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도 어른거리는 ‘LH 사태’ 그림자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3.27 14:00
  • 호수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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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트하우스》 《괴물》 《빈센조》가 담은 부동산 투기의 의미

우리네 드라마에서 사회 정의를 소재로 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는 게 바로 재개발과 부동산 투기다.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로 인해 국민적 공분이 일어나고 있다. TV 드라마 중에서도 이 드라마 같은 사건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작품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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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펜트하우스》 스틸컷ⓒSBS 제공

부동산·교육 문제 다룬 《펜트하우스》 

최고 시청률 26%대(닐슨코리아)를 기록하고 있는 SBS 《펜트하우스2》는 강남 삼성동 소재의 초고층 호화 주상복합 헤라팰리스를 배경으로 한다. 헤라팰리스 같은 가상의 건물을 배경으로 하는 허구의 드라마에 굳이 삼성동 같은 실제 지역을 끌어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이 이 드라마가 그리려는 부동산과 교육이라는 대중의 가장 민감한 관심사를 그 공간만으로도 충분히 끄집어내주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부동산과 교육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어떤 학군이고, 어떤 명문고가 있는가에 따라 집값이 천정부지로 떠오르는 게 우리네 부동산 현실이니 말이다. 거꾸로 집값이 비싼 지역의 거주자들의 교육에 대한 욕망과 투자 역시 남다른 게 현실이다. 

그래서 《펜트하우스》는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헤라팰리스라는 주상복합에서 살아가는 부유층들의 이른바 ‘천민자본주의’를 부동산과 교육 문제를 통해 적나라하게 끄집어내는 것으로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기록했다. 이곳을 만든 주단태(엄기준)라는 인물은 ‘부동산의 귀재’로 불리며 재개발로 막대한 부를 쌓은 악의 화신이고, 또 다른 악의 축인 천서진(김소연)은 청아재단 이사장으로서 청아예고의 불법적이고 불공정한 입시교육을 주도하는 인물이다. 불륜과 패륜, 살인, 치정, 학대 등등 매회 자극적인 설정과 표현들이 등장하고 있어 그 밑그림이 가려져 있지만, 결국 이 드라마가 끌어온 현실은 재개발과 부동산 투기, 엇나간 자녀 교육이 만들어내는 우리네 사회의 비극이다. 

흥미로운 건 부동산 개발 관련 공적 정보를 활용해 벌인 투기로 현재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는 LH 사태의 단초들이 이 드라마에도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주단태는 개발 정보를 미리 알고 땅을 사 천문학적인 이익을 얻는 인물이다. 오윤희(유진) 같은 서민이 헤라팰리스에 입주하는 과정에도 부동산 투기는 하나의 판타지처럼 등장한다. 개발될 걸 미리 알고 사둔 집의 가격이 개발 발표와 더불어 천정부지로 치솟자 환호하는 오윤희의 모습은 부동산 투기나 교육 문제는 빈부의 차이를 넘어 누구나 욕망하는 현실이라는 걸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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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괴물》 스틸컷ⓒJTBC 제공

《괴물》, 재개발? 거기 사람이 있다 

사회상을 끄집어내 이를 꼬집는 드라마들이 어떤 적폐를 문제 삼고 있는가를 들여다보는 일은 당대 대중의 현실 인식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펜트하우스》가 개연성 부족이라는 ‘막장 논란’에 시달리면서도 그토록 강력한 화력을 보여주는 이유 중에서 거기 깔려 있는 부동산과 교육이라는 소재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네 현실 속 부동산과 교육 문제에 등장하는 ‘빌런’들을 《펜트하우스》는 복수극이라는 형태로 응징함으로써 현실에서는 해소되지 않는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 

JTBC 금토드라마 《괴물》은 한 변두리 마을에서 벌어진 연쇄 실종, 살인 사건과 이를 추적하는 형사의 이야기를 담은 범죄 스릴러지만, 여기에도 부동산 재개발과 관련된 사회적 적폐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문주시 만양읍이라는 소외된 변두리 마을이라는 공간과, 그곳을 개발해 이익을 보려는 이들이 여기서 벌어진 모종의 실종, 살인 사건들과 연관되어 있다고 여겨져서다. 아직까지 누가 진짜 범인이고, 어째서 이런 사건들이 벌어지게 됐는가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겉보기에 그저 낙후된 변두리 마을로만 보였던 그 지역의 땅 밑에서 유기된 사체들이 계속 나온다는 상황은 《괴물》이 담아내려는 이야기에 하나의 은유적인 이미지를 만든다. 

사실은 살해되어 유기된 것이지만, 실종 처리된 후 개발 때문에 서둘러 사건을 종결시킴으로써 남겨진 실종자 가족들을 지옥 속에서 살아가게 만드는 현실. 저들이 그저 투기의 목적으로 보는 땅속에서 사체들이 마구 나오는 은유적 상황이 말해 주는 건, 그렇게 소외된 변두리에도 사람이 산다는 사실이다. 재개발과 부동산 투기의 막대한 부의 환상은 결국 그곳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것. 이 드라마의 제목이 지칭하는 괴물은 그래서 범인이나 그 범인을 잡기 위해 미쳐가는 형사만이 아니라, 돈에 눈멀어 비인간화되어 가는 자본 시스템 또한 포함하고 있다는 걸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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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빈센조》 스틸컷ⓒtvn 제공

《빈센조》의 마피아 변호사가 맞서 싸우는 카르텔 

정·재계, 사법, 언론 등이 마피아보다 더 공고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며, 그들과 싸우는 진짜 이탈리아에서 온 마피아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룬 tvN 《빈센조》에서도 여지없이 부동산 투기와 재개발 이슈는 등장한다. 금가프라자의 지하에 숨겨진 금괴를 차지하기 위해 온 마피아 변호사 빈센조(송중기)가, 그곳 주민들을 몰아내고 강제로 재개발을 하려는 바벨그룹과 어쩌다 맞서 싸우게 되는 이야기. 재개발은 물론이고,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불법적인 제약회사이자 위험한 화학공장에서 쓰러져가는 산재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바벨그룹은 한마디로 우리네 사회의 부정을 모두 모아놓은 적폐 카르텔이고, 그래서 빈센조가 그들 방식대로 돌려주는 피의 보복은 시청자들을 속 시원하게 만든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최근 벌어진 LH 사태를 들여다보면 소름 끼칠 정도로 드라마 같은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그러니 사회 정의의 문제를 드러내는 드라마 속에서 적폐의 소재로서 부동산 투기와 재개발 관련 이슈는 심지어 ‘클리셰’가 될 정도로 반복된 면이 있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그건 꽤 오래도록 우리 사회가 부동산 관련 문제들을 해결해 내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들 드라마는 어째서 이토록 부동산 이슈들이 해결되지 못하는가에 대한 이유 또한 담아낸다. 《펜트하우스》의 주단태가 미리 개발 정보를 알고 투자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그들의 검은 커넥션이 그렇고, 《괴물》에 등장하는 시의원과 경찰청 차장 그리고 건설사 대표가 개발을 통한 이익을 두고 형성하는 공모자들의 연대가 그렇다. 또 《빈센조》의 바벨그룹과 우상이라는 로펌이 보여주는 부정한 돈과 탈법의 카르텔도 마찬가지다. 복잡하고 단단하게 얽혀 있는 적폐의 카르텔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쉽게 청산되지 못한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우리네 콘텐츠에서 부동산 관련 이슈들은 앞으로도 클리셰처럼 등장하지 않을까 싶다. 현실에서 어떤 확실한 변화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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