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전망’ 어두운 학과부터 폐지…대학가는 지금 전쟁 중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1.03.30 07:30
  • 호수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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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미달 사태 딛고 시대 변화에 발맞추려 안간힘
4차 산업혁명 맞춰 반려동물·뷰티메디컬학과 신설

대학들의 ‘예정된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올해 들어 지방대를 중심으로 신입생 정원 미달, 학과 통폐합 갈등 등 문제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주원인은 학령인구(6~21세) 감소’라는 구문(舊聞)과 함께 어려움에 처한 대학들이 조명됐다. 뒷맛이 개운치 않다. 해묵은 리스크를 코앞으로 불러온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 

시사저널 취재 결과, 2021학년도 대입에서 줄줄이 정원을 못 채운 대학들은 자구책 마련과 동시에 미래 대비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학령인구 감소 탓을 하고 있지만, 대책의 방점은 대부분 방만한 구조를 재편하고 취업 전망이 밝은 학과에 역량·지원을 집중하는 데 찍혔다. 

3월23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교 강의실이 텅 비어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3월23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교 강의실이 텅 비어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뜨는 일자리에 맞춰 전공 신설 검토 

총장이 사퇴 의사를 밝히며 화제의 중심에 섰던 대구대는 신입생 충원율이 낮은 학과들에 대해 폐지, 정원 감축 등 구조조정에 나설 계획이다. 대구대는 올해 모집 인원인 4070명에서 780명이 모자란 채로 새 학기를 시작했다. 지난해 미달 인원(2명)의 390배에 달한다. 

대구대의 1차 목표는 전체 신입생 정원을 올해보다 10%(400여 명) 이상 감축하는 것이다. 아울러 반려동물 관련 전공 등 일자리 변화상에 발맞춘 학과들을 신설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 

광주 지역 대학들은 시청, 시교육청과 손잡고 신입생 정원 미달 위기 극복 방안을 찾기로 했다. 대학의 위기를 지방자치 영역으로 끌어들여 신입생 모집, 학사 운영, 취업 등 전 과정을 관리하겠다는 복안이다. 

지난해 기준 광주에는 종합대 11개, 전문대 7개 등 27개 대학이 있다. 인구 150만여 명의 도시에 대학 재학생이 8만 명을 넘는다. 올해 신입생 모집에서 지역 거점대인 전남대(140명)를 비롯해 조선대(128명), 호남대(169명) 등 주요 대학들이 모두 100명 이상 미달되는 사태를 겪었다. 

이는 다른 지역 대학들도 마찬가지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4년제 대학 162곳에서 진행된 추가모집 규모는 총 2만6129여 명으로 지난해(9830명) 대비 세 배 가까이 늘어났다. 추가모집은 수시와 정시를 통해 신입생을 충원하지 못했을 경우 진행한다. 유독 지방대에 추가모집이 쏠려 있다. 지역별로는 경북이 4331명으로 가장 많았고, 부산(3883명), 전북(2566명), 충남(1989명) 등이 뒤를 이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2~3년 뒤 전국 70개 이상 대학이 폐교하고, 학령인구가 적은 남쪽부터 폐교가 속출해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들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고 우려했다.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지원자는 49만3433명으로 전년(54만8734명) 대비 5만5301명 감소했다. 대학 모집 정원(55만5774명)보다 6만2341명이나 적다. 지난해 초부터 촉발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도 대학 신입생 모집에 악영향을 줄 요인으로 일찌감치 거론됐다. 그럼에도 대학들이 패닉에 빠진 것은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피해 수준 때문이다. 

 

“수도권도 곧”… 구조조정 가속화 

대외적으로 밝힐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익명을 요구한 부산의 모 국립대 교수는 “사립대든 국립대든 누구도 안심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며 “‘학문의 전당’이란 대학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거나 구조조정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등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마저 꺼내기 쉽지 않은 분위기”라고 전했다. 

대학들의 호소와 자구 노력에도 대중의 시선은 싸늘하다. 관련 온라인 기사에 달린 댓글을 살펴보면 대학의 위기와 몰락이 필연적인 결과란 내용이 주를 이룬다. 직장인 조성빈씨(36)는 “10여 년 전부터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누구나 다 알고 예상해 온 결과 아니냐. 머지않아 지방대뿐 아니라 수도권 대학에도 여파가 미칠 것”이라며 “학과 통폐합, 모집 인원 감축 등은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대학 수를 대폭 줄이고 (살아남은 대학은) 맞춤형 지원을 통해 기술집약적 교육기관 내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이 시작된 가운데 내홍을 겪는 대학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올해 신입생 충원율이 79.9%에 그친 전북 익산의 원광대에선 교수협의회와 직원노동조합, 총학생회 등이 박맹수 총장에 대해 전방위 퇴진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박 총장은 입시 대책 특별기구를 구성해 위기를 극복하겠다며 퇴진 요구를 사실상 거부해 갈등이 심화하는 모습이다. 부산 신라대와 동국대 경주캠퍼스는 최근 신입생 충원율 등을 기준으로 일부 학과의 폐지를 결정했다. 그러자 해당 학과 학생 및 교수진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는 이에 아랑곳없이 뷰티메디컬학과 등 취업률이 높은 학과를 신설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비쳤다. 

 

“대학들, 당연히 변해야 할 때다” 

전봉걸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미니인터뷰 

전봉걸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학 현장이 학령인구 감소, 코로나19 여파, 4차 산업혁명 등 경제적 요인에 따라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크게 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본질은 학령인구 감소가 아니라 대학의 경쟁력 후퇴”라며 “패러다임 전환기에 망하지 않으려면 대학 스스로 변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전 교수와의 일문일답. 

대학 현장의 분위기가 어떤가. 

“대학마다 변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4년제 종합대들도 전문대처럼 (직능 위주로) 교육하는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데, 아직 실질적인 성과가 나오는 것 같진 않다. 모집 대상 연령층을 기존 고등학교 졸업생에서 장년층 이상으로 확대해 가는 대학도 많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재교육·재취업 수요를 겨냥한 전략이다.” 

대학들이 변화하는 데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우선 정원을 조정하는 일이 힘들다. 인원이 정해진 가운데 새로운 과를 신설하는 등 변화를 주려면 다른 과의 희생이 필요하지 않나. 교수 섭외나 취업 연계에서 대학별·지역별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이 ‘변화’ ‘실용’이란 명제에 매몰되는 현실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안타깝지만 당연히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비해 고학력자가 너무 많은 데 비해 취업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대학 교육의 필요성이 폄하되고 학령인구는 갈수록 줄어든다. 변하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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