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승계 한화 앞에 놓인 ‘김승연-김동관 리스크’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1.03.18 14:00
  • 호수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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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경영 복귀하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할아버지는 ‘화약’, 아버지는 ‘방산’, 아들은 ‘우주항공'
 

한화그룹은 2월26일 김승연 회장이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한화와 화학·에너지기업 한화솔루션, 건설·서비스기업 한화건설 등 3개 기업에 미등기 임원으로 복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2014년 2월 항소심에서 배임(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판결을 받고 7개사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난 지 7년 만의 복귀다. 보도자료를 통해 한화는 “김 회장이 이들 기업에 적을 두면서 그룹 회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회장의 복귀는 2월19일자로 취업 제한이 풀리면서 가능해졌다. 재계는 김 회장 복귀를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대외협력담당 임원은 “경영 일선에 복귀하는 것이나, 신재생 에너지와 우주사업 등 신사업 경영을 명분으로 내세울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상된 시나리오였다”고 말했다.

한화그룹은 국내 87개, 해외 422개 계열회사(지난해 9월말 기준)가 소속돼 있는 재계 7위 기업이다. 이번에 김 회장이 복귀하는 3곳의 회사는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이다. 현재 한화는 SK·LG그룹처럼 지주회사가 자회사와 손자회사를 거느리는 구조가 아니다. 그렇다고 삼성·현대차그룹처럼 순환출자 구조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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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복귀하는 김승연 한화 회장(왼쪽)과 장남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시사저널 박정훈·연합뉴스·뉴스뱅크

경영권 승계, H솔루션 매출 증대가 핵심

일단 지배구조에서 핵심은 ㈜한화며 그 아래 한화솔루션·생명·건설·호텔앤드리조트·에어로스페이스·테크엠 등이 있다. 특히 한화케미칼·큐셀·첨단소재가 합쳐진 한화솔루션도 지배구조에서 빼놓을 수 없다. 이 회사는 현재 한화도시개발·갤러리아와 추가 합병도 준비하고 있다.

김 회장은 이들 세 곳의 계열사로 복귀하면서 미등기 임원 형식을 취했다. 미등기 임원과 그룹 회장직을 겸하는 구조다. 이렇게 될 경우 법률적 책임을 져야 하는 등기이사보다 책임경영에 있어선 한계가 있지만, 반대로 운신의 폭은 넓어진다. 재계에선 이번 복귀가 자녀인 김동관·동원·동선 형제간 역할 분배 등 후계 작업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최근 한화그룹 지배구조에서 가장 주목받는 계열사는 규모는 작지만 그룹 전체를 쥐고 흔드는 ‘그립감’이 큰 에이치솔루션(H솔루션)이다. 김 회장의 세 아들은 100% 지분(김동관 50%, 김동원 25%, 김동선 25%)을 갖고 있는 H솔루션을 통해 핵심 역할을 하는 ㈜한화 지분 4.38%를 갖고 있다. 이 밖에도 H솔루션은 한화에너지(100%), 한화시스템(13.41%) 지분도 보유 중이다. 복귀를 알리면서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이 ㈜한화의 항공우주·방위사업 부문에 대한 미래 기술 확보와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할 것”이라며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다.

이는 그룹 내 ㈜한화의 역할을 더욱더 확실히 챙기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지주사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한화의 사업영역은 그룹 전체를 대표한다. 그런 상황에서 한화가 김 회장 복귀 명분에 ‘항공우주·방위사업 부문에 대한 미래 기술 확보’를 내세운 것은 의미가 있다. 현재 그룹 내에서 항공우주·방위사업을 맡고 있는 계열사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다. 2015년 6월 한화그룹에 편입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화시스템(48.99%), 한화디펜스(100%), 한화정밀기계(100%), 한화파워시스템(100%)의 지분을 갖고 있다. 항공기 엔진과 관련 부품을 제조·판매하는 방산기업으로 분류되는 (주)한화는 ‘한국화약’이 모태로, 방산 관련 계열사를 다수 거느리고 있다. 그룹의 출발인 화약제조업은 ㈜한화가, 자주포·탄약운반차·장갑차와 대공·유도무기·레이더 등은 한화디펜스와 한화시스템에서 만든다. 방위산업 전문가인 최종호 조이앤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주)한화와 한화시스템·에어로스페이스·디펜스 등 한화그룹 4개사의 방산 매출이 국내 방산 전체 매출의 50%를 차지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설립자인 고(故) 김종희 회장이 총·포 등에 쓰이는 화약 제조로 기업을 일구었다면, 2세 김승연 회장은 지상전과 공중전에 필요한 제품으로 계열사를 키웠다. 3세 경영을 앞두고 한화가 항공우주·방위사업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세대 교체의 신호탄으로 삼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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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차세대 먹거리로 위성기업 쎄트렉아이 선택

한화그룹이 항공사업에 애착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은 ‘항공우주’를 하나의 단어로 보지만, 당초 김 회장의 머릿속엔 ‘항공’과 ‘우주’가 떨어져 있었다. 실제로 지난해 그룹 상층부에선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여기서 말하는 항공은 방산의 일부가 아니라, 여객운송업을 가리킨다. 만약 이 시나리오가 성공했다면 한화는 항공기 제조부터 수송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종합항공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항공은 또 다른 사업 분야로 떨어져 나갔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시아나는 한진그룹 품에 안겼다. 이를 대신해 생각해 낸 것이 우주산업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월13일 인공위성 제조기업 쎄트렉아이의 지분 33.98%를 인수한 데 이어 3월7일에는 사내에 ‘스페이스 허브’를 출범시키고 조직을 이끌어갈 팀장으로 김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을 선임했다. 앞서 김 사장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기임원에 추천된 바 있다. 김 회장이 그룹 회장 복귀를 선언하면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임원을 맡지 않은 것은 김 사장의 활동영역을 보장해 주기 위한 뜻으로 보인다. 코스닥 기업인 쎄트렉아이는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인공위성 우리별 1호를 만든 기술진이 1999년에 세운 기술기업이다. 코스닥에는 2008년 상장됐다. 한화는 쎄트렉아이 지분을 매입하면서 제3자 유상증자 배정 580억원, 전환사채 인수 500억원 등 약 1000억원의 자금을 쏟아부었다.

미래지향적인 사업임은 분명하지만, 판로가 다양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방산사업 성격이 강해 마진율도 높지 못하다. 김 회장이 경영 복귀에서 해외시장 개척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양형모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쎄트렉아이는 해외 프로젝트 확보가 절실하다. 프로젝트의 경우 국내 마진율은 5~10%에 불과하지만 해외는 35%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한화의 경영권 승계가 성공하기 위해선 이들 3세 또는 개인회사인 H솔루션이 ㈜한화 지분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한화는 현재 김승연 회장이 지분 22.6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장남인 김동관 사장은 4.44%,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전무와 삼남 김동선 한화에너지 상무는 각각 1.67%의 지분을 갖고 있다. 세 사람이 김 회장의 지분을 확보하려면 정상적으로 증여세를 내면 된다. 재원 마련에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게 문제다. H솔루션과 ㈜한화를 합치는 데도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H솔루션의 자금력을 키우는 방법은 그 밑단에 있는 회사들의 시장가치가 커져야 하는데, 여기서 주목받는 회사가 100% 지분을 보유한 한화에너지다. 한화에너지는 4월 중 기업공개(IPO)가 예고돼 있는 한화종합화학의 대주주다.

한화가 지난해 사기 논란에 휩싸인 니콜라에 투자한 것도 경영권 승계와 무관하지 않다. 김 사장이 등기이사로 있는 한화솔루션의 자회사 한화에너지, 한화종합화학은 2018년 수소트럭 제조사인 니콜라에 1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 회사가 나스닥 상장에 성공하면서 한화 3세 자산 가치는 크게 늘어나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기술 조작 논란으로 미국 증권선물위원회 조사를 받으면서 한화의 승계구도에도 먹구름이 끼고 있다. 이에 대해 한화그룹 관계자는 “두 계열사가 투자한 건 맞지만, 현재 미국 관계 당국에서 조사 중이라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일감 몰아주기 등 편법으로 특정 기업의 매출을 늘리는 것은 또 다른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화는 과거 비상장 시스템통합(SI) 계열사인 한화S&C(현 한화시스템)의 매출 중 절반가량을 다른 계열사와의 거래로 취득해 논란을 빚었다. 2018년 당시 한화S&C의 지분은 H솔루션과 마찬가지로 김 사장이 50%, 김 전무와 김 상무가 각각 25%였다.

 

장남 김동관 경영 성과, 여전히 물음표

한화그룹은 이번에 김 회장이 등기임원을 맡지 않는 이유를 ‘계열사들이 이미 오랫동안 이사회 중심의 독립경영체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재로선 김 사장이 그룹 핵심인 에너지·방산을 맡고, 김 전무는 한화생명 등 금융 계열사를, 김 상무는 한화토탈 등 화학 계열과 한화건설·호텔앤드리조트 쪽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 최서원씨(개명 전 최순실) 딸인 정유라씨와 함께 승마 국가대표로 활동했으며, 과거 대형 로펌 직원을 폭행해 물의를 일으킨 삼남 동선씨는 지난해 말 슬그머니 한화에너지 상무(글로벌사업담당)로 복귀했다.

김 회장의 복귀 성명에서도 ‘장남 키우기’ 색채는 분명해 보인다. 김 사장이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물려받기 위해선 경영 성과가 필요하다. 그가 기업 경영 전면에 나선 후 이렇다 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아버지인 김 회장의 가장 큰 고민이다. 쎄트렉아이가 우주사업이라는 총론에는 해답이 될지 몰라도, 어떻게, 어떤 식으로 우주사업에서 성과를 낼지 각론은 여전히 불확실한 측면이 많다. 한화솔루션은 되레 김 사장 취임 이후 신용등급이 뒷걸음질쳤다. 쎄트렉아이를 인수하면서 한화가 무보수 책임경영을 들고나온 것도 ‘시장에 차기 총수의 성과를 확실하게 보여야 한다’는 절박함이 반영돼 있다. 나머지 형제간 역할 분담도 어느 정도 가시화된 마당에 지금으로선 장남 사업의 확실한 성장이 김 회장에게 남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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