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그 많던 소망의 촛불은 누가 껐나
  • 전영기 편집인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1.04.12 08:00
  • 호수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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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보궐선거 뒤 나온 숱한 말 가운데 패배자인 김영춘 부산시장 후보자의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민심의 큰 파도 앞에서 결과에 겸허하게 승복하겠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의 질책을 엄중히 받아들인다” 같은 의례적인 얘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김영춘의 “민심의 큰 파도”는 실감 나는 표현이다. 분노한 민심은 쓰나미와 같다. 작은 파도는 기술을 부려 타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쓰나미 같은 큰 파도를 거스르면 파멸을 맞을 뿐이다. 김영춘은 민심의 속성을 정확히 알고 있다. 거역하면 파멸이 있을 뿐.

“겸허하게 승복”이란 표현은 패배했을 때 이 정권 사람들이 쓰는 통상적인 말투가 아니다. 그들은 자기가 승리한 선거에서만 민심을 겸허히 받든다. 패배 땐 민심보다 진영을 챙기는 본능이 발동한다. 대개 ‘동의할 수 없다’는 말로 시간을 번다. 그런 뒤 궤변과 억지, 조직과 댓글을 동원하고 진영의 결집을 유도해 상황 반전을 꾀하는 게 이들의 습성이다. 김영춘 후보가 민심에 겸허히 승복하겠다고 한 말에 적지 않은 진심이 느껴졌다. 그러나 진영의 이익에 깊이 물든 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당·정·청)에서 실제 민심에 승복하는 조치가 취해질지는 지켜볼 일이다. 

결국 말보다 행동을 봐야 한다. 당·정·청은 선거에서 확인된 민심의 큰 파도를 따를 것인가, 거역할 것인가. 민심을 따르면 파멸은 면할 수 있으나 본색을 잃어버린다. 진영 본색에 대한 강박에서 자유로워져야 그들은 민심을 따르게 될 것이다. 반면 민심을 거역하면 적어도 20년은 갈 줄 알았던 정권이 단 5년 만에 넘어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럴 경우 겨우 구축한 생계형 진보의 네트워크까지 해체될 수 있다. 진퇴양난 속에 문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대표 직무대행과 최고위원들이 4월8일 국회에서 4ㆍ7 재보궐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며 허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대표 직무대행과 최고위원들이 4월8일 국회에서 4ㆍ7 재보궐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며 허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연합뉴스

4·7 민심의 성격은 ①박원순·오거돈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단죄 ②집값·전셋값을 천정부지로 올린 부동산 파탄에 대한 심판 ③남에게 엄격하고 자신에게 관대한 불공정 권력에 대한 경고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권력형 성범죄 문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다음과 같은 말로 잘 담아냈다.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왜 하게 됐는지 잊었나. 권력을 악용한 성범죄 때문에 대한민국 제1, 제2도시에서 막대한 국민 세금을 들여 선거를 다시 치르고 있다. 이번 선거는 상식과 정의를 되찾는 반격의 출발점이다.”  반면 민주당은 지방자치단체장이 권력형 성범죄를 저질러 보궐선거를 치를 경우 후보자를 내지 않기로 한 당헌을 기어이 바꿔 진영 권력을 탐했으니 민심의 분노가 여기서 연원했다.

천정부지 부동산 파탄은 김현미·변창흠 전·현 국토부 장관이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을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정책을 쓰고, 중산층에 가혹한 세금을 매겨 재물을 억지로 빼앗는 가렴주구(苛斂誅求)에서 비롯됐다. 정부를 향한 민심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 이유다. 

불공정 권력의 사례는 열거하기 어렵다. 조국 가족을 사회적 특권 귀족으로 대접하고, 추미애·박범계를 연달아 법무장관 자리에 앉혀 검찰의 정당한 법집행을 방해했다. 이런 방식으로 대통령 주변 사람들의 범죄 혐의를 수사와 재판에서 해방시켜 준 주인공은 문 대통령 자신이다. 당·정·청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4·7 민심에 분노의 불을 질렀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한테 손가락질하거나 책임을 추궁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당·청 분리를 추구했던 노무현 대통령과 너무 다른 정치를 함으로써 문 대통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촛불혁명의 신화는 깨졌다. 그 많던 소망의 촛불은 다 꺼져 버렸다. 그들은 고민정처럼 종종 울먹이거나 페이스북에 동정을 호소하고 교통방송의 김어준처럼 음모론과 배후설을 늘어놓겠지만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속지 않는다. 그 증거가 4·7 보궐선거의 성적표다. 소망의 촛불이 분노의 횃불로 바뀐 원인은 오로지 문 대통령과 당·정·청이 지은 업(業) 때문이다.  다만 그들이 민심을 완전히 따르기로 선택하면 일말의 구원도 가능할 것이다. 

전영기 편집인
전영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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