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의 ‘첫 번째 정책교사’ 정승국이 말하는 노동문제 해법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23 12:00
  • 호수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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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승국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윤석열, 경제적 마인드 있더라”
“노동시장 이중구조, 불평등·청년실업의 핵심원인”
“연공급을 직무급으로 바꾸거나 연공성 완화해야”

노동·복지 전문가인 정승국 중앙승가대 교수가 요즘 ‘핫’하다.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첫 번째 경제·정책 과외교사로 찾은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왜 윤 전 총장은 많고 많은 전문가 중에서 정 교수를 제일 먼저 찾았을까. 

정 교수는 한국 사회의 핵심적 모순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지목하고 오랫동안 천착해 왔다. 그는 청년 일자리 문제와 불평등·양극화 핵심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많은 언론이 윤 전 총장과 정 교수의 만남을 전했다. 다양한 해석도 나왔다. 중요한 것은 알맹이다. 정 교수는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해법은 무엇으로 보고 있을까. 

인터뷰를 청해 4월21일 식사를 포함해 2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는 당위보다 현실을, 도덕보다 현실을 말하려 애썼다. 용어 하나도 정확하게 쓰려 했다. 통계와 풍부한 해외 사례를 들었다. 직진하는 법이 없었다. 문제를 입체적으로 분석한 후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제기하는 문제를 단칼에 푸는 방법은 없다고 했다. 

ⓒ시사저널 임준선

윤 전 총장의 첫 번째 경제·정책 과외교사가 됐다. 그를 만나본 소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이미지와 실제 모습은 상당히 달랐다. ‘검사님 이미지’가 아니었다. 특히 두 가지가 크게 달랐다. 먼저 권위적인 모습의 검사님은 없었다. 사람을 굉장히 정중하게 대해 준다는 느낌을 시종일관 받았다. 검찰총장 출신에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하는 높은 위치의 사람이지 않나. 몸에 밴 권위 이런 게 보이지 않았다.”

또 예상과 달랐던 모습은 무엇인가.

“‘경제학적인 마인드’가 있었다. 윤 전 총장은 미리 요청했던 연구보고서를 형광펜으로 여기저기 줄을 쳐가며 아주 꼼꼼히 읽어왔다. 무엇보다 질문들이 의외였다. 가령 ‘임금주도성장’과 ‘이윤주도성장’의 차이점과 ‘두 가지 성장모델을 구분하는 실증적인 근거가 무엇인지’ 등을 질문했다. 질문 수준과 포인트가 매우 날카로웠다. 학습의지가 상당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왜 제일 먼저 노동·복지 전문가를 찾아왔다고 보나.

“상징성 때문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만들어내는 모순이 지금 우리 사회에 어떤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그가 동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윤 전 총장이 저와 만난 4시간 동안 최종적으로 정리한 것도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만들어내는 불평등과 양극화, 청년 일자리 문제였다. 그는 이 구조에서 청년들이 연애와 결혼, 출산을 할 수 있는지를 우려했다.”

실제 윤 전 총장은 정 교수와의 만남 사실을 처음으로 밝힌 4월1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청년실업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 이 문제 해결이 국가의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교수가 지적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와 그 해결 방식에 공감을 표시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최근 정승국 교수를 찾아 청년실업 해법 등을 물었다.ⓒ시사저널 최준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최근 정승국 교수를 찾아 청년실업 해법 등을 물었다.ⓒ시사저널 최준필

‘분절화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로 짚는 이유는.

“먼저 용어 정의부터 명확히 하자. 고전적 이중구조론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중구조를 말한다. 현대적 이중구조론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이중구조를 뜻한다. 이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표현한 것이 바로 분절화된 이중적 노동시장이다.”

왜 이 문제가 중요한가.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가 여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임금 격차는 물론 건강 격차도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왜 청년실업이 이토록 심각한가. 바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때문이다. 청년은 중소기업에 취업을 안 하려 한다. 중소기업에 입사하면 연애도, 결혼도 쉽지 않다. 아이를 낳기도 어렵다. 저출산 문제도 여기서 파생된다. 만악(萬惡)의 근원이다.”

최근 화두인 공정과도 연결될까. 

“물론이다. ‘분절화’라는 용어는 노동시장에서 이동이 폐쇄적일 때 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비슷한 능력을 갖고 있더라도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으로 있으면, 대기업이나 정규직 노동시장으로 이동이 쉽지 않다. 상당히 폐쇄적이다. OECD 데이터를 통해서 보면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의 전환율이 꼴찌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청년 취업과 그 가족의 배경이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저소득층 가구의 청년은 고소득층 가구의 청년보다 상대적으로 대기업 취업이 어렵다. 지금 우리 사회엔 금수저와 흙수저가 정말 존재한다.”

문재인 정부는 이 문제를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풀려 했다.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개선하는 유력한 정책적 도구다. 하지만 상당한 한계가 있는 정책수단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청년 저(低)숙련직과 중·고령 취업자의 노동시장 이탈을 초래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한계가 뚜렷하다. 공공부문의 신규 취업을 억제시킨다. 일부 대기업과 공기업의 정규직 과보호 수준은 그대로 둔 채 비정규직 보호만 강조하니 풍선효과가 나타난다. 오히려 현 정부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율이 이전 정부들보다 낮았다.”

정말 그런가.

“통계청장을 지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경제활동인구조사 패널데이터를 분석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그렇다. 2006년 20% 수준이던 정규직 전환율은 2017년과 2018년 각각 10.7%였다. 2019년은 10.4%, 2020년은 11.1%였다. 문재인 정부가 기록한 2017년 이후의 정규직 전환율인 10.7%는 이명박 정부(16.3%), 박근혜 정부(13.1%)보다 낮은 수치다.”

왜 이런 부작용이 나타났을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관점의 문제다. 현 정부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정책 전반에 깔려 있는 인식은 바로 비정규직의 출현 원인을 ‘사용자 책임’으로 본다는 점이다. 이에 규제를 강화하면 비정규직 비율이 떨어질 것이라는 관점에서 정책이 디자인, 기획, 실행됐다. 문재인 정부는 사용자의 탐욕에 의해 마치 비정규직이 남용된 것처럼 인식했다. 비정규직 사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용자의 전략도 있지만, 제도적 요인, 그리고 1987년 이후 주로 대기업 노동조합에 의해 주조된 내부 노동시장의 성격 탓도 있다. 즉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지나치게 많은 임금과 기업 복지, 연공급 등이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바둑을 두더라도 상대방 수가 어떨지 몇 수는 내다봐야 이길 수 있다. 현 정부는 자신들이 어떤 정책을 실행하면 그 상대편에 있는 사용자 측이 합리적 판단과 계산에 의해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를 계산했어야 했다.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어떤 부작용이 있을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있는데 그걸 정부와 진보진영 전체가 안 했다. 이 역시 도덕주의 때문이다.”

연공급도 중요한 문제로 지적한다. 

“우리는 근속에 따라 임금이 높아지는 연공형 임금체계를 갖고 있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몇 연도에 입사했느냐가 중요하다.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짬밥’이다. 연공급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예외적인 임금체계다. 저성장 시기에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기업에 과도한 비용 부담을 안겨 비정규직 사용의 요인이 된다. 무엇보다 연공급은 숙련과 숙련 형성 과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노동자는 신기술을 익히고 숙련도를 높일 유인을 갖지 못한다.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연공급에 대한 반발이 강하게 터져나오고 있다. 기본급 상승 억제와 정년연장을 교환하려 하거나, 공정한 성과급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50대 생산직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노동조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정당한 문제 제기다.”

연공급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해친다고 지적하는 이유는.

“국제노동기구(ILO) 헌장 100조에선 동일노동이란 동일직무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복잡하고 고숙련도를 요하는 노동을 하든 그렇지 않든 입사동기면 동일임금을 받는다. 이게 바로 연공급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직무급의 원리에서 구현 가능하다. 동일한 직무에 종사하면 학력, 연령, 성별, 근속연수와 상관없이 동일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노조들은 연공급은 그대로 두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외친다. 그러니 개념도 꼬이고 문제 해결도 꼬인다.”

문재인 정부도 직무급을 도입하려 했다.

“맞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취임 일성에 공공부문의 직무급제 도입이 담겨 있다. 올해는 다를 것 같다. 정부가 올해 공공부문의 경영평가 항목에 직무급제 도입 정도를 상당히 디테일하게 포함시켰다. 그동안엔 선거가 방해가 됐다. 총선과 같은 중요한 선거가 초접전 양상이 될수록 노조의 힘은 커진다. 풀뿌리 정치가 약하니 노조의 조직력이 선거 때마다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국회의원을 두 번째로 많이 배출한 직능집단이 바로 노조다. 선거 때마다 이 통로를 통해 노조는 직무급 도입을 무산시켰다. 이걸 학술적으로는 ‘내부자 연합’이라고 한다.”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우선 공공부문에 직무급을 도입하고 연공성을 노동시장 전체에서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사업장의 현실에 맞게 다양한 임금체계를 짜야 한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정부가 충분한 설득과 토론을 거쳐 담대하게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기업 단위의 타협이 가능할 수도 있다.” 

좀 더 담대한 대안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해결에 묘수는 없다.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급진적 개혁을 시도했지만 결국 현실의 비정규직 문제를 크게 개선하지 못했다. 윤 전 총장에게도 ‘완만하고 점진적인 해결(smoothed dualization)’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사회 전체적으로 연공급 대신 직무급 또는 연공성 완화라는 여론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청년 일자리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청년실업 문제 해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수요(노동시장의 흡수력)를 만드는 거시경제적 환경이다. 공공일자리 창출을 통해 당장의 청년고용지표를 개선하는 것은 임기응변적 조치다. 특히 높은 수준의 최저임금은 청년실업 문제 개선에 불리하다. 정규직을 과도하게 보호하고 내부자(대기업 정규직)와 외부자(비정규직과 실업자) 사이에 강한 분절 구조가 만들어져 있는 노동시장 구조에선 청년실업 개선을 위한 여러 정책의 효과성이 떨어진다. 노동시장 구조 개혁이 청년실업 문제 해결에 동반돼야 하는 이유다.”

또 다른 대안이 있을까. 

“근로장려금(EITC) 확대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복지급여 수급률 확대 등이 필요하다. 지난 18개월 동안 6개월 이상의 고용보험 가입이 현재 실업급여 수급조건인데 이런 기준을 완화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재정 문제가 생길 텐데, 사용자의 부담을 고려해 조세를 투입할 수도 있다.”

■ 정승국은 누구인가

정승국(64)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동·복지 전문가다. 성균관대에서 사회학과 사회복지학 두 개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우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을 역임했다. 최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처음으로 만난 경제·정책 전문가로 조명 받으며 화제가 됐다. 윤 전 총장은 정 교수가 주진형 열린민주당 최고위원과 열린민주당 유튜브 채널인 '열린민주당TV'에서 청년실업의 원인 등을 두고 대담을 한 걸 보고 그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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