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국가의 진리 독점을 금지한다”
  • 황근 선문대 교수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1.02.23 10:00
  • 호수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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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지위·능력에 관계없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평등의식을 바탕으로 성립한다. 즉, 신분이나 경제적 능력에 따른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누리는 자유민주주의는 국가의 우월적 지위와 권력 독점을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에 의한 지식의 독점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요소로 간주된다. 이전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역사 국정교과서’ 정책은 찬반 여부를 떠나 국가가 역사적 지식과 판단을 독점하는 것으로 사회적 다양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받았다. 그렇다고 편향된 시각으로 왜곡 기술된 역사 교과서들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2020년 10월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긴급토론회,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타당한가?’에서 지성우 성균관대 교수(왼쪽 네 번째)가 발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10월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긴급토론회,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타당한가?’에서 지성우 성균관대 교수(왼쪽 네 번째)가 발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토머스 제퍼슨의 ‘사상의 공개시장’

17세기에 시작된 자유주의 언론사상은 국가의 지식 독점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국가를 비롯한 어떤 외적 압력 없이 자유롭게 듣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다. 이같이 자유로운 표현 행위는 한 사회에서의 진리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아닌 모든 구성원들에 의해 선택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의 ‘사상의 공개시장(Open marketplace of idea)’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한마디로 한 사회의 진리를 소수가 전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근대국가 등장 이전까지 모든 국가는 진리를 독점함으로써 권력을 유지·강화해 왔다. 심지어 근대 이후에도 적지 않은 국가에서 진리를 독점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은 대부분 진리 독점을 금지하는 제도적 장치들을 가지고 있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도 그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언론에 의한 지식 독점 현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언론의 자유는 한 나라의 민주화 정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고 있다.

최근 정부·여당이 추진하려고 하는 이른바 언론 개혁 법안들은 심히 우려된다. 이른바 ‘가짜뉴스’에 의한 피해에 대해 징벌적 손해보상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인터넷 유튜브나 SNS를 통해 확산되고 있는 거짓 정보들의 피해는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불리한 언론보도나 인터넷 정보들을 가짜뉴스라고 비판하면서 부풀려진 측면도 있다. 특히 가짜뉴스가 거짓이나 속임수 같은 객관적 의미가 아니라 정치적인 유불리에 따라 규정된 상대적 의미가 되고 있는 점은 큰 문제다. 현 정권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언론보도나 유튜브 정보들을 가짜뉴스라고 공격해 온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처럼 ‘가짜’의 명확한 기준도 없고 각자 이해득실에 따라 평가가 상반되고 있는 상태에서 정권이 가짜를 규제하겠다고 나섰다. 언론을 징벌적 보상이라는 방식으로 제압하는 것이다. 징벌적 손해보상제는 공정성이나 실효성에 의문을 일으킨다. 무엇보다 언론보도와 인터넷 내용물의 진실성과 허위사실에 의한 피해 정도에 대해 객관적 기준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표현물에 대한 윤리적 판단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사회적 분위기에 크게 영향받기 마련이다. 이처럼 객관화될 수 없는 상태에서 내용 규제는 권위주의 언론 통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 음란, 외설, 허위사실, 과장 같은 추상적 규제들은 실질적 효과보다 모든 의사소통 행위 자체를 억압하는 ‘위축효과(chilling effect)’를 유발하게 된다. 여기에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적용하게 되면 표현의 자유는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언론보도나 인터넷 내용물 같은 사회적 정보들에 대한 규제는 그로 인해 기대되는 이익과 손실에 대한 이익형량(ad-hoc balancing)에 대한 사회적 판단에 기초해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언론 내용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이익보다 손실이 더 크다는 것이 정설이다. 1964년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New York Times Co. v. Sullivan 315 U.S. 254)’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공직자(혹은 공인)가 제기한 언론의 명예훼손은 당사자가 ‘언론의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를 입증하도록 판결한 바 있다.

현재 국회 의석수나 일방통행식 정치행태로 보아 집권당이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언론 개혁 6법’도 가볍게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법이 제정된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정부나 이익집단들의 언론 압박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성이 있다. 극단적으로 정치권력이 비판적인 언론이나 인터넷 정보들을 공격하는 통제 수단이 될 수 있다. 특히 자의적이고 선별적으로 규제하게 되면 규제순응성(regulatory compliance)을 담보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위협적 환경을 조성해 언론이나 인터넷의 자기규제(self-censoring)를 압박하게 될 것이다. 정상적인 민주국가에서는 재앙적 상황이지만 반민주적 정치권력에게는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언론 통제 수단이 될 수 있다.

 

언론 자유 위축은 민주주의의 재앙

그렇지 않아도 현 정권은 ‘5·18 관련법’ ‘대북전단법’ 등으로 사상·표현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국내외로부터 받고 있다. 근거 없이 특정 사안이나 인물을 비하하는 반민주적 행위들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고 모든 의사소통 행위를 금지하거나 위축시키는 것은 민주주의 근간을 위협할 수 있다. 만약 법이 통과되어 모든 언론 행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적용하게 되면 표현의 자유는 크게 위축될 위험성이 있다. 이는 사회적 판단과 결정은 궁극적 진리가 아니라 다수가 선호하는 차선을 모색하거나 최악의 선택을 막는다는 민주주의 원리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 행위는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이 표현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객관적 사실과 합리적 판단에 기초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또 표현된 의견 중에는 불합리하고 극단적이고 심지어 거짓된 것들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그 선택과 판단은 국가권력 같은 소수가 아닌 다수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얼핏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완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느리게 정착되면서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다수의 선택을 중시하는 언론 자유를 탄생시켰다. 어떤 선한 목적이라 할지라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 행위는 정치적·사회적 다양성을 위축시키게 된다. 이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재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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