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는 선거 결과를 미리 알고 있다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09 14:00
  • 호수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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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과 공정’ 잡아야 중도층 표심 잡는다
진영논리·선악 구도 대신 실용적 접근해야
51대 49의 대선, 스윙보터 중도 표심 향방이 ‘관건’

163석 대 84석. 지난해 4·15 총선에서 집권여당과 제1야당이 거둔 지역구 성적표다. 의석수 차이가 두 배에 육박한다. 더불어민주당의 일방적 승리,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의 처참한 패배다. 그런데 득표율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49.9% 대 41.5%로, 불과 8.4%포인트 차이다. 이 작은 차이를 결정짓는 집단이 바로 스윙보터다.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는 우리가 흔히 부르는 ‘중도(中道)’가 바로 스윙보터라고 했다. 그들의 비중은 유권자의 25%로 추정된다. 왜 선거 때만 되면 여야 모두 ‘집토끼(전통 지지층)’보다는 ‘산토끼(중도·무당층)’에 집중하는지를 알 수 있다.

지난해 총선 결과가 이렇게 압도적으로 차이 날 것이라고 예측한 이는 적었다. 하지만 사실 승부는 결정돼 있었다. 스윙보터인 중도가 집권여당에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결과론적인 분석이지만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해 총선을 20여 일 앞둔 3월24~26일 성인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정부 지원 위해 여당 다수 당선(정부 지원)’과 ‘정부 견제 위해 야당 다수 당선(정부 견제)’이라는 주장 중 어디에 더 동의하는지를 조사했다(표본오차 ±3.1%포인트, 95% 신뢰수준). ‘정부 지원’과 ‘정부 견제’의 응답률은 각각 46%와 40%였다.

흥미로운 부분은 성향별 응답률에 있다. 보수와 진보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각자의 성향에 쏠리는 응답을 내놨다. 중도가 승부를 갈랐다. 중도는 45%가 ‘정부 지원’, 41%가 ‘정부 견제’라고 응답했다. 자신의 성향을 ‘모름’이라고 답한 이들 중에서도 ‘정부 지원(33%)’ 응답률이 ‘정부 견제(29%)’보다 높았다. 각각 4%포인트밖에 차이 나지 않지만, 실제 총선의 지역구 득표율 차이가 8%포인트였다. 중도·무당층의 작은 표심 차이가 대승과 대패라는 결정적 차이를 가져온 셈이다.

한국갤럽은 4·7 보궐선거를 2주 앞둔 3월23~25일 전국 성인 1001명을 상대로 지난해와 같은 조사를 했다(표본오차 ±3.1%포인트, 95% 신뢰수준). ‘정부 지원’과 ‘정부 견제’에 대한 응답률은 각각 33%와 57%였다. 이번에도 역시 보수와 진보는 각자의 성향에 쏠리는 응답을 대부분 내놨다. 그런데 중도의 응답이 지난해와는 큰 차이를 보였다. ‘정부 지원’은 25%에 그친 반면 ‘정부 견제’를 택한 응답이 67%나 됐다. 자신의 성향을 ‘모름’이라고 답한 이들의 응답도 ‘정부 지원(25%)’ 응답률이 ‘정부 견제(44%)’보다 낮았다. 지난해와는 확연한 온도 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사실상 이번 4월 선거의 승패는 확실히 결정돼 있던 셈이다. 이런 결과를 두고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이번 4월 선거는 처음부터 끝까지 중도 표심이 최대 변수였다”고 했다.

‘대선 전초전’으로 불릴 만큼 큰 관심을 끌었던 4월7일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 결과 또한 여론조사 추이대로 야당 후보의 압승으로 끝났다. 서울에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는 57.5%의 득표율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39.18%)를 18.32%포인트 차로 이겼다. 부산에서도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는 62.67%를 얻어 김영춘 민주당 후보(34.42%)를 28.25%포인트 차로 크게 앞섰다.

이제 내년 2월까지는 선거가 없다. 다음 선거는 내년 3월9일 대선이다. 과연 중도가 선거 승패를 가르는 흐름은 계속 이어질까. 전문가들은 지난해와 올해가 그랬듯, 내년에도 중도 표심이 매우 중요한 변수라고 입을 모았다. 그렇다면 중도 표심을 얻을 수 있는 ‘중도 확장성’이 가장 강한 대선주자는 과연 누굴까. 중도 표심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까. 대체 중도란 무엇이며, 무엇에 반응하는 걸까. 시사저널이 심층 분석했다.

이재명 경기지사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3월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을 나서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br>
이재명 경기지사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3월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을 나서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총선·보선 승패 결정한 중도 표심

여론조사에 따르면, 1년 전만 해도 중도는 분명 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주자는 측이 더 다수였다. 불과 1년 사이에 무엇이 변한 걸까. 부동산 문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가 민심의 역린을 건드린 걸까. 전문가들은 두 갈래의 답을 내놨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는 집값 문제가 ‘정권 심판’이란 바람을 불러왔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집은 ‘의식주’ 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집은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 중도층은 민생·경제 의제에 반응해 선거판을 뒤흔드는 바람을 만들어내는데, 이번에 정확히 부동산 바람이 불었다”고 해석했다.

이상일 케이스탯컨설팅 소장은 ‘내로남불에 대한 배신과 실망’을 이유로 꼽았다. LH 사태로 촉발된 분노 아래에는 국민적 공분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빙산이 있다는 분석이다. 이 소장은 “스무 번이 넘는 정책으로도 못 잡은 집값 문제는 지난해 총선에서도 유효했던 질문이었다”면서 “지금의 국민적 공분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대한 실망감을 넘어 현 정부가 표방했던 가치가 전면 부정당하는 배신의 문제로 만들어졌다. ‘내로남불’로 표현되는 배신감과 ‘180석을 몰아줬는데 무엇을 했느냐’라는 실망감이 복합작용하며 정권 심판의 발화점이 됐다”고 풀이했다. 김태일 전 영남대 교수도 “오랫동안 쌓인 진보의 위선과 내로남불이 탄핵과 촛불 정국에서 민주당과 동맹을 맺었던 중도그룹을 이탈하게 만들어 반대 세력을 지지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중도가 내년 대선에서도 지금 같은 ‘정권 심판’ 흐름에 계속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었다. 익명을 요구한 유력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총선과 보궐선거는 기본적으로 대통령과 정권을 중간 평가하는 성격을 갖지만 대선은 다르다. 대선은 미래에 대한 선거다. 완전히 다른 차원이며 다른 국면이 펼쳐질 거다. 이번에 야당이 이겼다고 대선에서도 야당에 유리한 국면이 이어진다고 보는 것은 굉장히 순진한 생각이다. 아직 여야의 대선후보도 안 정해졌다. 긴 안목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내년 대선에서 탄핵과 같은 강력한 돌발변수가 있지 않는 이상 정권 심판 흐름은 예상보다 세지 않을 수 있다고 봤다. 전례로 1997년 대선을 들었다. IMF 외환위기를 맞게 한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임기 후반 지지율 10%대로 당시 정권은 사실상 무너진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야당의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당선됐지만, 승리는 구도(이인제 출마로 보수 표 분산) 덕분이었다. ‘이회창 대 DJ’라는 일대일 구도였으면 DJ의 승리가 쉽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그는 “YS 정부가 사실상 나라를 망하게 했어도 정권 심판 분위기는 없었다”고 했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4월8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꽃다발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br>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4월8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꽃다발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이념적 접근 아닌 실용적 접근해야 중도 잡는다

중도 표심을 잡으려면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민생과 공정’이란 키워드를 꼽았다. 김태일 전 교수는 “중도의 가장 큰 특징이 한 진영이나 정당, 후보를 계속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이라면서 “여야 모두에게 새로운 시작의 문이 열렸다. 진영논리에서 빠져나와 선악 구도를 버려야 중도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최진 원장은 “중도 표를 잡으려면 정치적 접근이 아니라 경제적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라면서 “이념적 접근이 아니라 실용적 접근을 해야 중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용철 교수는 “부동산 문제에 대한 실용적 해법을 누가 먼저 제시하느냐에 따라 중도 표심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상일 소장은 중도의 민심을 얻으려면 민생 의제 못지않게 공정의 문제를 잘 다뤄야 한다고 했다. 이 소장은 “사실 국민도 마음속으로는 하루아침에 부동산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 “오히려 지금 우리 사회가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느끼고 있는 감정인 공정과 올바름의 문제를 바로 세우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 부동산 문제에서도 이 부분이 더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중도가 등을 돌리고 정권 심판 흐름이 강해진 이유에는 국민과 사회가 요구한 공정과 정의, 절차 등의 가치가 부정되고 배신당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라면서 “이런 일련의 가치를 다시 세우고 흐름을 되돌리는 문제가 다음 대선에서도 부상할 것이고 중도 표심의 향방에 중요하게 작동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전문가들의 진단은 여론조사 결과와도 부합한다. 올해 3월 한국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직무 수행 부정평가의 가장 큰 이유는 ‘부동산 정책(34%)’이었다. ‘경제·민생 문제 해결 부족(8%)’과 ‘공정하지 못함·내로남불(6%)’이 그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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