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이 성공? 국가 온정주의가 불러일으킨 착시
  • 허구생 역사칼럼니스트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1.04.16 10:00
  • 호수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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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수급 실패·집단면역 꼴찌’ 초라한 성적표
방역 정책 결정 과정에 국민 참여 거의 배제돼

지난해 2월21일, 우리 부부는 5박6일 여정으로 베트남 하노이로 향했다. 출국 전날 중국발 코로나가 막 대구를 덮쳤다는 불길한 소식이 전해졌지만, 다행히 하노이에서 기대 이상의 환대를 받으면서 불안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런데 4일째부터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아본 상점 주인들이 마스크 착용을 요구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베트남 당국에서 밤중에 호텔 방으로 전화를 걸어 주소지가 어디인지, 대구에 간 적이 있는지, 베트남에서는 어디 어디를 다녔는지 온갖 것을 꼼꼼하게 묻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우리는 쫓기듯이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 총리 “6월21일까지 접촉 제한 모두 해제”

그런데 막상 귀국해 보니 대한민국의 사정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신천지교회 등 집단발병의 근원지를 확인한 뒤에 환자들과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신속하게 추적해 대량의 진단검사를 시행하고, 환자 및 그들과의 접촉자들을 조기에 격리시키는, 이른바 K방역이 효과적으로 수행되고 있었다. 하루 확진자 숫자를 수십, 수백 명 이내로 관리하고 있던 한국 방역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적극적인 환자 추적, 무료 검사, 건강보험 체계에 의한 효과적인 치료, 검사 횟수와 확진자 숫자 등에 관한 투명한 공개 등이 긍정적 외신 보도의 초점이 되었다. 덕분에 정부에 대한 우리 국민의 신뢰도 높아졌다. 그런 가운데 치러진 2020년 4·15 총선은 여당의 압도적인 승리로 귀결됐다. 

그런데 1년이 흘러 상황은 급작스럽게 바뀌었다. 지난 2월말,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의회에서 오는 6월21일까지 사회적 접촉에 관한 모든 법적 제한조치들을 완전히 해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이 계획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불가역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가오는 봄과 여름은 ‘희망의 계절’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지금 런던의 거리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시민들로 넘쳐나고, 해방감에 가득 찬 시민들이 주점에 모여 자정이 넘도록 자축의 건배를 하고 있다는 것이 외신의 전언이다. 접종자와 코로나19 완치자 등 국민의 73%가 항체(면역 성분)를 가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는 등 그들의 자신감은 나름대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3월23일 서울 종로구보건소에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맞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3월23일 서울 종로구보건소에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맞고 있다.ⓒ연합뉴스

한국의 방역 정책, 1년 만에 국민 신뢰 잃어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집단감염이 속출하고 있고, 코로나 재생산지수가 1을 넘는 위기 상황의 연속이다. 5인 이상 집회금지 조치가 이미 100일을 넘기고 있으며, 온갖 규제에 일상을 지속적으로 침해당하고 있다. 작금의 우리 현실이 이토록 초라하게 느껴지는 건 아직 우리에게 탈출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백신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백신 접종률은 세계 꼴지 수준에 해당하는 2% 대에 머무르고 있으며, 수급계획에 대한 정부 발표는 신뢰를 잃었다.

우리는 서구 국가들의 코로나19 초기 상황 대응을 그저 혼란으로만 간주하고 정부 조치에 항의하는 시민들을 무책임한 개인주의자들로 단정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것은 우리가 그들의 역사적 경험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데서 비롯된 오해가 아니었나 싶다. 그것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상황에 직면해 자신들이 지난 수백 년간 피로써 쟁취한 민주주의 가치와 사회계약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코로나19 종식이라는 공익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다소 시끄러운 과정이 아니었을까. 

1980년대 호주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운전면허를 따는 일이었다. 필기와 주행시험에 합격한 내게 주어진 건, 내 이름과 면허시험에 합격했다는 간단한 내용이 적힌 32절지 한 장이었다. 사진도 붙어 있지 않았다. 학교에 가니 학생증도 없었고 대신 발급된 도서관 출입증에는 이름도, 사진도 없었다. 개인수표와 신용카드가 일상화된 나라에서 신분증의 부재가 가져올 경제적 부작용을 그들이 모를 리 없지만, 그것은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그들의 스탠더드였다. 호주 정부가 세제 혜택 등을 통해 운전면허증에 사진을 부착할 것을 유도하고 그것을 일반화하는 데는 그 후로도 오랜 세월을 필요로 했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K방역의 성공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을 때, 외신들은 우리 정부에 대해 디지털 감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거나, 개인의 자유와 인권, 그리고 효율적 방역 등 서로 상충하는 범주의 가치들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사회적 논의가 불충분하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정부의 사회적 접촉 제한조치에 대한 우리 국민의 순응을 유교적 집단주의, 또는 가부장적 국가주의 때문으로 보는 분석도 있었다. 우리는 이것을 단순히 그들의 질투 또는 오리엔탈리즘에서 비롯된 편견과 오해로 간주했다. 

 

“방역=절대선” 명분으로 개인정보 맘껏 활용

그런데 우리가 간과했던 사실은 우리 정부가 가지고 있는 ‘국가 온정주의(state paternalism)’ 성향이었다. 이는 원래 서양이 중세 봉건국가에서 절대주의 국가로 넘어가는 역사적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이론적 틀을 일컫는 말이다.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국가가 신민들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 국민의 경제 및 일상생활까지 책임지고 돌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국가가 정하면 신민들은 국가의 선한 뜻을 믿고 무조건 따르라는 것이다. 이후 서양 사람들이 국가 온정주의를 뒤집어 사회계약론에 입각한 계몽주의적 자각과 유혈 혁명을 통해 개인의 자유와 인권의 원칙을 확립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 이 국가 온정주의라는 시대착오적인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근한 예가 2018년 국립공원 내 음주금지 조치다. 비록 음주가 산행사고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5% 정도로 크지 않다고 해도 그것을 규제할 필요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사실상의 숙박시설인 대피소를 포함해 장소와 시간을 불문한 획일적 금지조치가 문제였고,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은 더 큰 문제였다. 정부의 ‘선한’ 뜻은 이해하지만 국민이 각기 성숙한 인간으로서 자신들의 안전과 행복에 관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간과한 것이다.

방역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방역을 절대선으로 내세우면서 엄청난 개인정보를 마음껏 활용하고, 거기에다 국민의 동선을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는 첨단 디지털 감시기술까지 동원했다. 그러고도 확진자 억제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실제 한국의 성공적 초기 방역을 주의 깊게 연구한 외국 학자들이 자국 도입에는 부정적이었던 건, 그들 사회에서는 그러한 감시와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방역 정책 결정 과정에 시민들의 광범위한 참여와 동의가 거의 부재했다시피 한 우리 현실에서, 정부에 대한 신뢰는 성공적인 방역이 지속되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작동될 것이 뻔하다. 질병 상황이 심각해질수록 정부에 대한 신뢰는 곤두박질할 것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백신 수급계획을 포함해 문제가 있으면 그대로 밝히고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고 또한 촛불정신에 부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구생은 누구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영국 빈민법에 관한 연구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역사적으로 읽는 글을 많이 쓰고 있으며 서강대학교 국제문화교육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빈곤의 역사, 복지의 역사》 《울퉁불퉁한 우리의 근대》 《근대 초기의 영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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