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둬야 하나” 전북도의회 의원 관사 존치 ‘논란’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1.02.2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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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관계 얽힌’ 전북도 예산으로 2014년 관사 매입
“추세 역행하며 ‘집행부 제공’ 관사 집착 온당치 못해”
“도의원, 사고위험 상존…모텔 전전 모양새 좋지 않아”

전북도의회 의원생활관(관사)이 논란이다. 먼 거리에서 출퇴근하는 의원들의 의정활동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존치가 필요하다는 도의회의 주장에 대해 “권위주의적 발상이다”는 부정적 시각이 맞서고 있다. 관사는 일제시대와 관선시대의 권위주의적인 산물로, 도로망이 사통팔달 확충돼 접근성이 높아져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도의회의 ‘오피스텔 관사’ 존치는 최근 큰 파문을 몰고 온 지자체장의 미투사건 이후 침실있는 밀실 공간에 대한 사회 전반적 부정적 기류에도 역행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전북도의회 표지석 ⓒ시사저널 정성환
전북도의회 표지석 ⓒ시사저널 정성환

전북도의회 관사는 어떤 곳?

전북도의회는 지난 2014년 전북도에 1차 추가경정예산안에 관사 매입 예산 3억5220만원을 편성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관사 매입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자 도의회는 30평형대 아파트 구입을 포기하고, 그해 10월 1억5800만원을 들여 현재의 오피스텔을 구입했다. 도의회에서 5분 거리인 전북도청 남문 앞 D오피스텔 11층에 입주해 있다.

관사는 공급면적 24평으로, 침대 방과 작은 방 1개, 거실, 샤워장, 화장실과 냉장고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도의회 전담 직원 1명이 음료수와 생활용품 등 각종 편의용품 공급과 청소 등의 관리를 맡고 있다. 지난해 도시가스비 등 관리비로 214만원의 예산이 들어갔고, 올해는 360만원이 책정됐다. 

이 관사는 무주·남원·장수 등 동부 산악권과 고창 등 서해안 원거리 출퇴근 6명의 도의원들이 묵기 위한 것이다. 지방자치법엔 육로(편도) 60㎞ 이상, 도서지역 30㎞ 이상의 지역구 의원에 대해 교통비와 숙박비를 지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도의회는 해당 의원들뿐만 아니라 39명 전체 의원에 스마트키 비밀번호를 알려줘 수시로 이용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전북도의회는 관사 대신 권위적 색채가 덜한 의원생활관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존치 측 “의정활동 편의 도모” vs 폐지 측 “권위주의적 발상”

당시 전북도의회는 먼 거리를 출퇴근하는 일부 동서부권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전북도에 관사 매입을 요구했다.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고 행정사무감사 등 회기가 있을 때마다 모텔을 전전하면서 이미지가 실추된다는 점을 논거로 내세웠다.

도의회 관계자는 “밤늦게 상임위 활동을 끝내고 지역구로 돌아가는 의원들이 적지 않아 사고 위험이 많았다”며 “의원들이 회의가 늦게 끝나 귀가하지 못하는 경우 모텔이나 호텔 등을 전전하는데 모양새도 좋지 않았다”고 관사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관사를 이용하게 되면 도의원들의 숙박비와 교통비가 나가지 않는다”고도 강조했다.

원거리 지역 의원들은 관사 존치에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다. 의정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정린(남원) 의원은 “회기 때가 되면 늦게 끝나 1시간 걸리는 남원까지 갔다가 다음날 일찍 나와야하기에 시간 낭비는 물론 육체적으로 무척 고단하다”며 “행감 등 회기 중에는 아예 고창 지역 의원 2명과 함께 숙박하며 자료 검토 등 의정 준비를 충실히 할 수 있어 좋다”고 옹호했다. 

전북도의회 생활관(관사)가 입주해 있는 오피스텔 ⓒ시사저널 정성환
전북도의회 의원 생활관(관사)이 입주해 있는 오피스텔 ⓒ시사저널 정성환

관사 없애는 추세에 역행

하지만 의정활동비와 월정 수당을 지급받는 의원들이 집행부가 마련한 숙소까지 제공받는 데 대한 도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의정활동을 돕기 위해 연간 수천만원의 의정활동비를 지급하는 상황에서 굳이 관사를 둬야 하느냐”며 “출퇴근에 어려움이 있어 관사가 필요하다면 의정활동비를 사용해 도의원 자신이 사비로 거처를 구입하는 게 맞다. 잇속챙기식 권위주의적 발상이다”고 비판했다. 

현재 도의원들에게는 연간 5570만원의 의정비가 지급된다. 이 중 3770만원은 급여 성격의 월정비이며, 1800만원은 의정활동비다. 도의회는 올해 의원 국외여비 명목으로 1인당 300만원씩 1억5500만원의 해외연수비를 확보해 놨다. 허투로 쓰일 한푼의 예산이라도 깎는데 앞장서야 할 도의원들이 오히려 지방예산을 축내고 있다는 것이다. 

원활한 교통망도 비판을 뒷받침한다. 도로망이 잘 갖춰져 도의회에서 가장 먼 무주·장수·고창 지역도 승용차로 1시간 남짓 거리에 불과하다. 전주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무주군청까지(67.1㎞)도 1시간 10분에서 20분이면 도착한다. 남원과 장수도 1시간 남짓 걸린다. 이곳을 매일 출퇴근하는 공무원이나 교사 등도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는 관계자는 “심지어 해마다 100일 이상 폭풍주의보로 꼼짝없이 발이 묶이는 섬에 사는 전남지역 도의원들도 관사 구입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꼬집었다. 

의원 관사가 필요한지는 의회 내부에서조차 부정적 입장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도의원은 “도내 전 지역이 1시간 생활권 내로 좁혀질 정도로 교통망이 발달한 상황에서 관사가 꼭 필요한지 의문이다”며 “한 겨울에 회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관사를 주민 공간으로 돌려주는 추세에 비춰볼 때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조심스런 견해를 피력했다. 전북도의회 올해 총 회기 일수는 125일이며, 이 가운데 동절기 마지막 정례회는 11월 28일부터 12월 13일까지 36일간 열린다.  

도민들의 정서적 거부감도 크다. 도의원을 포함해 지방의원들이 그동안 보여준 행태에 불신감 때문이다. 지역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의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각종 이권 개입과 인사 청탁, 비리에 연루되고 해외연수 등 잇속 챙기기에 골몰했다는 것이다. 전반기 2년간 지난 10대 때보다 조례 발의 건수는 40퍼센트나 줄었고, 의정 활동의 핵심인 도정질문도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일은 안하고 잿밥에만 눈이 어두운 꼴이다는 얘기에 다름없다. 그럼에도 의정활동비에다 필요하면 교통비와 숙박비까지 지급되는데 별도 관사 운용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관사를 ‘이해관계에 있는’ 전북도가 마련해 준 점도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다.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 역할을 맡은 도의원들이 관사까지 제공받으면서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또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경찰에 고소한 전 비서가 성추행 장소로 시장 집무실 내 침실을 지목해 불거진 밀실 공간에 대한 따가운 시선도 팽배한 상황이다. 이런 맥락에서 오피스텔 관사 유지에 따른 불필요한 오해나 사고 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관사를 폐지해야 한다는 시각이 만만치 않다. 

전국적으로는 전북 포함 경기와 충북(매입), 경남·경북(임대) 등 5곳만이 장거리 출퇴근 의원들을 위해 관사를 보유하고 있다. 신안 등 도서벽지와 구례, 여수 등 원거리 지역이 많은 전남도의회는 관사를 두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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