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배터리 주고  백신 받는  ‘스와프딜’이 ‘굿딜’
  • 송창섭 기자·김택환 경기대 특임교수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1.04.26 10:00
  • 호수 164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더나 위탁 생산엔 삼성바이오가 최상”
청와대는 러시아산 백신 도입에 적극적

세계 각국 지도자들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 확보를 자신의 정치적 사활이 걸린 문제로 여기는 분위기다. 예상보다 빠르게 백신이 보급되는 미국의 경우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4월15일(현지시간) 미국 조사연구기관 퓨리서치센터 자료를 인용해 “전임 대통령들의 임기 첫해인 4월 국정 지지율을 보면 트럼프 39%, 오바마 61%, 부시 55%, 클린턴 49%인 반면, 바이든의 지지율은 59%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바이든 행정부가 코로나19 백신 생산·보급을 잘한다는 응답자가 72%를 기록한 것을 들며 “코로나19에 잘 대처한 것이 후한 점수를 받은 이유”라고 분석했다.

반대로 유럽연합(EU)의 맹주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리더십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포르사(Porsa)가 실시한 최근 조사에서 집권 기독민주당(CDU)의 지지율은 26%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8%나 떨어졌다. 독일 내에서는 기민당의 추락 요인을 다각도로 분석하면서 그중 가장 큰 이유로 백신 확보 실패를 꼽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월2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반도체 칩을 들고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관한 행정명령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왼쪽 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1월20일 경북 안동시 SK바이오사이언스 공장에서 코로나19 백신 생산 현장을 시찰하며 완성된 백신을 보고 있다.ⓒEPA 연합·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월2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반도체 칩을 들고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관한 행정명령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왼쪽 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1월20일 경북 안동시 SK바이오사이언스 공장에서 코로나19 백신 생산 현장을 시찰하며 완성된 백신을 보고 있다.ⓒEPA 연합·연합뉴스

IMF “올해 캐나다·미국·영국 경제 밝아”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펴낸 보고서(불균등한 회복의 관리·Managing Divergent Recoveries)에서 4월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올 초 대비 0.5%포인트 올린 6.0%로 발표하면서 연초 이후 각국의 순조로운 백신 보급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들의 선제적 대응을 전망치 상향의 이유로 꼽았다. IMF는 보고서에서 선진국(+0.8%p)의 성장률 조정 폭을 신흥국(+0.4%p)보다 두 배가량 높게 잡았다. 조정 폭이 큰 캐나다(+1.4%p)·미국(+1.3%p)·영국(+0.9%p)의 공통점은 백신 보급이 빠르다는 점이다.

이제 백신은 국민건강의 보루이자 핵심 산업이 됐다. 경우에 따라선 외교안보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독일·영국·러시아·중국 등 백신의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세계 주요 나라들은 최근 하나같이 자국에 유리한 정책과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백신 퍼스트(Vaccine First)’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이 운영하는 ‘데이터로 보는 세상(Our World in Data)’ 통계에 따르면, 4월20일 현재 한국 인구 중 1회 이상 백신 접종을 받은 비율은 3.46%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7개 회원국 중 끝에서 세 번째를 차지했다. 우리보다 비율이 낮은 회원국은 뉴질랜드(2.92%), 일본(1.10%)뿐이었다. 전체 회원국 중 접종률이 한 자릿수를 기록한 국가 역시 우리를 포함해 세 나라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백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백신 확보를 위해선 새로운 정경(政經) 협력 모델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부 대(對) 정부의 협상에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투 트랙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위탁생산이든 기술협력이든 백신 생산의 모든 키는 기업이 갖고 있다. 제약바이오협회 고위 관계자는 “지금 시점에서 고도의 백신 생산 기술력을 가진 대기업, 특히 삼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대형 제약업체 관계자도 “화이자든 모더나든 국내 위탁생산을 하게 된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최상의 파트너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말 문재인 대통령이 스테판 반셀 모더나 최고경영자(CEO)와 통화하는 과정에 삼성 등 대형 바이오 기업들이 크게 기여했다는 후문이다.

백신 생산 계약을 맺는 과정에 정부가 적극 나서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독일은 자국 내 백신 원천 기술회사(바이오엔텍·Biontec)가 있지만 우리의 보건복지부 격인 건강부의 장관이 직접 나서 러시아 당국 및 스푸트니크V 생산 기업과 협상을 진행한 바 있다. 독일은 27개국으로 구성된 EU의 공동구매 시스템 때문에 독자적인 백신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국내 바이오 기업 휴온스글로벌은 4월16일 자사를 비롯해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휴메딕스·보란파마가 참여한 컨소시엄이 러시아 국부펀드(RDIF)와 스푸트니크V 기술이전 계약을 맺고 러시아 백신(스푸트니크V)을 월 1억 병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국적 바이오기업 지엘라파는 한국 내 자회사 한국코러스 생산시설에서 스푸트니크V 백신 1억5000만 회분을 생산할 예정이다. 5월부터 생산되는 이 제품은 전량 러시아가 가져가며 수송 비용 일체를 모두 러시아가 부담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 국부펀드 자금이 대주주로 알려진 지엘라파가 스푸트니크V 생산을 위해 러시아 국부펀드와 계약한 분량은 총 6억5000만 명분이다.

청와대도 스푸트니크V 도입을 관계부처에 지시한 상태다. 하지만 실제 도입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러시아 정부가 동의해야만 지엘라파 한국 공장에서 생산된 백신을 가져갈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러시아 백신은 효능과 관련해 국제적인 인증을 받지 못한 상태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생산하는 경북 안동의 SK바이오사이언스 생산량을 늘리는 방안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백신 개발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우리 정부가 올해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 임상시험을 위해 투입하는 예산은 1528억원가량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영국 등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많지 않다.

 

5월 한·미 정상회담을 ‘백신 정상회담’으로

미국 정부는 모더나에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 노바백스에 16억 달러(약 1조8000억원), 아스트라제네카에 12억 달러(약 1조3000억원), 존슨앤드존슨에 15억 달러(약 1조6800억원)를 투자키로 결정했다. 연구자금 지원뿐만 아니라, 각종 임상 허가 기간을 대폭 축소하는 등 허가 과정도 간소화했다. 그런 면에서 오는 5월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은 ‘백신 정상회담’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초기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정부 내 ‘코로나19 극복위원회’를 설립한 것처럼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백신확보위원회’를 운영할 필요도 있다.

그린뉴딜로 경기부양을 준비 중인 바이든 행정부가 필요로 하는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분야에 우리 기업이 투자하고, 그 대가로 백신을 공급받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바이든 정부는 최근 LG-SK 간 배터리 분쟁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중재안을 만들어냈다. 자동차 패권 부활을 노리는 미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지식재산권 보호’라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기조에는 역행하는 것이지만, 전기차를 핵심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보고 있다. 전기차의 또 다른 핵심 부품인 반도체의 최근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도 바이든 정부엔 고민거리다. 이 부분에서 우리 대기업이 미국 내 공장 신·증설을 추진하게 되면 이는 바이든 정부의 고민거리를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최상의 카드다.

이런 가운데 삼성을 백신 확보의 첨병으로 삼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어 주목을 받는다. 백신 확보를 위해 청와대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을 조심스럽게 건의하려는 여권 일각의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알앤써치가 4월20~2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이 부회장 사면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