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해바라기’ 외교는 위험…선택지 늘리는 외교할 때”
  • 김종일·이원석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20 10:00
  • 호수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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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35년 외교 베테랑’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
“안보에 있어선 한․미 동맹이 기준…그 외엔 국익이 우선”

전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나라 미국과 새로운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어디일까. 미·중의 패권 다툼과 글로벌 경제 전쟁이 격화되면서 그 속에서 살아남고 활로를 찾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신세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뻔한 공자님 말씀’ 말고 경험과 이론이 바탕이 된 풍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35년 경력의 ‘외교 베테랑’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을 찾았다. 

1980년 외무고시에 합격한 그는 외교부에서 북미국장 등을 거치며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활동했다. 2014~15년 박근혜 정부에서 외교부 제1차관을 역임했다. 이후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장, 국가안보실 제1차장 등을 거쳤다. 비례대표로 지난 21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했다. 현재는 전공을 살려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4월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90분간 그에게 미·중 사이에서 우리가 갈 길에 대해 물었다. 그는 신중했다. 사전 질문지를 보고 “쉽게 대답할 게 없다”고 하면서도 설명은 명료했다. 신중한 그의 말 속에 그간의 고민이 엿보였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어떻게 정하고 판단해야 하는지를 거듭 물었는데, 그는 몇 가지 확실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했다. ‘국익’ ‘국제규범’ ‘일관성’과 같은 키워드들을 계속 강조했다. 이런 논리에서 사안에 따라 미국에 대해서도 “노(No)는 ‘노’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이종현

문재인 정부가 그간 외교·안보에서 가장 잘한 점을 꼽는다면.

“(한참 망설이며) 어려운 질문이다. 전반적으로 현 정부의 정책들은 저와 지향점은 물론 대전제가 달라 찬성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굳이 하나를 뽑자면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국산전투기(KF-21) 시제기가 출고된 것이다. 이 부분은 잘했다. 과거부터 쭉 일관되게 진행되던 국방력 증가를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어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출고식에도 참석했다. 굉장히 잘한 일이라고 평가한다.”

반대로 가장 못한 정책은 무엇이라고 보나.

“(단호하게) 2018년 맺어진 9·19 남북 군사합의다. 군사합의라는 것은 북핵 문제라는 전제가 풀리고 나서야 검토할 문제였는데 선후가 뒤바뀌어 진행됐다. 우리 안보의 가장 큰 위협 중 하나가 바로 북한의 장사정포다. 이를 무인정찰기로 24시간 감시해 위협이 감지되면 실시간으로 그 좌표를 공격하는 시스템이 있었다. 그런데 9·19 합의로 무인정찰기가 휴전선 쪽에 뜨지 못하게 됐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우리 안보의 최전선인 백령도와 연평도에 있는 자주포도 제대로 훈련할 수 없게 합의가 이뤄졌다. 우리가 군사적 우위에 있는 부분들이 이 합의로 다 ‘핀셋 제거’됐다. 현 정부는 북한의 여러 얼굴 가운데 보고 싶은 얼굴만 보고 있다. 그 관점에서 이뤄진 정책들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우리 국민에게 잘 전달되지 않은 내용이다.

“9·19 남북 군사합의가 이뤄진 날 평양공동선언이 나왔다. 사흘 후엔 한·미 정상회담이 있었다. 국민과 언론의 눈이 그 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충분히 검토되지 못하고 이뤄진 합의다. 태생부터 잘못된 합의다. 현 정부의 외교는 ‘북한 해바라기’다. 360도 외교를 해야 하는데 한 곳만 본다. 모든 문제가 여기서 시작된다.”

최근 미·중 갈등이 심상치 않다. 그동안의 대미·대중 외교는 어떻게 평가하나.

“먼저 미국과의 신뢰가 그동안 많이 깨졌다. 백번 양보해 전략적이었다면 그럴 수 있다. 그렇다면 반대급부로 중국과의 관계가 좋아져 많은 보상을 얻어냈어야 했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다. 정부 생각처럼 중국과 북한에 제 목소리를 내려면 미국, 일본 등과 관계를 튼튼히 만들어놔야 한다. 오히려 중국과 북한은 한·미 동맹의 견고함을 상수로 생각한다. 한·미 동맹이란 외교·안보의 닻이 제대로 내려져 있을 때 오히려 우리의 존재감이 커진다. 그래야만 다른 국가와도 폭넓게 합의할 공간이 생긴다. 대북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미·중 사이에 끼인 우리 입장이 쉽지 않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떤 관계 설정을 해야 하는지는 일도양단(一刀兩斷)처럼 딱 답이 나오는 문제는 아니다. 양쪽에서 우리 팔을 끌어당기는데 중견국인 우리가 이 사이에서 힘겨루기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저는 ‘원칙과 일관성, 국제규범과 국제법’ 등을 우리 편으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이러면 오히려 우리 입장에 일정한 공간이 생긴다. 이걸 미·중 사이에 끼인 우리의 외교·안보에 대입할 수 있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한반도 안보를 예로 들어보자. 안보 문제에 있어 미국과 중국은 우리와 아예 다른 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은 한국의 유일한 동맹국이다. 조약으로 맺어진 동맹이다. 한·미는 서로가 공격이나 침략을 당하면 개입해 도와줄 법적 의무가 있는 관계다. 매우 엄중한 관계다. 반면 중국은 우리의 최대 무역국인 협력적 동반국가다. 하지만 미국과 같은 동맹국은 아니다. 이렇게 보면 안보 문제에서는 우리에게 한·미 동맹이 기준점이 돼야 한다. 그게 원칙이다.”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이종현

군사적 안보 못지않게 경제적 안보도 중요하다.

“물론이다. 그렇기에 안보 외에 경제 등의 문제에서는 우리의 국익을 가장 우선해 입장을 정해야 한다. 이슈·사안별로 국익을 잘 계량해 대응해야 한다. 여기서도 국제법과 일관성, 원칙을 우리 편으로 삼아야 한다. 가령 트럼프 행정부가 했던 것처럼 미국이 중국에 관세 폭탄을 때리겠으니 동조하라는 요청이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 어긋나는 것은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 아무리 미국의 요청이더라도 안 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노(No)’라고 해야 한다. 무역국가인 한국에 다자 무역의 규범을 흔드는 움직임은 미·중 등 어디든 간에 우리 국익이 우선이라는 점을 세계 기준에 부합해 강조해야 한다.”

최근 미·중은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치열한 갈등을 빚고 있다. 

“맞다. 바이든 행정부는 첨단기술에서 중국과 확실한 차이를 만들겠다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 특히 ‘기술표준’에 있어 그렇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작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해 말을 하나 만들었다. 바로 ‘기술 민주국가(techno-democracies)와 기술 전제국가(techno-autocracies) 사이의 대결’이란 표현이다. 말하자면 첨단기술이 미래의 우위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인데 그 ‘표준’을 미국 중심으로 끌고 가겠다는 선언이다. 중국과 글로벌한 대결을 하겠다는 것인데, 이렇게 미국 입장이 확고하고 또 우리에게도 이익이 확실한 분야에 대해선 입장을 빨리 정해야 한다. 기술표준에 있어 미국에 등을 지면 우리의 글로벌 비즈니스는 성립되기 어렵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는 ‘전략적 모호성’을 말하는데, 이런 부분에서는 ‘전략적 명료성’으로 가야 한다. 이렇듯 핵심 이슈에서 우리가 분명한 입장을 취하면 다른 이슈에선 꼭 미국과 입장을 같이하지 않아도 마찰이 줄어든다. 오히려 선택과 자유의 공간이 넓어진다.”

최근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중 어느 쪽에도 서지 말고 새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초월적 외교론’을 펼쳤다. 

“극히 부적절한 인터뷰라 생각된다. 내용은 물론 타이밍과 대상 모두 부적절했다. 문 이사장은 ‘우리가 미국 편을 들면 한반도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취지를 밝혔다. 이 발언을 왜 지금 굳이 해야 했는지 의문이다. 현재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그리고 이 발언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부정한다.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없다. 더 의문인 건 일본 언론에 이런 얘길 했다는 것이다. 대체 왜? 도대체 이해를 못 하겠다.”

평소 ‘선택지를 늘리는 외교’를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로 제시했다. 자세히 설명해 달라.

“외교엔 많은 변수가 있다. 우리의 외교·안보 정책의 닻을 내리게 했던 근본 가정과 전제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전략가 입장에서는 상상력이 중요하다. 그런 변화가 발생했을 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자강(自强) 능력이 있어야 한다. 또 지정학적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나라들과 협력할 수 있는 문을 열어놔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선택지를 줄이는 외교를 하고 있다. 북한에 ‘올인’하느라 주변의 전략적 변화 등에 무감각하다. 눈을 감고 있다. ‘사드 3불(不)’ 정책이 대표적이다. 미국 MD(미사일방어) 참여,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동맹 미참여 등이 과연 적절한 정책이었나. 10년, 20년, 30년 후를 내다보는 외교가 필요하다.”

미국의 대중 포위망 틀로 거론되는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 참여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중요한 것은 지금 미국이 우리에게 쿼드 참여를 요청했는지 여부가 아니다. 쿼드에 속한 미국과 일본, 호주, 인도 등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현재 쿼드는 협의체 정도의 단계다. 우리가 직접 가입하지 않더라도 개별적으로 협력할 사안이 많다. 그런 제안을 우리가 먼저 할 수도 있다. 우리 국익에 따라 능동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 현재 쿼드 가입국들에 공동의 도전이 많은데,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협력 방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이 국회 비준을 기다리고 있다. 

“총론은 환영이다. 어려운 이슈가 타결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각론은 이해를 못 하겠다. 우리가 지금까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하면서 한 번도 인상률을 국방비와 연동시킨 적이 없다. 그동안은 소폭 인상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연동시켰다. 최근 물가상승률은 1% 미만이다. 반면 ‘2021~25 국방 중기계획’에 따르면 국방비 인상률은 연평균 6.1%다. 분명 우리에게 이익이 아니다. 앞으로 방위비 분담금 때문에 국방 예산을 늘리는 데 제약이 있을 수도 있다. 큰 실수다. 국회 비준 과정에서 꼼꼼히 따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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