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조 묘목밭 늘어나는 광주 평동지역...왜?
  • 정성환·조현중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1.03.1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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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광주 평동도시개발 예정지 가보니…“이러다 수목원될라”
17년 민원 ‘평동준공업지역’, 민관합동 전략산업·택지개발로 ‘들썩’
곳곳에 ‘억지성 식재’?…업계 “개발호재 노린 투기자본 흔적 의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으로 본격적인 개발이 임박한 광주 광산구 지죽·송촌·용동 일대에서도 투기 자본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난개발을 막기 위한 개발행위 허가 제한지역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급조된 묘목밭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다 이유가 있다. 이곳 평동준공업지역은 향후 토지보상에 따른 수익은 물론 높은 지가 상승이 예상되는 곳이다. 오는 2024년 완공 목표로 총 사업비 4조원에 육박하는 민간 중심 도시개발 사업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KTX광주송정역과 가깝고 앞쪽엔 평동산업단지, 뒤로는 무안광주고속도로, 동쪽으론 영산강 상류 황룡강이 지척에서 흐르는 곳이다. 하지만 평화롭던 농촌 마을이 도시개발 예정지로 뜨고, 투기자본이 들이닥치면서 농심(農心)에도 깊은 골이 파였다. 

​광주 광산 평동준공업지역의 한 논에 수백그루의 감나무 묘목이 일정한 간격으로 빽빽이 심어져 있다.ⓒ시사저널 정성환​
​광주 광산 평동준공업지역의 한 논에 수백그루의 감나무 묘목이 일정한 간격으로 빽빽이 심어져 있다.ⓒ시사저널 정성환​

투기자본 흔적…깊은 골 파인 농심(農心) 

12일 오후 광주시 광산구 지죽동 평동준공업지역. 이 일대는 고물상과 폐기물 야적장, 비닐하우스, 논밭이 주로 차지하고 있다. 춘분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도 농지에선 농사를 제대로 짓지 않는 땅이 종종 보였다. LH 직원들은 2018년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 한 토지(5905㎡)를 매입한 뒤 배추밭을 갈아엎고 왕버들나무를 심었는데, 이 일대에서도 묘목만 심어진 밭이나 잡초가 무성한 땅들이 목격됐다.

황룡강변을 따라 승용차 한 대가 겨우 통행할 수 있는 샛길을 한참 들어가자 왼쪽에 막 객토작업을 한 것처럼 보이는 땅이 하나 보였다. 외부에 소나무 울타리가 있어 묘목 판매장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땅은 농사를 지어야 하는 답(畓)이다. 논 2400여평 한 가운데로 잡석을 깔아 4곳으로 분리된 이 논에는 경작물을 심은 흔적이 없었다. 

바깥에선 잘 보이지도 않지만 마치 모심기 하듯 일정한 간격으로 80cm 길이의 감나무 묘목 수백 그루를 빽빽이 심어 놓은 풍경이 눈에 띄었다. 지난해 이 땅을 구입한 외지인들이 두 달 전에 인부를 동원해 울타리에 소나무 수십 그루를 심은데 이어 엊그제 회초리 같은 감나무 묘목을 식재한 것이다. 원 주인 격인 농작물 대신 묘목이 자리를 독차지하고 보상받을 때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주민 이 아무개(남·63)씨는 “뜬금없이 수목을 심거나 휴경 중인 땅만 봐도 ‘누가 또 투기하려고 사들였나’하는 생각부터 든다”며 “땅 주인이 농사를 짓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조경업계 한 관계자는 “(묘목들이)버둥거리며 살다가 보상받으면 뽑혀나갈 게 뻔한 데 적지적작(適地適作)의 식재 원칙도 무시한 채 억지성 식재를 일삼아 식물학대 논란까지 나올 정도다”고 혀를 찼다. 

전 토지주 박아무개(79)씨는 “고령에 몸이 아파 농사를 짓기 어려워 팔긴 했지만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농토를 괜히 판 것 같아 속이 아파 죽겠다”고 말했다.ⓒ시사저널 정성환
전 토지주 박아무개(79)씨는 “고령에 몸이 아파 농사를 짓기 어려워 팔긴 했지만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농토를 괜히 판 것 같아 속이 아파 죽겠다”고 말했다.ⓒ시사저널 정성환

농지에 수상한 묘목만 빼곡…‘식물학대’ 논란마저 일어

때마침 이곳을 지나던 전 토지주 박아무개(79)씨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농토를 가만히 놔둘 것을, 괜히 팔아 속이 아파 죽겠다”고 후회했다. 박 씨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초 두 쌍의 40대 초중반 부부가 찾아와 1필지 2400평에 대한 토지 매매를 제안해 평당 90만원에 거래가 성사됐다. 해당 토지의 공시지가는 평당 13만원이다. 

매수인들은 석달이 지난 9월 하순에, 각각 1/4의 공유 지분으로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쳤다. 이른바 ‘지분 쪼개기’ 거래를 한 것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이를 보상 등 개발 호재를 노린 ‘투기성 자본의 흔적’일 가능성이 짙다고 말했다. 지분 쪼개기는 한 필지를 여러 명이 공동으로 사들이는 매매 방식이다. 보상금액을 높이기 위해 논밭을 매입하는 단계에서 도로에 대한 지분거래가 일어났다는 분석이다. 

박씨의 다른 토지 2000여평도 외부인에게 팔렸다. 더구나 광주의 특정 건설업체가 이 사업 부지에 적지 않은 땅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 등 업체 연관설도 나오고 있다. 마을 복지센터에서 귀가 중이던 80대 노부부는 건너편 공장 뒤쪽을 가리키며 “외부인들이 수년전부터 언젠가는 개발된다며 여러 필지 논밭을 산 뒤 묘목을 심었는데 이제는 제법 키가 컸다”고 말했다. 

 

내팽개쳐진 ‘경자유전의 원칙’ 

헌법은 ‘경자유전의 원칙’을 규정하고, 농지법도 자경 목적이 아니면 농지를 소유할 수 없도록 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지역 주민들은 농민이 아닌데도 농토를 불법으로 매입하는 건 오랜 기간 암암리에 만연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인근 농민은 “LH 직원들이 농지에 묘목만 심고 농사 제대로 안 지었다며 시끄러운데, 그런 가짜 농지는 이곳에도 수두룩하다”고 했다. 

광산구에 따르면 지죽동과 송촌동, 용동 일원에서 지난 2016년부터 올해 3월 8일 현재까지 797건의 토지 거래가 이뤄졌다. 이 가운데 평동 준공업지역 일원 도시개발 예정지내 실거래 신고건수는 509건이다. 다행히 지난해 9월 개발행위 허가 제한지역으로 묶여 현재까지는 거래건수나 지분거래 면에서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앞으로가 더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주 광산 평동준공업지역의 한 논에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시사저널 정성환
광주 광산 평동준공업지역의 한 논에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시사저널 정성환

광주 광산구 평동 준공업지역은 1995년 평동 1차산단 조성 당시 제척되었던 지역이다. 그때부터 산단 제외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용도 변경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1998년 민원해소 차원에서 소규모 공장시설과 주거기능이 혼재할 수 있도록 준공업지역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인근 5개 마을은 준공업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지난 17년 간 우후죽순 들어선 혐오시설 때문에 신체적·심리적 피해에 노출돼 왔다. 산업단지에 포함되지 못하는 5대 혐오업종 도축시설, 폐기물처리시설 등이 준공업지역으로 몰렸지만, 시나 구청은 특별한 규제를 하지 않아 현재까지 200개 이상의 업체가 거주지를 잠식해 들어온 것이다. 이에 광주시는 준공업 업체, 주민 주거시설, 농촌이 어지럽게 섞여 있는 이곳을 체계적으로 정비하겠다며 도시개발계획을 수립했다. 

광주시는 평동준공업지역(139만5000여㎡, 42만2000여평)에 민관합동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에 1조 2000억원 안팎의 건설자본을 끌어들여 아파트를 짓도록 하고 친환경자동차와 에너지, 문화 등 미래전략산업 인프라를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광주시는 4일 이 지역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할 민간부문 우선 협상대상자를 선정했다. 시는 상반기 중 협약을 체결, 개발계획을 구체화해 확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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