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항공과 투톱’ 한서대 총장, 美 유령대학 통해 횡령 의혹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1.04.14 08:00
  • 호수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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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골든벨》 연수 대학이라더니 실제론 마사지 학원…“소유주가 총장 가족회사”

국내 대학 중 가장 많은 항공기를 보유한 한서대 총장 일가가 미국에서 횡령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횡령 창구로 지목된 곳은 이름만 ‘대학’인 현지 주식회사였다. 총장 일가는 이 회사를 좌지우지하며 수년 동안 학생들을 유치했다. KBS·지자체와 손잡고 학생들의 어학연수를 대행하기도 했다.

문제의 회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었던 ‘핸콕대(Hancock University)’다. 당초 이곳은 한서대의 미국 법인이자 자매 대학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시사저널 취재 결과, 핸콕대는 한서대와 무관하게 마사지 수업을 하는 학원으로 운영됐다. 핸콕대가 위치한 부동산의 소유주가 함기선 한서대 총장(81)의 가족회사라는 정황도 발견됐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내 제보자는 “함기선 총장이 핸콕대를 통해 교비 등을 우회적으로 사용했다”며 “이게 횡령·배임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한서대 측은 “일방적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❶ 하늘에서 찍은 한서대 태안비행장 전경 ❷ 함기선 한서대 총장ⓒ한서대학교 홈페이지 캡쳐

① 핸콕대의 정체?...마사지 가르치는 사설학원

핸콕대에 대한 함기선 총장의 지배력은 관련 서류에서 엿볼 수 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에 등록된 등기부에 따르면, 핸콕대는 2008년 설립됐다. 이후 2014년 핸콕대 부회장이자 총무이사로 ‘세바스찬 한’이란 사람이 등재됐다. 이 사람은 ‘핸콕대 부총장’으로 알려진 한아무개씨다. 그는 한서대 교수 출신으로 함기선 총장의 측근이다. 또 2017년 핸콕대 등기서류에는 함 총장 자신이 회장이자 모든 이사진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나와 있다.

핸콕대는 2019년 3월 자취를 감췄다. 당시 법인 청산을 위한 등기서류에 서명한 사람은 함 총장이었다. 등기서류에는 서명자에 관해 “법인의 유일한 이사 또는 다수의 이사진”이라고 적혀 있다. 함 총장이 혼자 핸콕대의 경영권을 쥐고 있었던 것이다. 한서대 관련 회계에도 핸콕대는 언급돼 있지 않다. 반면 언론 등에서는 “핸콕대는 한서대가 운영하는 미국 법인”이라고 수차례 소개된 바 있다.

핸콕대의 정체는 뭘까. 이곳은 이름과 달리 대학과는 거리가 멀다. 캘리포니아 주정부 사설고등교육국(BPPE)에 등록된 핸콕대의 유일한 교육과정은 ‘마사지 테라피’였다. 교육과정 안내서에 따르면, 2017년 수업료와 교재비 등은 10~20주 기준 3850달러(430만원)였다. 이러한 유료수업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핸콕대의 법인체 성격이 깔려 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에 따르면, 핸콕대는 주식회사(DOMESTIC STOCK) 형태로 설립됐다. 발행 주식은 100만 주의 보통주다.

대학이 주식회사로 등록된 경우는 이례적이다. 캘리포니아주의 캘리포니아공대, 서던캘리포니아대 등 주요 사립대학과 동국대 LA캠퍼스는 모두 비영리기관(DOMESTIC NONPROFIT)으로 등록돼 있다. 주식회사는 비영리기관보다 영리 활동에서 좀 더 자유롭다. 결국 핸콕대는 이름만 대학인 마사지 학원인 셈이다. 더군다나 핸콕대는 미국 연방정부 고등교육인증위원회(CHEA)의 인가를 받지 않았다. CHEA 인가 목록에 없는 대학은 미국 교육부가 인정한 정식 대학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서대는 홈페이지에 핸콕대에 대해 학생 교류 목적의 ‘자매 대학’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② KBS·서산시도 피해?...“핸콕대 전혀 몰랐다”

어쨌든 핸콕대는 어학연수를 원하는 학생들을 유치했다. 핸콕대는 KBS 퀴즈 프로그램 《도전 골든벨》 입상 학생들이 연수를 떠난 곳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런데 정작 KBS 측은 “핸콕대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입장이다. KBS 콘텐츠프로모션부 관계자는 “한서대가 KBS에 제작 협찬을 해 줘서 협약을 맺고 학생들의 어학연수에 도움을 받았을 뿐”이라며 “핸콕대란 곳은 들어본 적 없다”고 주장했다.

충남 서산시도 핸콕대에 시내 학생들을 연수 보냈다. 서산시는 2013년 핸콕대와 협약을 맺고 2018년까지 연수 사업을 진행했다. 서산시청 기획실 관계자는 “핸콕대가 《도전 골든벨》 어학연수지로 잘 알려져 협약을 맺은 것”이라고 했다. 서산시를 통해 사업 기간 동안 핸콕대를 방문한 학생은 총 249명이다. 해당 기간 시비(市費)는 총 1억6900만원 소요됐다.

❶ 핸콕대 부동산 등기부등본. HANSEO UNIVERSITY가 소유주로 나와 있다. ❷ 핸콕대 청산 등기서류. 함기선 총장이 ‘유일한 이사 또는 다수 이사진’ 자격으로 서명했다. ❸ HANSEO UNIVERSITY 임원진 등기서류. 대표이사, CEO, CFO, 법률대리인 모두 함기선 총장이다. 총무이사는 그의 딸인 함주현씨ⓒ미국 캘리포니아주정부 홈페이지·제보자제공

③ 핸콕대는 누구 것?...“소유주가 총장 가족회사”

핸콕대와 한서대의 연결고리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시사저널은 핸콕대가 있는 부동산의 등기부등본을 입수했다. 여기에 나온 건물 소유주는 ‘HANSEO UNIVERSITY’란 법인이었다. 한서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함 총장이 이곳에 114만 달러(12억7000만원)를 투자해 전체 지분의 13.3%를 확보했다고 한다. 나머지 86.7%는 한서대가 갖고 있다. 즉 핸콕대가 들어선 부동산의 최대주주는 한서대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주에 등록된 HANSEO UNIVERSITY 법인 등기서류에는 한서대가 전혀 언급돼 있지 않았다. 대표이사부터 최고경영자(CEO), 최고재무책임자(CFO), 법률대리인을 모두 함 총장이 도맡고 있었다. 총무이사(Secretary)는 함 총장의 딸인 함주현 한서대 교무부처장이다. 임원진은 이들 2명이 전부다. “HANSEO UNIVERSITY는 함 총장의 가족회사”란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사실이라면 함 총장이 가족회사를 통해 핸콕대를 지배했거나 임대권을 행사했다고 볼 수 있다. 윤석준 변호사(법률사무소 윤경)는 “총장이 해외에 대학과 관련 없는 회사를 소유·운영하면서 대학 재산을 빼돌린 정황이 밝혀지면 횡령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마이클 조 캘리포니아주 변호사는 “한국법상 대학이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미국 법인에 투자했다면 배임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했다.

 

④ 한서대가 79억원 빌려줘...대학 “재산권 지키기 위해”

한서대 측은 HANSEO UNIVERSITY가 함 총장 가족회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관계자는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총무이사를 함 총장의 딸로 임명한 것은 현지 생활을 오래한 경력과 영어 소통의 문제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라며 “함 총장은 설립자이자 이사장이기 때문에 학교를 대표해 (HANSEO UNIVERSITY 등기서류에) 서명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등기서류 서명일인 지난해 2월 당시 함 총장은 한서대 이사장이 아니었다.

HANSEO UNIVERSITY는 불법을 저지른 전력이 있다. 한서대 교비를 갖다 쓴 사실이 들통난 것이다. 한서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까지 교비 79억여원이 HANSEO UNIVERSITY의 운영비와 재산세, 부동산 매입 비용 등으로 들어갔다. 한서대는 해당 비용을 장기대여금으로 처리했다. 이는 내부감사 때 현행법 위반으로 지적됐다. 사립학교법상 교비는 학교 교육에 필요한 경비로만 쓸 수 있다. 교육부는 올 1월 한서대에 대한 회계감사를 진행했다. 교육부 사학감사당관실 관계자는 “감사 처분 내용은 확정 전이라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한서대 측은 “감사 내용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관계자는 “교비를 장기대여금으로 처리한 것은 재산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향후 해외 부동산 매각 시 대금 전액을 교비회계로 회수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핸콕대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한서대 관계자는 “미국 내 대학 설립이 매우 어렵다고 예상해 일단 설립허가신고 서류를 제출하고 허가 여건이 형성되면 이사회 보고를 진행하고자 했다”며 “불행히도 신청이 거절돼 이사회 안건으로 올리지 못했다”고 밝혔다. 즉 핸콕대는 설립허가를 받지 못하고 해산된 것이다. 그럼에도 핸콕대는 2008년 설립 후 대학이란 이름을 달고 11년 동안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수익을 올렸다. 수익의 행방을 쫓으려면 핸콕대를 비롯한 미국 법인의 실제 소유주와 지분 관계가 명확히 밝혀져야 할 필요가 있다.

함기선 총장 입시비리를 다룬 1993년 4월18일자 동아일보 1면 기사ⓒ네이버뉴스 라이브러리

◈ ‘스타 의사’ 출신 함기선, 그가 세운 한서대의 위상

한서대 설립자인 함기선 총장은 성형외과 의사 출신이다. 수도 의과대(현 고려대 의대)를 졸업한 뒤 가톨릭 의대 교수를 지냈다. 학교를 나와 1983년 서울 명동에 성형외과를 차렸다. 이후 약 10년간 미용성형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1992년 한서대를 세웠다.

이듬해인 1993년 함 총장은 입시비리에 휘말렸다. 그의 부인이 셋째딸 입시를 위해 장학사를 매수한 뒤 학력고사 답안지를 빼낸 것이다. 그 결과 내신 10등급이었던 딸은 순천향대 의대에 수석 합격했다. 나중에 수사 결과 첫째 딸과 둘째 딸도 같은 방법으로 의대에 부정 입학한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부인은 구속돼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으로 함 총장은 한서대 이사장직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2000년 다시 총장으로 복귀했다. 이후 지금까지 21년째 장기집권 중이다. 그 사이 한서대는 항공 분야 특성화 대학으로 자리매김했다. 해당 분야에서 한국항공대와 함께 선호도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충남 서산시와 태안군에 캠퍼스를 두고 있다.

한서대는 2001년 국내 대학 최초로 활주로를 확보했다. 또 보잉737을 포함한 항공기 48대와 관제시설도 갖추고 있다. 대한항공 그룹사(한진그룹) 산하의 한국항공대를 제외하면, 한서대의 항공기 보유량은 국내 대학 중 가장 많다. 항공기·관제시설·비행장 등 ‘항공 3요소’를 모두 갖춘 대학은 아시아 전체에서 한서대가 유일하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입시비리 사건의 당사자인 셋째 딸 함정현씨는 현재 한서대 교양교육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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