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초 마스터스 우승, 일본 열도가 들썩이는 이유
  •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18 12:00
  • 호수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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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스는 어떻게 세계 최고의 메이저대회로 자리 잡았나

일본의 마쓰야마 히데키(29·松山英樹)가 세계 골프 역사를 새로 썼다. 일본인 최초이자 아시아 국적 처음으로 ‘명인열전’ 마스터스의 그린재킷을 입었다. 마쓰야마는 4월12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파 72·7475야드)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올 시즌 첫 메이저대회 제85회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합계 10언더파 278타를 쳐 윌 잴러토리스(25·미국)를 1타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마쓰야마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일본인들이 절망에 빠졌을 때 마스터스에 출전해 아마추어 최고 성적인 공동 27위를 했다. 이번엔 10년 만에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며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일본인들에게 큰 위안을 줬다. 그는 대지진 피해 지역인 미야기현 센다이의 도호쿠후쿠시대학 출신이다. 일본 골프팬들은 최종일 새벽부터 TV 생중계로 그의 마스터스 최종 라운드 경기를 지켜봤다. 그가 그린재킷을 입은 모습은 일본 골프 역사에 영원히 남을 명장면이다. 스가 일본 총리는 “일본에 용기와 감동을 선사했다”고 밝혔다. 

마쓰야마 히데키(오른쪽)가 4월12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GC에서 끝난 제85회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뒤 대회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상징물인 ‘그린재킷’을 입고 두 손을 번쩍 들며 기뻐하고 있다.ⓒAP연합
마쓰야마 히데키(오른쪽)가 4월12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GC에서 끝난 제85회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뒤 대회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상징물인 ‘그린재킷’을 입고 두 손을 번쩍 들며 기뻐하고 있다.ⓒAP연합

박세리처럼 日 위로한 마쓰야마

우리에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박세리(43)를 보는 느낌이다. 박세리는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맨발 투혼’으로 우승하며 IMF 외환위기로 실의에 빠져 있던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마쓰야마의 우승이 갖는 의미는 적지 않다. PGA투어는 미국과 유럽 선수들의 텃밭이다. 마쓰야마의 우승으로 아시아 선수들도 ‘마스터스에서 우승할 수 있다’는 인식의 대전환 물꼬가 트이게 됐다. 일본은 미야모토 도메키치가 1932년 디오픈에서 처음 메이저대회에 도전한 이후 89년 만에 메이저 우승자를 배출했다. 

아시아 국적 선수로 메이저대회 우승은 양용은(50)이 최초다. 2009년 양용은은 PGA 챔피언십 대회에서 4라운드 합계 280타를 쳐 준우승한 타이거 우즈(46·미국)를 3타 차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한국은 최경주(51)가 PGA투어를 개척했다. 2000년 PGA투어에 합류한 최경주는 2002년 컴팩 클래식에서 첫 우승을 거둔 뒤 통산 8승을 올렸다. 최경주는 마지막으로 2011년 제5의 메이저대회로 불리는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지만 메이저대회 우승은 없다. 한국 선수로는 PGA투어 신인상을 수상한 임성재(23)와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 타이틀을 손에 쥔 김시우(26)가 마스터스 등 메이저대회를 제패할 수 있는 기대주다.  

일본프로골프투어에서 8승을 갖고 있는 마쓰야마는 2013년 PGA투어에 합류해 2014년 22세에 잭 니클라우스(미국)가 주관하는 메모리얼 토너먼트에서 첫 승을 거두며 일본을 대표하는 선수로 기대를 모았다. 그는 2017년 월드골프챔피언십(WGC)-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한 후 약 3년8개월 만에 마스터스에서 우승컵을 안으며 통산 6승을 올려 ‘월드스타’로 떠올랐다. 마쓰야마는 8년 만에 누적 총상금 3329만951달러(약 374억1900만원)를 획득했다.

4대 메이저대회 중 철저한 브랜드 마케팅으로 성공한 마스터스의 우승은 다른 메이저대회와 달리 특별한 점을 갖고 있다. 사실 PGA투어 4대 메이저대회는 각각 ‘우리가 하늘 아래 최고 골프대회’라는 대단한 자존심을 갖고 있다. 메이저대회 중 1934년 창설해 올해로 85회를 맞은 마스터스의 역사가 가장 짧다. 1916년 창설한 PGA 챔피언십은 103회, 121회를 맞는 US오픈은 1895년 첫 대회를 열었고,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디오픈은 1860년 시작해 147회를 맞는다. 대회마다 독특한 특징이 있다. US오픈은 언더파를 내기 어렵게 최고로 악명 높게 코스를 세팅한다. PGA 챔피언십의 코스는 다소 거칠게 조성되고, 실용적인 대회로 전통을 잇고 있다. 디오픈은 골프 종가답게 스코틀랜드 앤드루스 올드코스 등 영국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코스를 순회하며 개최한다.  

마스터스만이 유일하게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한 곳의 골프장에서 열리고 주최까지 한다. 디오픈은 영국왕실골프협회(R&A), US오픈은 미국골프협회(USGA), PGA 챔피언십은 미국프로골프협회(PGA of America)가 주최 및 주관한다. 

마쓰야마는 가장 먼저 우승하고 싶은 메이저대회로 마스터스를 꼽았다. 대다수의 선수도 우승하고 싶은 대회 1순위로 마스터스를 선택한다. 마스터스는 골프장을 순회하며 열리는 다른 메이저대회와 달리 오직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리기 때문에 출전 경험이 많은 선수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마스터스에서 2승 이상 올린 선수는 17명이다. 잭 니클라우스는 6번, 타이거 우즈는 5번, 아놀드 파머가 4번씩 그린재킷을 입었다.

 

‘마스터스’가 선수들의 로망이 되기까지  

오거스타 내셔널은 ‘구성(球聖)’ 보비 존스(1902~1971)가 영국과 미국에서 열린 오픈대회와 아마추어대회를 석권한 후 은퇴해 친구들과 은밀하게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조지아주 오거스타에 건설했다. 인구 20여만 명의 소도시다. 사우스캐롤라이나 경계선 부근의 계곡으로 기후가 온화해 라운드하기에 좋은 곳이다. 존스가 뉴욕의 금융업자 클리포드 로버츠와 물색한 최적의 땅이다. 코스 설계는 스코틀랜드의 전직 의사 앨리스터 매켄지 박사가 맡았다. 1934년 코스가 완성 단계에 이르자 존스는 아마추어와 프로들을 초청해 대회를 개최했다. 마스터스의 탄생이었다.

마스터스는 오거스타 내셔널이 최고의 브랜드로 성공시킨 대회로 평가받는다. 가장 미국적인 비즈니스 마인드가 잘 녹아 있다. 합리적이고, 체계적이며, 치밀한 장기 플랜으로 구성한 ‘역사 만들기’가 잘 맞아떨어졌다. 당장 코스부터 그렇다. 철인골퍼 벤 ‘호건의 다리’, 진 ‘사라센의 다리’, 15번홀 페어웨이 옆에 있는 ‘래의 개울’, 미국 제34대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나무’ 등이 코스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코스에서 물을 마시려면 잭 니클라우스, 아놀드 파머의 대기록을 담은 동판을 볼 수밖에 없도록 디자인했다. 마스터스의 성공 비결은 겉으로는 비상업적, 속으로는 가장 상업적으로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대회와 달리 총상금과 우승상금은 3라운드가 끝나고 결정된다. 돈을 많이 벌면 그만큼 상금도 늘어난다. 마케팅에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상금과 대회 운영경비 등은 모두 오거스타 내셔널이 방송중계권과 기념품 판매, 입장권 수입 등으로 충당한다. 이들은 대회장을 찾는 고객들의 지갑을 열게 만든다. 대회를 보려면 두 번은 식사를 해야 한다. 덥기 때문에 음료수는 기본이다. 편안하게 앉아서 보려면 의자를 구입해야 한다. 마스터스 로고가 새겨진 기념품은 줄을 서야만 살 수 있다. 입장객을 갤러리라고 부르는 다른 대회와 달리 입장권을 구입한 고객의 자존심을 세워주려고 ‘페이트런(patr0on)’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티켓 구입만으로 후원자가 된다. 이런 철저한 마케팅이 마스터스와 오거스타 내셔널을 세계적인 걸작품으로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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