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의 檢 중간간부급 인사에 숨겨진 ‘두 개의 전략’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2.23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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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사건’ 감찰맡은 임은정에 수사권 부여
정권수사팀 유임하고 반발 누그러뜨리며 ‘투트랙’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월18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 연합뉴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월18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 연합뉴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패싱'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검찰 간부 인사가 마무리됐다. 초반부터 박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치열한 기싸움은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의표명으로까지 이어지며 격화하기도 했다. 박 장관은 이번 인사에서 윤 총장의 요구를 수용해 반 발 물러서면서도, 예상치 못한 '핀셋 인사'로 윤 총장과 검찰 내부를 겨냥하는 투트랙 전략을 꺼내들었다. 

 

'임은정 카드'로 尹·檢 겨눈 박범계

23일 법무부에 따르면, 전날 단행된 검찰 중간간부급(차·부장검사) 인사에서 임은정 대검찰청 감찰정책연구관(부장검사)이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겸임 발령됐다. 임 부장검사는 이번 인사로 수사권을 확보한 뒤 내부 감찰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법무부가 '최소 규모'를 여러번 강조했기에 18명 전보에 그친 소폭 인사는 어느정도 예견됐던 부분이지만, 임 부장검사에 대한 수사권 부여는 뜻밖이었다. 임 부장검사는 그동안 자신의 업무가 감찰부장이 지시하는 조사에 국한돼 있다며 수사권 부여를 해달라는 요청을 전달했지만, 반영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임 부장검사에 대한 수사권 부여는 박 장관과 정부·여당의 '검찰 개혁' 의지가 그대로 반영된 조치로 풀이된다. 한동훈 검사장 사건 처리를 두고 이성윤 서울지검장과 대립각을 세운 변필건 형사1부장 등에 대한 '핀셋 인사' 여부에 관심이 쏠렸는데, 사실상 임 부장검사에 대한 '핀셋 인사'였던 셈이다. 

임 부장검사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을 수사한 수사팀에 대한 위증강요·강압 의혹에 대한 감찰을 진행 중이다. 한 전 총리 사건의 주요 증인이었던 인물들이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로부터 강압적 수사를 받았고, 위증을 강요했다는 진술이 나온 데 대한 감찰이다. 한 전 총리 사건 수사팀 관련 공소시효는 오는 3월22일로 만료된다. 공소시효 만기가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박 장관이 임 부장검사에 '칼'을 쥐어주게 되면서 관련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박 장관 입장에서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기겠다는 의중이 반영된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과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 등 정권 관련 수사를 담당하는 인물을 그대로 유임시켜 검찰 내부와 야당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고, 동시에 임 부장검사 카드를 꺼내들어 사실상 검찰 내부를 겨냥한 한 전 총리 사건 수사에 힘을 실어주게 됐다. 

박 장관은 파열음이 일었던 고위간부급 인사 영향을 반영한 듯 이번 인사에서는 "청와대든 대검이든 충분한 소통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하며 인사를 둘러싼 잡음을 선제 차단하기도 했다. 

임 부장검사는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수사권을 부여받은 데 대해 "여전히 첩첩산중이지만 등산화 한 켤레는 장만한 듯 든든하다"고 밝혔다. 그는 "감찰 업무를 담당하는 대검 연구관으로서 이례적으로 수사권이 없어 마음고생이 없지 않았는데, 어렵사리 수사권을 부여받게 됐다"며 "다른 연구관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수사권이지만 저에게는 특별해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

법무부가 2월22일 단행한 중간간부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겸임발령을 받은 임은정 대검 감찰연구관 ⓒ 연합뉴스
법무부가 2월22일 단행한 중간간부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겸임발령을 받은 임은정 대검 감찰연구관 ⓒ 연합뉴스

안팎으로 견제받는 尹, 퇴임까지 '산 넘어 산'

윤 총장은 오는 7월 퇴임을 앞두고 안팎으로 집중 견제를 받게 됐다. 여권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에 더불어 중대범죄수사청(가칭) 설립에 속도를 내며 '검찰 힘 빼기'에 탄력을 더하고 있다. 특히 수사처에 직접 영장청구 권한까지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검찰에 대한 견제 장치를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퇴임 직전까지 윤 총장 고립이 심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법무부도 '검찰개혁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검찰의 수사권 완전 배제를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법무부는 TF에 이성식 성남지청 형사2부장과 김태훈 부산지검 부부장검사를 배치했다. 이들은 검찰총장 권한 분산 등 박 장관이 주장해 온 검찰 관련 주요 개혁 과제에 대한 검토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검찰과 여권, 검찰과 법무부 간 공방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날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는 검찰 인사 논란에 대해 "검사장 인사 과정에서 발생한 민정수석 사표 파문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원인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인사 조율 과정에서 서울중앙지검장 및 대검 부장 교체라는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법무부와 검찰의 안정적인 협력 관계가 깨졌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박 장관을 직격했다. 그러면서 "중요 사건의 수사팀, 대검이나 중앙지검 보직 부장들의 현 상태 유지와 사직으로 발생한 공석을 채우고, 임의적인 핀셋 인사는 하지 말 것을 강력히 요청한 상태"라며 검찰 입장을 전했다.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검찰개혁 특별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박주민 의원은 23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본인들이 행정부 소속 공무원이라는 생각을 안 갖고 있는 것 같다"며 "매우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검찰 측 행태를 꼬집으며 "참담한 느낌이 든다"면서 "대검 수뇌부가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런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계속 소리가 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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