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인사’ 후폭풍에도…길어지는 윤석열 침묵의 의미는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2.22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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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싱’ 논란 검사장급 인사에 우회적으로 불만 표출
박범계 자충수·與 강공 속 ‘득실’ 따진 전략적 침묵 가능성도
윤석열 검찰총장이 2월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2월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검찰 인사를 둘러싸고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의를 표명하는 등 혼란을 거듭하는 상황에서도 윤석열 검찰총장의 '침묵'은 계속되고 있다. 법무부 장관과 민정수석 간 갈등이 검사장급 인사에서 출발했고, 해당 인사에 윤 총장의 뜻이 상당부분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기에 윤 총장의 공개적 반발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윤 총장은 또 한번 침묵을 택했다. '검찰 개혁' 관련 시스템 변화와 제도 마련에 강경한 입장인 정부·여당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점과 '전략적 침묵'으로 박 장관과 청와대 내부 조율 실패를 더욱 부각할 수 있다는 전략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중간 간부' 인사 후 입 열까

법무부 검찰인사위원회는 22일 검찰 중간간부급(차·부장검사) 인사 관련 논의를 열고 '공석 충원 수준'으로 인사를 최소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오는 7월 윤 총장이 퇴임하고 새 검찰총장이 취임하는 하반기에 대규모 전보 인사가 예상되는 만큼 시급한 인사 사안을 해결하는 수준에서 소규모로 단행하겠다는 것이다. 

관건은 윤 총장이 요구한 인사가 어느 수준까지 관철될 수 있을지다. 윤 총장은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대전지검 이상현 형사5부장,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을 맡은 수원지검 이정섭 형사3부장 등의 유임을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사장급 인사에서 윤 총장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고, 검찰 출신 민정수석 의견도 사실상 '패싱' 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에 중간 간부 인사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만일 중간간부 인사에서 정권 관련 수사를 담당하는 인물들이 교체될 경우에는 윤 총장이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출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를 반영하듯 윤 총장은 이날 대검을 통해 법무부와 청와대를 향한 '간접적인 불만'을 표출했다.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는 검찰인사위에 출석하는 길에 취재진과 만나 "대검에서는 현재 진행 중인 중요 사건의 수사팀과 중앙지검 보직 부장들의 현 상태를 유지하는 한편, 사직으로 발생한 공석을 채우고 임의적인 '핀셋 인사'를 하지 말 것을 강력히 요청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조 차장검사가 언급한 '핀셋 인사'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한동훈 검사장 사건 처리를 두고 대립해 온 변필건 형사1부장으로 추정된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 지검장이 유임한 만큼 변 부장이 바뀔 것이란 가능성이 거론돼 왔다. 

조 차장검사는 "이번 인사와 관련해 대검은 인사 정상화를 위한 광범위한 규모의 인사 단행을 요청했는데, 법무부는 조직안정 차원에서 빈자리를 메우는 소규모 인사 원칙을 통보해왔다"고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이어 "민정수석의 사표 파문의 원인은 인사 조율 과정에서 총장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안다"며 "더 이상 인사와 관련해 의견이 대립하지 않고 법무부와 대검에 안정적 협력관계가 회복되길 바란다"고 했다.

'협력관계 회복'을 언급했지만 인사 관련 윤 총장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을 재차 꼬집으며 청와대를 향한 날선 발언을 쏟아낸 것이다. 이 때문에 중간간부 인사가 윤 총장 측이 정권과 또 한번 '대립각'을 세울지 여부를 결정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오는 7월 윤 총장이 퇴임을 앞두고 있고 여전히 야권 내 유력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만큼, 존재감을 다지기 위해 '추-윤 사태'에 이은 격돌이 벌어질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2월1일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만난 뒤 법무부를 나서는 모습 ⓒ연합뉴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2월1일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만난 뒤 법무부를 나서는 모습 ⓒ연합뉴스

'득과 실' 따진 전략적 침묵 가능성도

박범계 장관의 '패싱' 논란으로 확전된 검찰 인사 갈등은 청와대와 박 장관에게 치명상을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박 장관의 '최종인사안' 보고 여부와 상관없이 교통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리더십에 타격을 받았다. 검찰 개혁 완수를 천명했던 박 장관은 이번 사안으로 야당의 집중포화를 불러오는 자충수를 뒀다. 

이런 상황에서 윤 총장이 전면에 나서 정부·여당과 대립각을 세울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최종 인사권자가 결국 문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검찰총장의 불만 표출이 또 다른 반발을 불러오게 된다는 셈법이 작동했을 가능성도 있다. 

여당이 검찰 개혁에 강공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만큼 불필요한 자극을 할 필요가 없다는 계산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에 이어 중대범죄수사청(가칭) 설치에 속도를 내며 '검찰 수사권 박탈'에 힘을 싣고 있는 만큼 인사 관련 발언으로 이를 더욱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충돌과 추 장관의 사퇴 등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여권 내부에서 '검찰 개혁'을 한층 강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동력이 작동하는 것도 윤 총장으로서는 부담스런 부분이다. 윤 총장이 '징계 국면' 이후 일선 검사와의 대화나 지방 검찰청 순회 등을 재개하지 않은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읽힌다. 

향후 윤 총장은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 의혹 사건과 김학의 출국금지 의혹 사건 수사에 속도를 내며 청와대를 겨냥한 수사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잔여 임기가 만 4개월에 불과한 만큼, 중간간부 인사 이후 두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기소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윤 총장이 박 장관에 정권 관련 수사를 지휘하는 부장검사들의 잔류를 요청한 것도 정권의 '아킬레스 건'을 계속 겨누겠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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