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의 현대차, 이재용 반도체 달고 달릴까
  • 엄민우 시사저널e.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1.03.17 10:00
  • 호수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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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정부 주도 협력 시도하다 ‘흐지부지’…기술 및 산업 환경 급변하면서 협력 필요성 커져

재계 순위 1위인 삼성과 현대차그룹이 차량용 반도체를 두고 손을 맞잡았다. 미래차 산업의 상황을 고려할 때 두 그룹이 ‘연합전선’을 구축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자동차 및 반도체 업계는 보고 있다.  

그 배경은 이렇다. 지난해 5월과 7월, 좀처럼 접점이 없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연이어 회동을 가져 재계의 이목이 쏠렸다. 두 총수가 만나게 된 표면적 이유는 배터리 부문의 협력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재계의 관심은 반도체 부문 협력 가능성에 집중됐다. 차량용 반도체와 관련해 두 기업에 거는 시장의 기대치가 높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후 구체적으로 두 기업이 머리를 맞댈 수 있는 판이 마련됐다. 지난 3월4일 산업통상자원부는 ‘미래차-반도체 연대·협력 협의체’를 발족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부족 현상을 교훈 삼아 미래차 반도체 시장을 선점하고 국내 공급망을 안정화하기 위해 정기적인 협력 채널을 구축한다는 취지였다. 사실상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협력 구도 구축이 성공의 전제조건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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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019년 1월 신년회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뉴시스

“삼성과 현대차의 협력 토대는 마련돼”

정부가 나서 두 기업을 이어보고자 하는 노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9년에도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신인 지식경제부 주도하에 ‘자동차-반도체 상생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삼성전자가 현대차 사양에 맞게 차량용 반도체를 개발하고, 현대차가 이를 탑재하게 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메모리 부문 초격차 전략을 펴고 있던 삼성전자로선 새롭게 시장에 뛰어들어야 할 이유가 없었고, 현대차 입장에선 이미 기술력이 입증된 업체의 부품을 써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반도체와 자동차 업계에서 모두 성공적 협력이 가능할 것이란 기대감이 흘러나오고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미래차 기술 발달로 자동차업계에서 반도체에 대한 필요성을 통감하게 됐다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면서 “시장이 커지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협력할 만한 토대가 마련됐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김필수 한국전기차협회장(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역시 “전기차, 나아가 자율주행차 시대가 오면 반도체가 지금보다도 몇 배 더 많이 들어가게 된다”며 “반도체가 없으면 완성도 있는 차를 만들기 힘든 시대가 도래하다 보니 두 기업 모두 협력할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현대차 입장에선 미래차 기술이 발달할수록 더 많은 반도체가 필요하게 되고, 현재와 같은 수급 부족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안정적 공급망을 형성해야 하는 입장이다. 특히 올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 대란은 완성차업체들로 하여금 반도체 수급에 대한 중요성을 더욱 통감하게 했다는 분석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미래엔 반도체를 제대로 구하지 못하면 차를 만들지 못하는 상황까지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로서도 이 같은 수요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차량용 반도체의 핵심 부품인 MCU 부문에선 르네사스와 NXP 등 해외 업체들이 안정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사실상 해당 부문엔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않았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지금보다 몇 배 더 확대될 것임을 고려하면 삼성전자도 언젠간 메모리 부문을 넘어 비메모리 부문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입장이다. 특히 자율주행 시대가 도래하면 메모리 부문 성공에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삼성전자가 경쟁력 확보 시간 단축을 위해 기존 업체를 인수할 것이란 분석도 내놓는다. 다만 이재용 부회장이 옥중에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단기간에 빅딜이 성사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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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9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0’에서 한 관람객이 세계 최대 차량용 반도체 제조사인 NXP 부스의 전시물을 보고 있다.ⓒ연합뉴스 

“삼성전자, 차량용 반도체 도전 위한 기술적 역량은 충분”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인터뷰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센터장은 업계에서 인정하는 반도체 시장 분석의 고수로 꼽힌다. 단순히 삼성전자 주식 투자자뿐 아니라, 업계 자체가 그의 분석과 전망을 꼼꼼히 살핀다. 냉철하고 현실적인 분석을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난 그에게 삼성전자의 차량용 반도체 도전 전망에 대해 물었다.

이 센터장은 아직 삼성전자가 본격적으로 차량용 반도체 개발에 뛰어들지 않았지만, 이미 차량용 반도체 개발에 나설 기술적 역량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차량용이 아니라 가정용이지만, 현재 차량용 반도체의 핵심이라고 여겨지는 MCU(Micro Controller Unit)를 삼성전자가 만들고 있다”며 “향후 차량에 탑재될 이미지센서 부문도 소니에 이어 세계 2위고, 전력관리칩(PMIC), 디스플레이 구동칩(DDI)과 관련해서도 기술적으론 이미 기반이 있다고 보면 된다”고 분석했다. 즉 새로운 도전 분야이긴 하지만, 기존 기술력을 바탕으로 생각해 볼 때 완전히 이질적인 분야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센터장은 삼성전자가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선 기술적 문제보다 특히 고객사들의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차량용 반도체는 완성차업체와 부품사가 오랜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이어가기 때문에 신규 업체가 시장을 뚫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센터장은 “차량용 반도체는 온도나 충격, 습도 등을 견디면서 안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완성차업체가 신규 업체 부품을 쓰는 것을 부담스러워 할 수 있다”면서 “다만 이번 수급 부족 사태를 계기로 완성차업체들도 새로운 공급망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만큼, 시장에 뛰어들기 적절한 시기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이 센터장은 삼성전자가 본격적으로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게 될 경우 특히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부문을 기존 시장 지배 업체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포인트로 꼽았다. 향후 자율주행차가 보급될 경우 특히 AP의 중요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 부문에서 도전자인 삼성전자가 판도를 바꿀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 센터장은 “AP는 다른 반도체보다 첨단기술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강점을 나타낼 수 있다”며 “다른 경쟁 업체들이 AP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하더라도 삼성만큼 높은 수율로 생산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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