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탄에도 굴하지 않는 미얀마 민주주의 열망 “군부독재 타도”
  • 서지민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2.2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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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시민 수백만 명 거리로
2월22일 미얀마 만달레이시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쿠데타 반대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거리를 메웠다. ⓒ연합뉴스=로이터
2월22일 미얀마 만달레이시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쿠데타 반대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거리를 메웠다. ⓒ연합뉴스=로이터

이달 1일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미얀마에서 22일 최대 규모의 쿠데타 규탄 시위가 발생했다. 전국적으로 수백만 명이 총파업에 참여하며 거리를 가득 메웠다. 전날 군정이 유혈진압을 예고했지만, 미얀마 시민들의 시위는 더욱 거세졌다.

현지 매체 및 외신, SNS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부터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부터 수도 네피도 등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시위를 위해 거리로 나섰다. 시위의 중심지로 부상한 양곤의 흘레단 사거리는 인파로 ‘강을 이룬’ 모습이었다. 한 네티즌은 SNS에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지금까지 중 가장 많은 군중이 평화시위에 나섰다”고 말했다.

양곤 교민인 이정호씨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오늘은 오전 10시도 안돼서 쿠데타 이후 어느 때보다 많은 시민이 거리에 모였다”고 전했다.

이날 시위는 ‘22222총파업’으로 촉발됐다. 쿠데타 이후 의료진 등이 주축이 된 ‘시민불복종운동’은 주말 동안 SNS를 통해 이날 미얀마 전역에서 모든 업종이 참여하는 총파업을 벌이자고 촉구했다. 실제 소규모 상점 및 영업장은 물론 미얀마 최대 소매업체인 ‘시티마트’, 대형 도매업체인 ‘마크로’ 등도 이날 파업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22222총파업은 2021년 2월22일에 벌이는 시위라는 점에서, 2를 다섯 개 붙였다. 이는 지난 1988년 당시 민주화를 요구하며 진행했던 ‘8888시위’를 모델로 삼았다. 1988년 8월8일 당시 미얀마 수도 양곤에서는 수만 명의 학생들이 독재자 네윈 장군의 타도와 민주화를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2월22일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 쿠데타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그려진 카드를 들고 거리 시위에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EPA
2월22일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 쿠데타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그려진 카드를 들고 거리 시위에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EPA

군정은 총파업을 예고한 시위대에 전날 ‘유혈진압’을 암시하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AP통신에 따르면, 국가행정평의회(SAC)는 국영 MRTV를 통해 “시위대가 22일 폭동과 무정부 상태를 일으키도록 선동했다”며 “시위대는 국민들, 특히 감정에 휩쓸리기 쉬운 10대와 젊은이들을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대립의 길로 선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위가 커지면서 사상자도 속출하고 있다. 경찰의 실탄 발사로 인해 지난 19일 네피도에서 1명, 20일 만달레이 2명·양곤 1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1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고, 전날까지 569명이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 시민들의 불복종운동에 국제사회의 여론도 움직이고 있다. 전날 유엔·미국·유럽은 각자 공식 성명을 통해 미얀마 군정을 규탄하고 나섰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트위터로 “미얀마 군경이 시위대에 발포하고, 지속해서 시위 참가자와 다른 사람들을 구금·공격하고 있다는 보도에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우리는 미얀마 시민들의 편”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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