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무대가 좁은 황의조, 빅리그 갈까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24 15:00
  • 호수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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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점력 앞세워 ‘정통 스트라이커’ 입지 굳히기
독일·스페인에서 러브콜

황의조는 2019년 여름 일본 J리그(감바 오사카)를 떠나 프랑스 리그1(리그앙)의 지롱댕 보르도로 이적했다. 또 한 명의 유럽파 탄생으로 성공을 기원하는 동시에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했다. 스트라이커 포지션의 경쟁력 때문이었다. 차범근이 1980년대 독일에서 최고의 공격수로 활약했지만, 이후에는 한국인 스트라이커가 큰 족적을 남긴 사례는 없었다. 박주영이 프랑스에서 활약하긴 했지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실패로 완벽한 성공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지금은 손흥민과 황희찬이 전술적 활용에 따라 최전방을 보지만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 해리 케인 같은 이른바 ‘9번’이라 불리는 정통파 스트라이커는 아니다. 

황의조는 중앙에서 상대 수비와 경합하며 득점에 최대 강점을 보이는 스트라이커다. 걱정된 부분은 프랑스 리그앙의 특징이었다. 피지컬 능력이 뛰어난 아프리카계 선수가 많아 공격 시 맞이하는 수비수와의 1대1 대결의 압박감이 빅리그(잉글랜드·스페인·이탈리아·독일 리그) 이상으로 크다. 대신 거기서 경쟁력을 증명하면 더 높은 무대로 가는 발판을 놓을 수 있다.

보르도의 황의조 선수(가운데)가 4월11일 프랑스 리그앙 생테티엔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팀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AFP연합
보르도의 황의조 선수(가운데)가 4월11일 프랑스 리그앙 생테티엔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팀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AFP연합

프랑스 리그앙 진출 두 시즌 만에 두 자릿수 득점 달성

황의조는 자신의 첫 번째 유럽 진출 무대인 프랑스에서 그 기회를 잡았다. 첫 시즌인 2019~20 시즌 코로나19로 인해 리그 일정이 10경기 축소됐음에도 6골을 기록하며 안착한 그는 2020~21 시즌에서 현재 두 자릿수 득점을 돌파했다. 33라운드를 마친 시점에 황의조는 11골을 기록 중이다. 지난 2010~11 시즌 모나코에서 박주영이 기록한 리그앙 한국인 최다골인 12골과 1골 차다. 남은 5경기에서 그 기록을 넘어설 가능성은 충분하다.

특히 최근의 득점 기세가 무섭다. 3월14일 디종전 멀티골을 시작으로 몽펠리에, 스트라스부르, 생테티엔을 상대로 4경기 연속 골을 터트렸다. 그 4경기에서 팀이 넣은 득점은 7골이었는데, 70% 이상을 황의조가 책임진 것이다. 팀 내 신뢰도 두텁다. 10호 골은 스트라스부르와의 경기에서 넣은 페널티킥이었다. 올 시즌 황의조의 첫 번째 페널티킥 득점이었다. 원래 보르도는 공격형 미드필더인 니콜라 드프레비유가 전담 키커로 나서는데 황의조의 10호 골을 위해 양보한 것이다. 깔끔하게 성공시키자 11호 골도 팀이 페널티킥 키커로 그를 지목해 성공시켰다. 

리그에서의 득점 순위로 보면 황의조는 12위에 해당한다. 두 자릿수 득점을 넘었다고 해도 객관적으로 보면 평범하게 느껴진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득점 시동이 지난해 12월에야 본격적으로 걸렸다는 사실이다. 12월16일 열린 생테티엔전에서 시즌 첫 골을 기록했는데, 4개월 사이 18경기에서 11골을 몰아넣었다. 올해 들어서는 9골을 기록 중인데, 이 수치는 리그앙 내에서 킬리안 음바페(파리생제르맹, 10골) 다음으로 많다. 

전반기에 황의조가 부침이 심했던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기초군사훈련 여파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손흥민과 함께 와일드카드로 출전, 금메달을 획득하며 병역 혜택을 받은 황의조는 지난해 5월 입대해 4주간의 군사훈련을 받았다. 그 여파로 시즌 준비를 위해 몸을 만드는 데 애를 먹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르도는 지난 시즌 팀을 이끌었던 포르투갈 출신의 파울루 수자 감독이 시즌 개막을 앞두고 구단 수뇌부와의 갈등으로 돌연 사임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파울루 벤투 감독과 친한 수자 감독은 황의조를 영입한 주인공이었다. 수자 감독의 신뢰 속에 꾸준한 출전 시간을 얻으며 리그 적응을 마칠 수 있었는데, 1년 만에 작별하게 된 것이다. 

새롭게 부임한 프랑스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출신인 장 루이 가세 감독은 황의조에게 수자 감독만큼의 신임을 보내지 않았다. 12월초까지 황의조는 평균 출전 시간이 45분에도 미치지 못했고, 교체 출전 빈도가 점점 높아졌다. 무엇보다 가세 감독이 팀 전술을 이유로 측면, 2선 등 여러 포지션으로 돌리며 황의조는 득점을 노릴 수 있는 지역에서 멀어졌다. 팀이 부진에 빠진 12월, 분위기 전환을 위해 최전방 공격수로 나선 황의조가 3경기에서 2골을 넣으며 반전은 시작됐다. 1월에는 로리앙, 니스, 앙제를 상대로 3경기 연속 공격포인트(3골 1도움)를 올리며 팀의 3연승까지 이끌었다.  

 

박주영이 실패한 빅리그 적응, 황의조는 해낼까

유럽 무대에 진출한 아시아 선수에게 가장 큰 변수는 감독 교체다. 유럽 지도자들이 아시아 선수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만큼 감독이 바뀔 경우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신뢰를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황의조도 예상치 못한 변수로 두 번째 시즌에 고비를 맞았지만, 실력으로 그것을 뛰어넘으며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감독의 성향과 편견에 관계없이 유럽 상위 리그에서 확실히 믿고 쓸 수 있는 골잡이임을 입증한 것이다. 

이런 성과는 황의조의 철저한 자기 관리와 축구에 대한 집념이 만들었다. 1992년생인 황의조는 만 27세에 유럽 무대로 나아갔다. 한두 시즌만 허비해도 유럽 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더 독기를 품고 축구에 집중했다. 어머니와 함께 보르도에서 살고 있는 그는 팀 훈련이나 홈경기가 끝난 뒤에도 남아 혼자 슈팅 훈련을 했다. 팀 훈련의 강도가 높지 않다고 판단되면 추가로 근력 운동과 스트레칭을 하며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애썼다.

골잡이에게 중요한 이미지 트레이닝도 놓치지 않았다. 팀의 패스 루트, 상대 선수 움직임 분석 자료를 근거로 상상한 움직임을 그라운드에서 펼쳐 보였다. 프랑스 현지 언론에서는 “경기장 안에서는 꾸준한 움직임으로 팀을 돕고, 밖에서는 절제된 사생활과 철저한 자기 관리로 늘 준비된 선수”라며 리그앙 최고의 골잡이였던 에디손 카바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비유했다. 

황의조에게 유일하게 아쉬운 건 팀 성적이다. 보르도는 33라운드를 마친 현재 승점 36점으로 16위를 기록 중이다. 강등권인 19위와는 8점 차로 아직 여유가 있지만 팀의 전력에 비해 아쉬운 결과다. 리그 잔류라는 올 시즌의 현실적인 목표를 달성한다면 보르도는 팀 리빌딩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그 과정에서 황의조는 잔류와 이적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 올 시즌 보르도에서 유일하게 리그 상위팀과 다른 빅리그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활약을 펼친 선수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인 아디다스가 손흥민·이강인에 이어 한국인 선수로서는 3번째로 황의조와 글로벌 계약을 맺은 데도 이런 가치 상승이 배경에 있다.

실제로 황의조에 대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와 독일 분데스리가 클럽들의 관심이 전해지는 중이다. 황의조와 보르도는 2023년 6월까지 계약돼 있다. 보르도가 2년 전 감바 오사카에서 영입할 당시 지불한 이적료는 200만 유로(약 26억8800만원)였는데, 현재 황의조의 시장 가치는 400만 유로로 2배가량 상승했다. 10골 이상을 넣어줄 수 있는 검증된 공격수의 몸값치고는 낮아 올여름 황의조를 향한 프랑스 리그앙 상위 클럽과 타 리그 클럽들의 관심은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적을 위한 선택권을 쥐게 될 경우 황의조의 생각이 중요하다. 박주영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박주영은 프랑스에서 처음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하며 가치가 한창 치솟던 2011년 여름 리그앙의 신흥 강호인 릴OSC와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의 러브콜 중 더 크고 매력적인 아스널을 택했다. 하지만 잉글랜드라는 새로운 무대에서의 적응, 팀 내 경쟁 돌파에 어려움을 겪다 유럽 커리어가 내리막길을 걸었다. 황의조 입장에선 이미 적응한 프랑스에서 상위 클럽으로 이동하는 게 더 안전하다. 하지만 30대를 눈앞에 둔 그로서는 자신이 꿈꾸던 빅리그 도전을 마냥 미룰 수도 없는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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