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태의 시론] 민주주의의 후퇴, 새로운 방향
  •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3.12 17:00
  • 호수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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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학자들의 지적이 늘어나고 있다. 콜린 클라우치, 래리 바텔스, 티머시 스나이더, 조슈아 컬랜칙의 책이 대표적이다. 일찍이 2000년 영국 사회학자 콜린 클라우치는 현대 정치를 포스트민주주의(postdemocracy)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비판한 바 있다. 포스트민주주의는 서구 사회에서 형식적인 절차적 민주주의가 유지되지만 정부가 달성하려는 목적을 스스로 배신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가리킨다.

1980년대 이후 지나치게 커진 소득 불평등이 민주주의의 후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에 의회와 정부가 특권층이나 부유층의 이익만 대변한다는 대중의 불만이 급증했다. 미국과 프랑스, 헝가리, 브라질에 이르기까지 엘리트 정치인을 거부하는 극단적 포퓰리즘이 기세를 올리고 있다. 소셜 미디어가 사회정치적 양극화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도 심각해졌다. ‘아랍의 봄’과 ‘촛불집회’처럼 스마트폰이 민주주의를 촉발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온라인의 가짜뉴스가 정치 갈등을 격화시킨다는 우려도 커졌다. 러시아의 푸틴과 중국의 시진핑에서 터키의 에르도안, 브라질의 보우소나루에 이르기까지 독재주의가 확산될 가능성도 커졌다.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부정적 평가가 증가하고 있다. 1987년 이후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가 평화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찬사를 받기도 했지만, 대중은 구경꾼이 되고 정치 엘리트가 좌우하는 위임 민주주의로 변질했다고 비판받았다. 특히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집권하는 동안 언론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민간인 사찰 악령이 되살아나고, 제도적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후퇴했다. 권위주의의 부활은 2016년 촛불을 든 시민들의 거대한 분노에 직면했다.

하지만 촛불 시민혁명 이후 등장한 문재인 정부도 심각한 비판에 직면했다. 최장집 교수는 “의회 민주주의 등 민주적 기본 질서를 초월한 청와대가 한국의 정치를 권위주의 쪽으로 이끈다”고 말했다. 법적 근거도 없는 청와대 청원은 정책 토론도 없이 단지 이벤트에 그친다는 지적도 있다. 야당의 반대 속에 대통령의 개헌안을 청와대 민정수석이 발표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으스스한 장면이다. 2020년 총선에서 유권자를 기만한 ‘위성정당’ 창당은 명백한 민주주의의 후퇴로 볼 수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정부가 불평등을 줄이는 정책에 실패하고 부동산 가격만 높여 오히려 빈부 격차가 더욱 커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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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이후 출현한 거대 여당도 심각한 우려에 직면하고 있다. 보수 야당은 무기력한 0.5당이 되었다. 일부 여권 정치인은 국회의 다수결을 당연한 듯이 주장하지만, 이는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이 말한 대로 다수결만 내세우면 다수의 횡포가 될 수 있다. 하버마스의 주장대로 민주주의에서 공론장은 필수적이다. 최근 가덕도 신공항 법안에서 볼 수 있듯이 국회와 정부에서 충분한 토론이 없다면 역풍에 직면할 수 있다. 또한 삼성의 사례처럼 기업의 결정이 최대주주와 측근에 의해 좌우되면 불법행위조차 방지할 수 없다.

현명한 정치학자와 사회학자는 승자독식형 정치인 미국식 다수제 민주주의 대신 여야의 타협을 추구하고 너그럽게 소수를 포용하는 유럽식 합의 민주주의를 주목한다. 다수결을 내세운 흑백 논리 대신 다른 입장에 귀를 기울이는 숙의 민주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엘리트 숙의, 대중적 숙의, 숙의 여론조사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민주주의에는 어떤 결론이 만들어졌는가보다 어떻게 결론이 내려졌는가에 대한 질적인 고려도 필요하다. 민주화운동의 자부심을 가진 민주당은 이제라도 국회와 시민사회의 토론을 중시해야 하며, 정부와 기업의 결정에서 민주주의의 질을 높여야 한다. 진정한 민주주의자라면 다수결을 의심해야 한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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