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명분 잃은 패배, 민망한 추락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19 08:00
  • 호수 164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김수영의 시 《폭포》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시인은 아무런 주저 없이 추락의 길로 들어서는 폭포수의 그 결연함에서 ‘고매한 정신’의 반짝임을 보았다. 높은 곳으로 올라 빛나는 것들이 아닌, 낮은 곳으로 추락하는 폭포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은 일종의 ‘역설의 미학’이다. 폭포가 아름다운 것은 운명 앞에서 어떤 망설임이나 꾀부림도 없이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찾아 힘차게 떨어질 줄 아는 결기 때문일 것이다. 그 자연스러움이 장렬함을 만들고, 장엄함을 자아낸다.

집권당인 민주당의 4·7 재·보궐선거 패배는 저 자연 속 폭포에 비견할 수 없을 만큼 보잘것없고 민망한 추락이었다. ‘원칙 없는 선택’이 낳은 참사이기도 하다. 자당의 귀책사유가 뚜렷한 선거에 무리한 출사표를 던짐으로써 떠안은 자업자득이라는 비판이 그래서 나온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던 조기숙 교수 같은 이들이 선거에 앞서 “명분 있는 패배를 준비하라”고 잇따라 충고했음에도 그들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로 인해 원칙에서도 전략에서도 모두 무너졌다. 때론 담대한 포기가 담대한 승리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외면한 채 이길지도 모른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많은 것을 잃었다. 투표일이 코앞에 다가와서야 여론의 불리함을 감지하고 고개를 숙였지만, 탄식은 늦었고 반성은 미약했다. 일각에선 ‘성찰 쇼’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왔다.

여당의 실패는 이미 오래전에 예고되어 있었다. ‘20년 집권 플랜’ 등 과욕과 자만의 전조들이 이어졌고,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이후에는 더 위험한 신호가 곳곳에서 켜졌다. 국회 다수 의석을 앞세워 개혁에 주력했지만 잡음이 잇따랐고, 주목할 만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적폐 청산에 매달렸음에도 정작 발밑에서 커가던 부동산 적폐는 알아채지 못했다. 물론 개혁에 드라이브를 건다고 해서 다른 민생 분야에 손을 놓았을 리 없겠지만, 민심은 그 속내까지 들여다보고 이해할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개혁이 시급하더라도 국민은 좀 더 현실적인 문제에서 정부·여당이 나름의 능력을 보여주길 바랐으나 손에 잡히는 성과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 일자리와 집, 즉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갈증이 깊어졌음을 그들은 몰랐거나 외면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 항목 중에서 부동산 정책과 경제·민생 문제가 상위권에 오른 지는 오래됐다. 이번 선거 전부터 주변에서 “누구도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많았음에도 유권자들이 결국 야당을 더 많이 선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야당 후보가 싫더라도 그를 선택해야만 여당에 패배를 안길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여당에 회초리를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그만큼 강했다.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들이 4월9일 오후 국회에서 4·7 재보선 참패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마치며 인사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br>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들이 4월9일 오후 국회에서 4·7 재보선 참패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마치며 인사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이번 두 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분명하게 오만을 심판받았다. 차라리 장렬한 추락을 선택했어야 할 순간에 순리를 거스르는 길을 택한 데 따른 결과는 비참했다. 민생에서 확실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지지층만 보고 내달리는 권력이, 내지 않아도 될 욕심을 내보이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재·보선 결과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또 말한다. “바보야, 문제는 바로 민생이야!”라고. “이전처럼 우물쭈물하다가는 더 큰일을 당할 것”이라고.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