 서울시가 제안했다는 점에서 박원순 전 시장의 의지가 반영됐다. 이 때문에 ‘박원순표 도시재생’의 표본처럼 인용돼 왔다.

눈이 내린 2월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2동에서 김복순 할머니(83)가 계단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하수구 냄새, 갈라진 벽화…“도움 된 거 없다”

안팎에선 비판도 적지 않았다. 재개발 기회를 앗아갔다는 이유에서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사업이 끝난 2017년 기준 창신동 노후주택 비율은 72.2%로 조사됐다. 성북구 정릉동(74.9%)에 이어 서울에서 둘째로 높았다. 취재 중에 만난 한 주민은 “시간이 멈춘 사대문”이라고 표현했다.

시사저널은 2월15~16일 이틀 동안 창신2동을 찾았다. 이곳은 창신1~3동 중 재개발에 대한 목소리가 가장 높은 곳이다. 창신2동 전체(0.26㎢)를 외곽부터 골목까지 모두 둘러봤다. 이 과정에서 접촉한 주민 10여 명은 모두 도시재생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65)만이 “도시재생 이후 마을이 깨끗해져 살기는 좀 편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관광지처럼 알려지면서 외지인들이 자주 찾아오는 점은 불편하다”고 덧붙였다. 도시재생이란 단어 자체를 모르는 고령의 주민도 있었다.

15일 오후, 김복순 할머니(83)가 비탈길을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 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바로 이 근처가 집”라고 말하면서 연신 무릎을 짚었다. 할머니는 또 가파른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새해 첫날 “도시재생을 점검하겠다”며 밟은 그 계단이다. 계단 한 칸의 세로 길이는 성인 남성 발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였다. ‘왕래가 힘드시지 않으냐’고 묻자 할머니는 “50년째 살면서 익숙해졌다”며 옅은 웃음을 띠었다. 한파에 눈까지 내린 16일 같은 곳을 찾았다. 눈 쌓인 계단은 전날보다 더 올라가기 힘들었다. 김 할머니가 계단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었다.

2월16일 오후 ‘회오리길’이라 불리는 종로구 창신6가길을 짐을 가득 실은 용달트럭이 천천히 올라가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창신2동의 벽화가 그려진 시멘트벽에 금이 가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860억원 예산 중 시급한 집수리에 1억원

할머니에게 ‘도시재생 이후 바뀐 게 있으시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하나 있지”라며 앞쪽의 벽을 가리켰다. 그곳엔 ‘옹기종기 돌산마을 창신동!’이란 글씨가 페인트로 적혀 있었다. 그 외에도 창신동 곳곳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채색 상태는 나쁘지 않았지만, 몇몇 그림은 갈라진 벽틈까지 가려주진 못했다.

창신동 전통시장(창신골목시장)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정소연씨(51)는 “벽화 몇 개 그려놓고 도시재생이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창신·숭인 도시재생사업에는 총 860억원의 비용이 들어갔다. 정부와 서울시, 종로구 등이 나눠서 냈다. 이 중 ‘창신골목시장 활성화’에 4억5000만원이 쓰였다. 정씨는 “그 돈이 장사에 도움이 된 건 하나도 없다”며 “다 간판 바꿔주는 데 썼겠지”라고 말했다. 도시재생 얘기가 나오자 식사를 하던 임재성씨(53)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도시재생이랍시고 박물관이니 뭐니 지어 가지고 방문객들은 좋아하는 모양이데요. 원주민들은 아무도 안 찾아요.”

시장 내 카페를 운영하는 최영숙씨는 “시장 개발비로 가게에 창신동 홍보영상 나오는 텔레비전 달아줬는데 시끄러워서 안 켠다”고 했다. 카페에 걸려 있는 벽걸이TV의 코드는 뽑혀 있었다. 최씨는 “전통시장 단점으로 지목되는 위생 상태와 통행로부터 개선해 줬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곽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내리막길을 따라 걸었다. 경사가 족히 30도는 돼 보였다. 굴곡이 심해 ‘회오리길’이라 불리는 창신6가길이다. 눈송이가 노면 틈새를 채우고 있었다. 화물을 잔뜩 실은 용달트럭이 천천히 올라왔다. 잠시 멈췄다가 다시 출발할 때, 바퀴가 헛돌더니 뒤로 살짝 밀렸다. 뒤에 있던 기자는 황급히 샛길로 몸을 피했다. 마을의 안전 상태는 주민들의 우려 중 하나였다. 이태중씨(60)는 “도로가 너무 좁아 불이라도 나면 소방차는 못 들어온다”며 “집수리를 하려고 해도 자재를 운반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집수리 지원은 주민들이 꼽은 시급한 정책 중 하나다. 도시재생사업 예산에도 집수리 비용이 포함돼 있다. ‘서울가꿈주택’ 2000만원과 ‘희망의 집수리’ 8600만원이 그것이다. 수리비 전체가 아닌 일부만 지원한다. 게다가 노후 단독주택(1037동·주택산업연구원 2017년)만 따지면 가구당 지원되는 수리비는 약 10만원에 불과하다. 강대선 창신동 공공재개발추진위원회 위원장은 “본인이 내야 하는 비용이 부담스러워 정화조 수리도 못 한 주민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결국 다시 재개발 바람이 불고 있다. 창신동은 2013년 재개발 기반의 뉴타운 대상에서 빠지고 도시재생 1호 지역이 됐다. 하지만 불만을 가진 주민들이 공공재개발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LH 등 공기업이 재개발에 참여해 용적률 상향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다. 대신 늘어난 주택은 환수해 공공임대용으로 활용한다. 지난해 11월 종로구는 창신동을 공공재개발 후보에서 제외했다. 도시재생사업 지역은 배제한다는 정부 입장 때문이다. 이에 창신동 일부 주민들은 행정심판을 제기한 상태다.

동대문역에서 창신2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전봇대. 이 전봇대는 건물과의 거리 확보를 위해 휘어져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동대문역에서 창신2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전봇대. 이 전봇대는 건물과의 거리 확보를 위해 휘어져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전면 철거 불가능”…’제3의 길’ 필요성 제기돼

단 어디까지나 ‘일부’다. 모든 주민이 공공재개발에 찬성하는 건 아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남성(50)은 “재개발하면 어쨌든 수년 동안 임시거처에 살아야 하는데 너무 불편할 것”이라고 했다. 한아무개 할아버지(75)는 “다주택을 보유한 노인들은 월세 받아먹고 사는데, 재개발돼서 수입이 없어지면 정부가 여생을 책임질 건가”라고 비판했다. 김임자 할머니(78)는 “대통령 바뀔 때마다 재개발 갖고 장난치는 곳이 여기”라며 “높은 건물 들어서면 한양도성 안 보인다고 해서 재벌이 와도 (재개발) 못 할 거다”라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이미 뉴타운 지정이 해제될 때 대다수 주민의 재개발 반대 의사가 드러난 바 있다. 당시 창신·숭인 뉴타운 촉진구역 14곳 중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구성된 구역은 1곳뿐이었다. 이는 나머지 13곳의 주민 50% 이상이 위원회 구성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임재성씨는 “재개발 열풍으로 외지인들만 혜택을 보고 원주민들 사이에선 갈등만 일어났다”고 꼬집었다.

손경주 창신숭인도시재생협동조합 상임이사는 “재개발식 전면 철거는 가능하지도 않고 피해만 입힐 것”이라며 “도시재생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을을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소화기 보급과 238억원을 들여 진행 중인 노후 하수관 정비 등이 그 예다. 손 이사는 “집수리 지원사업도 더 큰 규모로 추진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좁은 골목과 가파른 길은 보완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또 “집들이 겉으로는 낡아 보여도 어포더블 하우스(affordable house·거주 가능한 서민용 주택)”라고 주장했다.

강대선 공공재개발추진위위원장은 “아픔 없는 변화가 어딨겠나”라며 “재개발하면 시세대로 보상금도 받을 텐데 주민들이 너무 타성에 젖어 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박원순표 도시재생을 전면 수정해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강 위원장은 이런 말을 남겼다. “마을 꼭대기에 가면 ‘인스타 핫플’로 유명한 카페가 하나 있어요. 창신동 전경이 다 보여요. 작년 9월에 거기 앉아 있는데, 한 꼬마가 아빠에게 ‘저런 곳에도 사람이 살아?’라고 묻는 걸 들었습니다. 주민으로서 너무 씁쓸했습니다.” 그가 말한 카페를 찾았다. 70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통유리창 밖을 내다봤다. 빼곡한 주택 지붕을 눈이 온통 덮고 있었다. 카페 방문객들은 사진을 찍으며 평일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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