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아직은 아니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3.10 10:00
  • 호수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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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채권금리 동반 급등…실업률·달러 환율·경기 회복 등 변수 ‘수두룩’

올해 세계 국채시장은 2015년 이후 최악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로 전 세계 국채금리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채권금리 상승은 모든 경제주체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업과 가계의 자금 조달 부담을 늘려 경기 회복에 타격을 준다. 증시에서 자금 유출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미 세계 증시에는 타격을 주고 있다.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 주식시장이 동반 하락했다.

국채금리 상승을 가져온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에는 이유가 있다. 미국에서 미시간대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3.3%로 전월 대비 0.3%포인트 상승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앞으로 1년 안에 물가 상승률이 3.3%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는 의미다. 3.4%를 기록했던 2014년 8월 이후 6년6개월 만에 가장 높다.

2021년 3월2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뉴시스
2021년 3월2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뉴시스

美 소비자 “1년 안에 물가 3.3% 상승”

사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는 놀랄 일이 아니다. 장기간 계속된 초저금리 상황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세계 각국은 통화량을 더욱 늘려놓았다. 인플레이션은 시기와 속도의 문제였을 뿐이다. 백신 개발과 보급에 따라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경기가 되살아나고 보복적 소비가 폭발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당장 논란을 촉발한 것은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1조9000억 달러의 대규모 부양책이다. 미국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지난해에만 다섯 차례 경기 부양책을 통해 약 3조7000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1조9000억 달러까지 합치면 미국이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투입하는 재정은 5조6000억 달러로 늘어난다. 지난해 연방정부 본예산인 4조8000억 달러보다 많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부양책 규모가 경제적 피해 수준을 크게 웃돈다고 경고했다. 너무 많은 달러가 쏟아져 한 세대 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인플레이션 압력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 가능성에 선을 긋고 있다. 파월 의장은 일시적으로는 물가가 오를 수 있지만, 앞으로도 저금리 기조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연준의 정책 목표는 실업률 3.5% 수준의 완전고용과 2.0%의 물가 상승률이다. 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현재 수준의 완화정책을 이어가겠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금리 인상이 없다는 연준의 입장에도 시장이 안정을 찾지 못하는 것은 통화 당국이 원하지 않아도 물가가 오르고 금리 역시 따라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은 이미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했거나 코로나 이전보다 높아졌다. 물가가 오르면 시장금리가 먼저 뛴다. 상품가격 상승은 물가를 자극하고, 물가 상승은 채권금리 상승을 다시 부채질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나 중앙은행의 입장이라는 것도 상황이 바뀌면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을 포함해 세계 각국에서는 재정지출을 급속히 늘리면서 부채가 크게 늘어났다. 정부가 부채 비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지출을 줄이고 수입을 늘려야 하는데, 복지 축소와 증세는 정치적으로 선택하기 어렵다. 부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은 인플레이션뿐이다. 게다가 연준 파월 의장의 임기도 내년 1월말까지다. 사람이 바뀌면 정책도 바뀔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자. 이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세계 각국이 대대적으로 돈을 풀면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저성장 추세가 이어지면서 오히려 디플레이션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일본의 ‘아베노믹스’ 사례에서 보듯 재정지출 확대와 과격한 통화 완화정책이 반드시 물가 급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세계 경기는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다. 지금의 금리 상승은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를 반영할 뿐이다. 백신 개발과 접종에 따른 이른바 ‘화이자 효과’다. 인플레이션은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제 상황을 의미한다. 오랜 기간 경제가 과열돼야 한다. 미국 경제만 봐도 지금 상황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문제가 될 수준과는 거리가 있다. 미국의 실업인구는 여전히 약 10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실업률은 6.3%로 코로나19 직전의 3.5%와는 차이가 크다. 구직을 포기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실업률이 10%에 가깝다는 추산도 있다.

경기가 회복되면 바로 고용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미 기업들은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자동화 투자에 나서고 있고, 이는 고용 회복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 고용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 한 소비나 내수가 살아나기는 어렵다. 게다가 이미 낮은 물가 상승률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경제주체들의 심리나 행동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백신 보급과 접종 속도가 느리다. 경기 회복 시점이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 실업률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4.0%로 여전할 것이고, 취업자 수도 크게 회복되진 못할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취업자 증가 숫자를 13만 명에서 8만 명으로 낮춰 잡았다.

인플레이션 걱정하기 전에 경기 회복이 먼저

달러 약세에 따라 환율이 떨어지고 있는 것도 수입 물가 하락으로 이어져 물가의 상승을 억제할 것이다. 당분간 국내적 요인으로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 연준은 지난해 ‘평균 물가 목표제’를 도입하면서 일정한 기간 물가 상승률 합계가 2% 이내라면 일시적으로 잠깐 2%를 넘는다 해도 이를 용인하겠다고 했다. 설사 잠시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를 넘는다고 해도 바로 금리 인상을 하지는 않겠다는 말이다.

앞으로의 상황을 전망해 보자면 이렇다. ‘정부발’ 국고채 발행 물량은 앞으로도 쏟아질 수밖에 없고, 채권금리는 추가로 상승할 수 있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금리는 지금보다 더 올라 연 2%도 넘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하는 건 경기 회복이 확실해진 후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걱정해야 할 이유는 쌓였다. 그러나 경제 상황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경기 회복이 먼저다. 아직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기에는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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