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판타지 드라마, 어색하거나 진부하거나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3.13 12:00
  • 호수 163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루카》 《시지프스》 한계 명확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제작 및 편성 시스템 보완해야

우리네 드라마가 달라졌다. 지난해부터 국내에서는 잘 시도하지 않았던 SF 판타지 장르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들 드라마는 제작비 규모도 차원이 다르지만 생각만큼 성취를 내고 있는지 의문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지난해 4월 방영됐던 SBS 《더 킹: 영원의 군주》는 무려 32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대작 드라마였다. 그런데 이 작품에 320억원이라는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간 건 ‘평행세계’라는 지금껏 드라마가 좀체 시도하지 않았던 배경 때문이었다. 여러 개의 우주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평행우주론을 세계관으로 가져와,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이라는 두 세계가 존재하고, 그 세계를 연결하는 문이 열리면서 벌어지는 혼돈을 그렸다. KBS 《태양의 후예》,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그리고 tvN 《미스터 션샤인》으로 3연타석 대작 홈런을 날렸던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다. 게다가 이민호, 김고은 같은 흥행보증수표 배우들이 캐스팅됐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드라마는 실패했다. 2회까지 11%대(닐슨코리아) 시청률을 유지하던 드라마는 6%대까지 추락을 경험하며 마무리됐다. 

패인은 평행세계를 다룬 SF 판타지 장르라는 낯섦과 더불어, 다소 복잡하게 꼬아놓은 이야기와 백마 탄 왕자님 같은 시대착오적 캐릭터 설정 때문이었다. 여기에 오프닝 영상에 등장하는 대한제국의 궁궐 모양이 신사를 닮았다는 데서 나온 왜색 논란에 후반부에 이르러 과한 PPL 논란까지 겹쳤다. 물론 해외 판권 판매 등으로 제작비 회수는 물론이고 100억원대에 달하는 수익을 남겼다고 하지만, 시청자들에게 《더 킹》은 실패작으로 남았다. 

JTBC 드라마 《시지프스》의 한 장면ⓒJTBC제공
JTBC 드라마 《시지프스》의 한 장면ⓒJTBC제공

드라마 장르의 영역 확장 

지난해에는 SBS 《앨리스》 같은 시간여행을 소재로 하는 SF 판타지 드라마가 나왔고, MBC 《카이로스》처럼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폰으로 연결되는 이른바 ‘타임 크로스’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도 등장했다. 하지만 《앨리스》는 지나치게 복잡하게 꼬아놓은 이야기 때문에 생각만큼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카이로스》 역시 작품의 완성도는 높았지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복잡한 이야기로 시청률이 3%대를 넘기지 못하고 종영했다. 올해도 우리네 드라마의 새로운 영역 도전은 계속됐다. 현대판 프랑켄슈타인처럼 생체실험에 의해 탄생한 비극적인 존재(괴물인지 영웅인지 알 수 없는)를 그린 tvN 《루카: 더 비기닝》, 전쟁에 의해 아포칼립스를 맞은 미래에서 날아온 전사가 미래를 구원할 과학자를 구해내 미래를 바꾸는 이야기를 다룬 JTBC 10주년 특집드라마 《시지프스》가 그것이다. 이들 작품은 모두 200억원대가 투여된 대작 드라마이고, 역시 SF 판타지라는 새로운 장르를 시도했지만 결과는 생각만큼 좋지만은 않다.  

《루카》는 《보이스》 《손 the guest》 같은 작품으로 OCN표 장르물의 색깔을 만든 김홍선 감독과 《추노》를 썼던 천성일 작가에 김래원 같은 믿고 보는 배우가 의기투합한 작품으로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일단 소재 자체도 ‘새로운 인류’를 탄생시키려는 비밀 세력과 그렇게 탄생한 지오(김래원)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대결을 그린다는 점에서 시선을 끌었다. 지금껏 우리네 드라마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던 초능력을 가진(전류를 만들어내는) 존재의 이야기 역시 새로웠다. 하지만 창대한 기획 의도와 달리 이 작품은 이를 구현해 내는 데 너무나 초라한 대본과 연출을 드러냈다. 대본은 너무 단순했고 연출은 완성도가 떨어져 B급 작품을 보는 듯했다. 이러니 200억원이라는 제작비가 무색한 초라한 결과를 낼 수밖에 없었다. 

《시지프스》는 아직 남은 분량이 충분히 많아 단정적인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 방영된 내용만 보면 《루카》와 그리 상황이 다르지 않다. 첫 회부터 비행기 추락을 막는 천재과학자 한태술(조승우)의 이야기에, 미래에서 온 전사 강서해(박신혜)와 그를 추격하는 단속국 사람들과의 액션이 펼쳐졌으나, 대본에 대해서도 액션 연출에 대해서도 시청자들의 평가는 냉담했다. 물론 액션 자체가 일단 시선을 끌기는 하지만, 너무 현실성이 떨어지는 대본과 연출은 몰입을 방해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또 《시지프스》의 이야기 설정은 《터미네이터》나 《아이언맨》이 떠오를 정도로 그리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니 완전히 새로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성도가 높은 것도 아닌 드라마에 시청자들이 실망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 결과다. 

tvN 드라마 《루카》의 한 장면ⓒtvN제공
tvN 드라마 《루카》의 한 장면ⓒtvN제공

볼거리·설정은 화려하지만 대본·연출은 미흡 

결국 《루카》도 《시지프스》도 《더 킹》이 걸었던, 대작 블록버스터 드라마가 갖는 동일한 문제를 드러냈다. 볼거리와 설정은 화려한데, 정작 시청자들을 빨아들일 만한 대본이 부족했다. 복잡한 세계관을 좀 더 쉽게 납득시켜주는 연출력도 문제로 지적됐다. 규모가 커질수록 더더욱 중요해지는 건 더욱 디테일하고 신박한 대본과 연출이라는 것을 이들 작품이 반증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루카》나 《시지프스》가 각각 2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됐고, 그래서 이른바 대작 드라마라고 불리지만, 현재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 의해 쏟아져 들어오는 무수한 드라마들과 비교할 때 그 규모는 결코 대작이라 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해외의 드라마들은 그런 제작비의 몇 배 혹은 몇십 배를 들이는 작품들도 있기 때문이다. 즉 20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우리네 드라마를 ‘대작’ 혹은 ‘블록버스터’라고 부르게 된 건 과거 멜로 드라마나 가족 드라마 중심으로 드라마가 만들어지던 시대의 이야기다. 이들 작품처럼 SF 판타지 장르라면 그 소재의 특성상 애초 제작비 규모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미 그런 장르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현 상황 속에서, 이들 작품의 도전을 단지 대작 드라마의 고질적인 실패로만 규정할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루카》와 《시지프스》가 보여주는 한계가 단지 낯선 장르 도전이 만든 시행착오였을까 하는 점은 숙고할 필요가 있다. 물론 새로운 장르 도전의 낯섦은 분명히 있었겠지만, 좀 더 디테일하고 신선함이 살아 있는 대본과 이를 구현하는 치밀한 연출 등 기본적인 것들이 충분히 탄탄하게 준비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일 수 있어서다. 거의 1년을 기준으로 편성과 기획이 이뤄지고 작품이 제작되는 우리네 제작 시스템은 더 오랜 기간을 갖는 해외 작품들과 비교해 볼 때 너무 짧은 편이다. 여전히 편성표 채우기에 맞춰진 제작 관행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새로운 장르 도전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과제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우리네 제작 시스템이나 편성 시스템도 플랫폼 중심이 아닌 작품 중심으로 재편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