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와 김봉진, 두 괴짜는 ‘이것’을 위해 기부했다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2.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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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전 재산 절반 이상 기부 약속
‘사회 문제’와 ‘불평등 해소’에 방점
재산 절반 이상 기부를 약속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왼쪽)과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부부 ⓒ 연합뉴스
재산 절반 이상 기부를 약속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왼쪽)과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부부 ⓒ 연합뉴스

김범수(55) 카카오 이사회 의장에 이어 김봉진(45) 우아한형제들 의장도 전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내놓기로 하면서 '기부 훈풍'이 불고 있다. 두 괴짜의 기부는 기존 한국 재계나 기업가들이 했던 것과는 결이 다른 환원이다. '공동체와 사회문제 해결', '불평등 해소' 등에 방점을 찍으며, 재산·경영권 대물림을 반복하던 기존 재계와는 다른 길을 걷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신선한 충격' 불러온 두 기업가의 기부

18일 국내 배달 앱 1위 '배달의민족' 창업자인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은 자신의 재산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김 의장은 세계적 기부클럽인 '더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의 219번째 기부자로 등록됐다고 밝혔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다. 

더기빙플레지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부부가 2010년 설립한 자선단체다. 10억 달러(한화 1조원)가 넘는 자산을 보유해야 가입 대상이 되고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해야 한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 영화 스타워즈의 조지 루커스 감독,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 회장,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등이 회원이다.

김봉진 의장의 재산은 배달의민족을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매각하면서 받은 DH 주식 가치 등을 포함해 1조원대에 이르며, 5000억원 이상이 기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보다 앞서 지난 8일에는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의장도 재산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김범수 의장의 재산은 10조원대로 추정되며 최소 5조원이 기부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재계 인사들 가운데 수 조원 단위의 재산 기부를 약속한 것은 김범수 의장이 처음으로, 그야말로 파격적인 기부를 선언했다. 

 

금액도, 방식도 달랐던 기부 결정

금액을 뛰어넘어 이들의 기부 결정이 주목받는 것은 이전 세대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기부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기업가들의 기부는 주로 횡령·배임 등으로 사법처리 대상이 되자 마지못해 선택한 돌파구인 경우가 많았고 그마저도 그룹 내 재단을 거쳐 비용을 집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자산의 절반'을 떼놓기로 공표한 것은 없던 일이다. 

그러나 김봉진 의장은 더기빙플레지에 자산 기부 뜻을 공식화하면서 이런 흐름에서 벗어났다. 김 의장은 자신의 자녀들 역시 기부 흐름에 동참한다는 뜻을 피력했다며, 경영권이나 부의 승계가 아닌 '기부 대물림'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특히 두 사람이 아직 40~50대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때가 아닌 장기간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시점에 '전 재산 절반 기부'를 결정한 것도 이색적이다.  

김범수 의장은 내부 구성원들과 구체적인 기부 방안에 대한 논의를 거쳐 이를 현실화하기로 했다. 김범수 의장의 자산이 대부분 카카오 주식인 만큼, 기부 대상과 실행방안 등이 구체화되면 직접 후원방식을 설계한 뒤 주식을 일정 부분씩 처분해 지원하는 방식이 될 것이란 견해가 많다. 장기적으로는 더기빙플레지와 같은 자선단체를 직접 설립하는 방안도 점쳐진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 연합뉴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 연합뉴스

'흙수저 신화'에서 '기부 개척자'로

'공동체'와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이 짙게 깔린 점도 다르다. 두 사람의 이같은 문제 의식은 모두 '밑바닥'에서부터 출발한 자수성가형 기업가라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봉진 의장은 수도전기공고와 서울예술대학 실내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디자인그룹 이모션, 네오위즈, 네이버에 다니다가 2010년 우아한형제들을 창업했다. 김 의장은 그동안 사랑의열매에 71억원을 기부하는 등 이미 100억원 넘는 재산을 기부했다. 

김봉진 의장은 더기빙플레지와 맺은 서약서에서 "고등학교 때는 손님들이 쓰던 식당 방에서 잠을 잘 정도로 넉넉하지 못했던 가정 형편에 어렵게 예술대학을 나온 제가 이만큼 이룬 것은 신의 축복과 운이 좋았다는 것으로 밖에는 설명하기가 어렵다"며 혼자 힘으로 이뤄낸 성취가 아님을 강조했다. 그는 서약서에 자선단체 설립 구상을 밝히며 "교육 불평등에 관한 문제 해결, 문화 예술에 대한 지원" 등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범수 의장도 마찬가지다. 국내 IT 창업가 1세대로 꼽히는 김 의장은 '흙수저 신화'로 불린다. 집안 5남매 중 유일하게 대학을 나온 김 의장은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후 한게임을 창업해 2000년 네이버와 합병시켰다. NHN의 대표를 7년간 맡기도 했다. 이후 김 의장은 독립해 2010년 '카카오톡' 서비스를 내놨고, 카카오톡이 국민 메신저로 자리잡으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김범수 의장은 기부를 발표하며 "살아가는 동안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며 "격동의 시기에 사회문제가 다양한 방면에서 더욱 심화되는 것을 목도하며 더이상 결심을 더 늦추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카카오가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을 찾고 지원해 나갈 생각"이라며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문제 해결에 앞장서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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