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는 지금] “성명서만으로는 시민을 살릴 수 없습니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1.04.02 14:00
  • 호수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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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얀 나잉 툰 미얀마 NLD 한국지부장
“‘ONLY TALK, NO ACTION’인 유엔에 더 기대 않는다”

“개처럼 기게 하고, 마치 새와 닭 잡듯이 죽이고 있다.” 2월1일 군부독재 세력의 쿠데타 이후 미얀마의 시간은 야속하게도 흘렀다. 국제사회가 그저 지켜만 보고 있는 사이 군부의 진압은 갈수록 잔혹해졌다. 행인에게 총을 겨누고 한 살 아기의 눈에 총탄을 쏘는 등 무차별 총격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3월27일 미얀마군의 날(시민들은 ‘혁명의 날’로 부른다) 하루에 시민 100여 명이 숨지면서 반(反)군부 연대 세력들의 무장투쟁 의지는 더욱 거세졌다. 내전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나온다.

내전 카운트다운에 미얀마 내 외국인들의 ‘대탈출’도 시작됐다. 미얀마가 군부의 의도대로 고립의 땅이 될 거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3월30일 경기도 부천시 미얀마 민주주의민족동맹(NLD) 한국지부 사무실에서 시사저널과 만난 얀 나잉 툰 지부장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계속되는 소극적 자세에 더는 기대를 잃었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은 일촉즉발 상황의 심각성을 외면한 채, 속 터지는 ‘거북이’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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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임준선

“군에 한 번, 차가운 국제사회에 두 번 상처받아”

3월31일(현지시간) 유엔은 미얀마 사태 대책 마련을 위해 안전보장이사회를 긴급 소집하기도 했다. 비공개 회의에 참석한 크리스틴 슈래너 버기너 유엔 미얀마 특사는 “미얀마에 피바다(bloodbath)가 임박했다. 전례 없는 규모의 내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즉각적 집단행동을 촉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끝내 미얀마 시민들의 불안을 달랠 만한 그 이상의 메시지는 나오지 않았다.

3월24일 첫 인터뷰(시사저널 3월26일자 ‘미얀마 NLD 한국지부장 “무장투쟁이 희생 멈추게 할 가장 빠른 방법”’ 기사 참조) 이후 6일 만에 다시 만난 얀 나잉 툰은 더욱더 저항에 대한 결기에 차 있었다. 그 사이 미얀마 내 사망자는 250명에서 500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그는 “군부는 이제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악마’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어린아이들을 표적으로 삼아 죽이고, 젊은 여성들을 붙잡아 감금한 후 성폭행을 일삼는다는 소문도 들린다. 우리의 투쟁 의지가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얀 나잉 툰은 국제사회 평화유지의 의무가 있는 유엔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웅산 수치 고문이 선임한 사사 유엔 특사를 비롯해 미얀마 시민들은 유엔이 ‘R2P(Responsibility to Protect·보호책임)’를 발동해 시민들을 학살하는 군부를 무력으로 제재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유엔은 2007년 케냐 인종 학살, 2011년 리비아 내전 등에서 R2P를 발동한 전례가 있다.

그러나 얀 나잉 툰은 이런 기대감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사사 특사를 비롯해 미얀마 관계자들이 꾸준히 유엔에 군 지원 등을 요청해 왔다. 그러나 유엔은 2월1일 쿠데타가 터진 후 지금까지 계속 회의만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군부를 규탄한다는 성명서 한 장 낸다. 한마디로 ‘Only Talk, No Action(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다)’이다. 말만으로는 사람을 살릴 수 없다. 그러니 군부 쿠데타 세력도 겁을 내지 않는다.” 그는 “미얀마 군부와 가까운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있는 한, 앞으로도 유엔의 대응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얀 나잉 툰은 3월27일 쿠데타 세력이 벌인 군의 날 열병식에 중국·러시아·인도·파키스탄·태국 등 8개국 사절이 참석한 것을 두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자리에서 알렉산드르 포민 러시아 국방차관은 “미얀마는 러시아의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는 “불꽃을 터뜨리고 화려한 만찬을 즐기며 행사를 하는 순간에도, 거리에선 저항 시위에 나온 많은 시민이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쿠데타 세력은 행사 전날(26일) TV 방송으로 ‘계속 데모하면 머리에 총을 쏘겠다’는 메시지를 내보내며 경고하기도 했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단계”라고 전했다. 여기에 최근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태국이 미얀마 난민들의 입국을 거부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얀마 시민들의 좌절감은 더욱 커진 상태다. 얀 나잉 툰은 미얀마 시민들이 군부에 한 번, 차가운 국제사회 대응에 두 번 상처받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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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쿠데타 세력의 유혈진압으로 미얀마 내 사망자는 500명을 넘어섰다.ⓒAP 연합

“우리 민주화는 반드시 성공할 것”

얀 나잉 툰은 현재 민주정부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를 비롯해, 자신을 포함한 미얀마 활동가들이 내전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밝혔다. “반군 소수민족들은 모여서 내전을 위한 훈련을 하고 있고 CRPH는 정식 정부로서의 출범을 앞두고 있다. 그 정부의 군대가 투쟁을 주도하게 될 것이다. 나같이 미얀마 바깥의 사람들은 각자 머무르고 있는 나라에 미얀마 상황을 알리고, 열심히 돈을 모아 내전에 필요한 무기 등을 사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밤낮 일하고 새벽엔 미얀마 상황을 파악하느라 잠도 잘 못 자지만, 우리가 안 하면 누가 하겠느냐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다.”

그는 지난 인터뷰에 이어 다시 한번 무장투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더한 희생자가 나올 거란 우려도 있지만, 무장투쟁이야말로 현 사태를 끝낼 가장 빠르고 또 유일한 방법이란 주장이다. 그는 “미래 세대들이 독재와 싸우며 평생 나 같은 불행을 겪게 될까 두렵다. 민주주의를 빨리 되찾기 위해선 더는 시간을 끌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사사 유엔 특사를 비롯해 CRPH 지도자들과의 소통 상황도 전했다. 얀 나잉 툰은 “사사 특사를 비롯해 전 세계 활동가들과 계속 메신저와 전화통화를 이어나가고 있다. 연락을 할 때마다 ‘우리 민주화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말을 꼭 나눈다”고 말했다. 미얀마의 진정한 봄은 언제 찾아올까. 그는 고민 끝에 말했다. “난 1988년, 18세의 나이로 미얀마에서 혁명을 위해 싸우다가 도망 나온 이후 50대가 된 지금까지 고국에 못 돌아가고 있다. 사실 전쟁이 언제 끝날진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면서도 상황은 한순간에도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수개월 후엔 상황이 정리돼 있지 않을까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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