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항은 신공항이고, 선거는 선거”…부산 민심 르포
  • 부산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1.03.09 10:00
  • 호수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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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앞두고 띄운 여권發 ‘가덕도 신공항’ 이슈 파괴력은?
“시장 선거가 ‘오거돈’ 대 ‘신공항’ 싸움이 돼 버렸다”

거리마다 ‘경축’ 현수막 일색이었다. 부산역을 비롯해 주요 건물의 벽면에도 2월26일 국회에서 이뤄진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제정’을 자축하는 문구들이 내걸렸다. 신공항 앞에선 부산 내 여야 정치권도, 경쟁하던 지역 언론사들도 환영의 메시지로 단일화된 분위기였다. 정부와 여당이 작심하고 쏘아 올린 신공항 이슈에 부산 일대는 분명 들썩이고 있는 듯 보였다.

4·7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한 달 앞두고 고심 중인 바닥 민심의 통일도 이뤄졌을까. 특별법이 처리되고 문재인 대통령까지 다녀가 신공항 이슈가 한껏 달아오른 3월2일과 3일, 취재진이 마주한 부산 민심은 세간의 소란에 비해 차분했고 또 신중했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 자체에 부산 시민들은 대부분 긍정적이었다. 제2의 수도라는 명칭이 무색할 만큼 무너진 부산 경제에 ‘지푸라기’가 돼 줄 거란 기대에서다. 그러나 국회의 이번 ‘특별법 처리 과정’에 대한 평가는 갈렸다. 실제 2월26일 실시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표본은 적지만 부산·울산·경남(부·울·경) 응답자 가운데 특별법 통과가 잘된 일이라는 응답(38.5%)과 잘못된 일이라는 응답(54.0%)은 나뉘었다. 신공항엔 찬성해도 신공항 특별법 처리 과정까지 박수 쳐줄 순 없다는 게 지역 여론인 셈이다.

신공항 부지로 결정된 부산 강서구 가덕도ⓒ시사저널 최준필

“공항은 환영하지만, 특별법 처리엔 박수 쳐줄 수 없어”

부산에서 학원강사로 일하는 30대 정아무개씨는 “투박하게 밀어붙인 면도 있지만 그렇게 안 하면 또다시 엎어질 일이었다. 민주당이 모처럼 의석수 값을 했다”고 평했다. 이는 취재진이 만난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측 입장과도 같았다. 이원정 전 부산시당 사무처장은 “이제야 총선 때 민주당에 힘을 실어준 보람을 느낀다는 여론을 체감하고 있다. 우리 당의 다음 계획에 대한 기대와 믿음도 커진 것 같다”며 “거대 여당의 추진력이 없었으면 국토교통부 반발을 누르고 법 제정을 성공시키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대로 특별법 처리에 부정적인 이유로 시민들은 법 처리의 ‘타이밍’을 꼽았다. 국토부가 지적한 신공항의 안전성과 경제성 문제보단, 정부·여당의 선거공학적 접근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스스로 부산 토박이라고 밝힌 60대 길아무개씨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그때그때 표 계산하느라 20년을 미루고 뒤집고 장난쳐오지 않았나. 문재인 정권도 4년을 가만히 있다가 자기들 어려운 선거 앞두고 부랴부랴 처리하는 게, 속이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는 국민의힘 부산시당 측의 입장과 겹친다. 최병문 부산시당 조직팀장은 “특별법 발의도 우리 당이 먼저 했고, 시당 차원에서 문재인 정권 초부터 꾸준히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촉구해 왔다. 그런데 줄곧 소극적이다가 이제 와서 전부 자신들 공이라고 홍보하는 건 전형적으로 숟가락 얹는 행태다. 여당은 보궐선거 없었으면 특별법 처리도 안 했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신공항 이슈가 정작 4월 보궐선거엔 얼마나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까. 실제 특별법 처리를 기점으로 나온 복수의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부·울·경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반등하면서 국민의힘과의 격차를 좁혔다. 민주당은 고무적인 분위기다. 민주당 부산시당 관계자는 “그 어느 때 선거보다 어렵고 힘겨운 싸움인 것은 틀림없다”면서도 “오거돈 전 시장 건으로 의기소침해 있던 지지자들이 이번 신공항을 기점으로 결집해 나가는 분위기가 있다. 본선이 다가올수록 더욱 힘이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역사를 비롯해 시내 곳곳에 걸린 신공항 특별법 제정 환영 현수막 문구ⓒ시사저널 최준필
부산역사를 비롯해 시내 곳곳에 걸린 신공항 특별법 제정 환영 현수막 문구와 공항이 들어설 가덕도 마을에 걸린 주민들의 반대 메시지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시사저널 최준필

오거돈 전 시장 향한 분노는 여전히 강해

그러나 취재진이 읽은 부산의 민심은 여전히 차가웠다. “신공항은 신공항, 보궐선거는 보궐선거”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신공항 추진이 이번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된 근본적 이유와 문재인 정부를 향한 실망을 뒤집기엔 역부족이란 것이다. 무엇보다 오거돈 전 시장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이 크다. 부산 민심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오 전 시장에게 55.2%라는 득표율을 선물하며 믿음을 실어준 바 있다. 줄곧 민주당을 지지했고, 지난 지방선거 때 오 전 시장을 뽑았다고 밝힌 50대 택시기사 김성환씨는 “이번 선거만큼은 안타깝지만 ‘오거돈 심판’으로 결론 나는 게 맞다. 4년짜리도 아니고 1년짜리 시장을 하겠다고 굳이 민주당이 무리해서 후보를 내야 했나 아쉽다”고 밝혔다.

부산 시내 카페에서 만난 20대 윤아무개씨는 “정치 동아리 같은 활동을 하고 있다. 아무도 관심 없는 선거지만 그래도 후보 면면과 각 당의 선거전략을 객관적으로 살피고 있다”면서 “인물이나 공약의 매력은 양당 간에 별 차이가 없다. 나처럼 생각하는 유권자가 많을 거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도 결국 정부에 대한 지지 여부에 따라 투표가 이뤄질 텐데, 그 점에선 여당이 확실히 불리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지역 언론사 관계자 역시 “보궐선거 승부가 여당 후보 대 야당 후보가 아니라, 마치 ‘오거돈 사건을 잊어선 안 된다’는 입장과 ‘신공항 성과를 인정해 달라’는 호소 간의 대결, 즉 오거돈 대 신공항의 싸움으로 인식되고 있다”면서 “신공항 이슈가 식어버린 선거 관심도를 어느 정도 데우는 역할은 하겠지만, 그 이상 현재 판세를 뒤집긴 어려울 것”이라고 바닥 민심을 전했다.

정부·여당의 신공항 카드가 이번 보궐선거가 아닌 내년 3월 대선에 방점을 찍고 내놓은 것임을 간파한 시민도 많았다. “어차피 민주당에 표를 줄 리 없는 TK만 (국민의힘 지지로) 빨갛게 놔두고 그 주변을 전부 (민주당 지지로) 파랗게 물들이겠다는 전략인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50대 자영업자 권아무개씨)이란 관측이다. 민주당이 강조해 온 20년 집권 플랜이 가능하려면 PK 민심을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 수준으로 회복하는 것은 필수조건이다.

“경제 못 살리면 공항 열 개 세워도 소용없어”

민주당은 손사래를 친다. 부산시당 관계자는 “이번엔 정말 선거공학 아니다. 4대강과 비교하면서 부정적으로 보고 지역별로 갈라치기 하려는 중앙 언론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우리 당이 TK를 왜 고립시키려 하겠는가. 각 지역에 맞는 개발전략을 세워 추진하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신공항 특별법 처리로 대선까지 어필할 순 없다는 걸 우리도 안다. 철도 지하화나 공원 조성 등 새로운 정책을 끊임없이 내 국면전환, 여론전환을 하려 한다”고 계획을 내비쳤다.

정식으로 첫 삽을 뜨고 건설 작업이 가시화되기 전까진 선거에서 신공항 효과가 크게 발휘되지 못할 거란 얘기도 나온다. 그간 정치권이 선거 때마다 신공항 카드를 반복 활용하며 양치기 소년이 돼 버린 탓에, 여전히 공항 건설에 반신반의하는 민심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당 가덕도 특별위원장을 맡은 이낙연 대표가 “8년 이내 공항을 완공시키겠다”며 구체적인 데드라인을 거듭 약속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공항으로 인한 명확한 지역 경제효과가 증명돼야 민심이 반응할 거란 의견도 있다. 동구에서 20년 운영해 온 식당 폐업을 고심 중인 60대 김아무개씨 부부는 “신공항 결정을 환영한다”면서도 “먹고사는 문제 시원하게 해결해 주는 것 말고는 정치인들이 우리 지지를 얻을 방법은 지금 없다. 당장 삼성이 부산에 들어온다 하면 모를까, 언제 문 열지 모르는 공항 하나로 시민들 마음은 절대 쉽게 안 움직인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공항 열 개를 세운다 해도 경제 살아나는 게 몸으로 안 느껴지면 아무 소용없다. 신공항은 정치권에서만 요란스러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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