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앞둔 부산의 밑바닥 민심, 與에 실망감 드러내
  • 이상욱 영남본부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21.03.09 08:00
  • 호수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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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박형준 후보 우세, 與 김영춘 후보 추격 판세’ 계속 이어져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하지 않지만, 이번에는 그쪽에 투표하겠다.” 4·7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여야 후보로 나선 김영춘(더불어민주당), 박형준(국민의힘) 캠프 사무실이 위치한 부산진구 중앙대로에서 3월3일 만난 이찬우씨(62)는 이번 선거 투표 의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현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경고하고 싶다”며 이렇게 답했다.

부산일보·YTN 의뢰로 리얼미터가 2월27~28일 만 18세 이상 부산 시민 10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양자 대결 시 지지율에서 박형준 후보(47.6%)가 김영춘 예비후보(29.9%)보다 크게 앞섰다. 이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다. 구체적인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서울시장 보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았던 부산시장 선거가 최근 가덕도 이슈가 불거지면서 뒤늦게 들썩이고 있다. 민주당에 부산은 ‘20년 집권 플랜’의 중심지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부산·울산·경남의 민심을 얻기 위해서는 부산시장 보궐선거 승리가 절실하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하루 전인 2월25일 부산을 방문했고, 이번 보선 결과에 자신의 대권 도전 명운을 걸고 있는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올 들어 네 번씩이나 방문했다. 대선을 불과 1년 앞둔 시점에 문 대통령 등의 행보는 그만큼 4·7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갖는 의미가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시사저널 박은숙·연합뉴스
ⓒ시사저널 박은숙·연합뉴스

“선거 때문에 절차 무시하는 여당에 표 줄 수 있나”

4·7 보선을 36일 앞둔 3월3일 부산 유권자들은 아직 지지 후보를 고민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사상터미널에서 만난 이아무개씨(39)는 “딱히 마음에 드는 정당이 없다”며 “솔직히 후보가 정확히 누구인지 아직 잘 모른다”고 말했다. 

부산 지역은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실패, 부동산값 폭등,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파문,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문 사태 등을 겪으면서 ‘투표로 정부·여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정서가 강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4월 총선에서도 야당인 국민의힘에 밀려 18개 지역구에서 단 3석을 얻는 데 그쳤다. 이렇다 보니 민주당 내에서도 “여론 동향이 심상치 않다.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일자리 창출 실패와 부동산 시장 불안정 등 정책 실패를 겪으며 정부·여당에 실망한 이들이 보궐선거 심판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중앙의 민주당 지도부는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통과로 ‘해볼 만하다’며 자신감을 내비치지만, 부산시당에서는 바닥 민심이 만만치 않다는 신중론이 제기됐다. 실제 부산에서 만난 시민들은 “선거가 한 달 넘게 남았다. 결과를 섣불리 가늠하기 어렵다”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정부·여당에 대한 실망감을 많이 드러냈다. 

50대 이상 중·장년층은 민주당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연산로터리에서 만난 김아무개씨(65)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은 국가 백년대계를 결정할 사업”이라며 “그런데도 설계도 없이 예비타당성조사 면제가 이뤄졌다. 단순히 선거에 이기려고 절차를 무시하는데 표를 줄 수 있나”라고 했다. 북구 만덕동에 사는 박아무개씨(56)는 “이번 보궐선거가 오거돈 전 시장의 불미스러운 일로 치러지는 것 아니냐”며 “어떻게 민주당 후보를 찍을 수 있겠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 정부 들어 많은 게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오히려 나빠졌다. 실망이다”고 했다. 

부산시장 자리 재탈환을 노리는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는 17대 국회의원(부산 수영구)과 청와대 정무수석(이명박 정부), 국회 사무총장 등을 지냈다. 그간 보수정당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다는 평가와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의 불법사찰 의혹 관련 여부가 팽팽하다. 

박 후보는 선거가 다가올수록 자신의 지지율이 견고해지는 것에 대해 “부산의 혁신을 일으킬 사람 덕분”이라고 비결을 꼽았다. 그는 부산 시민이 경제 회생과 일자리 창출 등 선순환 물꼬를 터줄 시장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지금 출마한 후보 중에서 누가 그런 역량을 가지고 있느냐를 시민이 판단할 텐데, 그게 바로 자신에 대한 지지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 후보는 ‘혁신 역량 강화 일꾼’이라는 이미지를 한껏 부각시키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지난해 12월15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부산에서의 혁신은 청년에게 미래가 있는 도시를 만들어주는 것”이라며 “부산을 5년 안에 전국의 가장 모범적인 산학협력 도시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가장 실천하고 싶은 주요 선거 공약으로 부산을 대한민국 대표 산학협력 도시로 만드는 것, 어반루프 도입을 통한 15분형 도시로 부산을 재구성하는 것, 힘내라 자영업 7대 패키지 등 세 가지를 든다. 

 

“지역균형개발 위해 예타 면제한 여당에 더 믿음 가”

부산 서면역에서 만난 이아무개씨(38)는 “지역균형개발을 내세우면서 과감하게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추진한 민주당이 야당보다 더 믿음이 간다”며 “물론 전임 시장의 성추문에 실망했지만, 민주당이 힘을 모아 특별법까지 통과시킨 건 칭찬받을 만하다”고 했다. 

김영춘 예비후보는 요즘 자신을 ‘가덕’이라 부른다. 이번 보궐선거에 도전하면서 스스로 붙인 ‘호(號)’다. ‘가덕도 신공항을 관철하겠다’는 그의 강한 의지가 ‘가덕’이란 두 글자에 오롯이 담겨 있는 셈이다. 그는 지난 1월12일 출마선언을 하면서 “부산을 동북아시아의 싱가포르로 만들고, 가덕도 신공항의 첫 삽을 뜨는 시장이 되겠다”고 밝혔다.

3선 국회의원이자 문재인 정부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이었던 그에게 판세는 여전히 불리하다. 1995년 지방선거가 도입된 이후 23년 만에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부산이 민주당 후보를 시장에 당선시켰지만 ‘성추행’으로 낙마해 치러지는 보궐선거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임기 말에 나서는 여당 후보라는 점도 결코 이점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민주당 측은 “부산에서 쉬운 선거는 없었다”며 “야당 시장이 당선되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다수당인 국회와 원활한 협조를 통해 현안을 해결할 수 있겠느냐”는 점을 어필하고 있다. 

김 예비후보는 글로벌 경제도시, 녹색도시, 국제문화도시의 꿈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2030년 세계엑스포 부산 개최, 수소·전기차 중심 정책, 바젤아트페어 유치 등을 약속했다. 

부산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동교동계’인 배준현 민생당 부산시당위원장도 도전장을 던졌다. 그는 “48년 동안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 시민으로 살아왔고 29년째 초심을 잃지 않고 양심과 소신을 지키며 정당 활동을 해 왔다”며 “개인의 출세와 이기심으로 일하는 시장이 아니라 오직 부산 시민과 민생만 생각하는 시장이 되겠다”고 했다. 보수 논객이자 유튜버로 활동하는 정규재 펜앤드마이크 대표도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정 대표는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분노를 받아내고, 보수 전체를 아우르는 에너지원이 되지 못한다. 보수 전체를 재건축해야 한다”며 “정치를 안 하기로 했는데, 도저히 이대로는 안 돼 희생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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