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백신시대] 백신경제, 코로나 시대의 ‘게임 체인저’가 되다
  • 권상집 한성대 교수·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1.04.26 10:00
  • 호수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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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영국·미국 등 일상으로 복귀 ‘시동’…사회 및 경제 패러다임 변화 불가피

세계적으로 감염자 5억 명, 사망자 5000만 명의 피해자를 낸 스페인 독감이 종식된 지 100년여가 흘렀다. 전 세계는 또다시 감염병 공포에 휩싸였다. 바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이 바이러스는 전 세계를 패닉에 빠트렸다. 4월21일 기준으로 감염자는 1억4000만 명, 사망자는 3000만 명에 이른다.

감염 확산을 우려한 전 세계 국가는 서둘러 대문을 걸어잠갔다. 이 과정에서 항공과 여행, 면세점 업계가 쑥대밭이 됐다. 언택트 문화가 확산되면서 대면 업종인 백화점과 마트 등 유통업과 영화 산업 역시 적지 않는 매출 손실을 입어야 했다. 선진국 클럽인 미국과 유럽 등의 ‘충격파’는 더 컸다. 초기 방역 실패로 봉쇄와 해제를 반복하면서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을 입었다. 지난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4%대를 기록했다.

대신 언택트 업종인 이커머스나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게임 산업은 코로나 특수를 누렸다. 제약 및 바이오 업종도 코로나 공포를 등에 업고 상장 때마다 역대 공모 기록을 갈아치웠다. 증시와 부동산 시장으로 갈 곳 없는 자금이 몰렸다. 그 결과 주식과 아파트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과 ‘벼락거지’ 등 신조어가 생길 정도였다.

영국 정부가 봉쇄를 완화한 4월12일 시민들이 런던 소호의 주점과 카페에서 술을 마시고 식사하고 있다ⓒAP 연합

‘나는’ 백신 선진국 아래 ‘기는’ 백신 후진국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백신 보급으로 상황이 급반전됐다. 백신 접종률이 빠른 일부 국가는 이미 일상으로의 복귀를 준비 중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백신 접종률 상위 국가는 이스라엘(61.73%), 영국(48.16%), 미국(38.72%), 캐나다(23.49%), 독일(18.98%), 프랑스(18.07%) 등 순이다.

백신 접종률 1위인 이스라엘은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했다. 조만간 백신을 맞은 외국인 단체관광객 입국도 허용할 방침이다. 독일과 프랑스 등도 백신여권을 도입해 출입국 문턱을 낮출 계획이다. 영국의 경우 코로나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자 야외 술집과 식당의 영업을 재개했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모습을 이제는 쉽게 볼 수 있다. 백신이 코로나19 시대 사회와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5월까지 모든 성인의 백신 접종을 예고한 미국의 경우 2·3월 실업률이 각각 6.2%, 6%를 기록했다. 지난해 4월(14.8%)의 절반 이하다. 3월 소매판매(소비)도 전달 대비 9.8% 늘어났다. 지난해 5월 이후 10개월 만에 최대 상승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당초보다 더 높은 6.4%로 예측했다. 백신 접종률이 빠르기에 올 하반기부터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 경기 확장기로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IMF는 예상했다.

국내 주요 기업 CEO들도 올해 신년사에서 유독 혁신과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코로나19로 모든 산업 지형이 변화되고 오프라인 분야에 중심을 둔 각종 산업이 붕괴되면서 생존과 성장을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코로나19 총력 대응 체계를 수립하면서 백신 수급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 국내 백신 접종률이 2%대로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대면 서비스가 핵심인 관광과 영화 분야에서는 ‘백신경제(Vaccine Economy)’라는 말이 업계 표준이 되어 가고 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가로막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면서 가장 직격탄을 맞은 산업 중 하나는 관광 산업이다. 그러나 글로벌 제약사들이 백신을 발 빠르게 개발하자 유럽의 여행사들은 이를 성장의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 전략적으로 관광 상품에 백신을 포함, 가장 안전한 여행 패키지를 내세워 이를 홍보하고 있다.

관광과 영화, 백신을 성장의 지렛대로 삼다

실제로 노르웨이 여행사 ‘월드 비지터’는 러시아에서 백신을 맞고 오는 패키지 상품 3개를 최근 내놓았다. 몰디브는 관광 효과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에게 백신을 제공하는 계획을 정부 차원에서 발표했다. 백신을 접종한 관광객에 한해 검체 검사를 하지 않고 무제한 입국을 허가하겠다는 것이다. 백신 접종과 함께 관광 산업은 또 한 번의 재도약을 노리고 있다.

관광 산업 못지않게 지난해 가장 타격을 받은 분야는 영화 산업이다. 이 영화 산업도 최근 일부 국가에서 부흥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에서 지난 2월 개봉한 영화 《안녕 이환영》은 개봉 15일 만에 7600억원을 벌었다. 현재 1조원에 가까운 박스오피스 실적을 기록 중이다. 코로나 사태 이전보다 훨씬 많은 관객 동원을 입증한 것이다.

백신 도입이 확산되면서 주가 반등을 기록한 기업 역시 글로벌 콘텐츠 기업 디즈니였다. 올 초 백신 접종과 함께 영화 관람객이 증가하자 홍콩 증시에서도 알리바바픽처스 주가가 30% 이상 폭등했다. 백신이 없던 시절 벼랑 끝까지 몰렸던 영화 및 콘텐츠 산업은 백신 도입과 함께 올해 연말까지 경기 정상화와 흑자 전환이 가능하다는 전문가들의 평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대면 서비스가 핵심인 콘텐츠 산업과 관광 산업은 백신 도입 후 다시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좀 더 다양한 혁신이 발생할까. 대체적으로 전문가들은 백신이 확산된다고 해도 해당 분야에서 다시 예전의 일상을 준비하는 기업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필자가 만난 관련 분야 임원들 또한 백신으로 마스크를 벗는다 해도 기업들이 준비하는 미래는 더 많은 변화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트 백신 시대의 변화에 가장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분야가 콘텐츠 산업인 이유이다. 콘텐츠 산업은 말 그대로 킬러 콘텐츠를 누가 보유하느냐가 해당 산업의 패권을 좌우하는 핵심 역량이었다. 과거 콘텐츠 산업을 도박 산업이라고 부른 이유는 킬러 콘텐츠에 따라 기업의 수익 변동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지난해 공모주 열풍의 주역 하이브(HYBE·옛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경쟁력도 글로벌 아티스트 BTS로부터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 이후 다수의 콘텐츠 기업은 콘텐츠가 아닌 플랫폼에 성장 전략의 방점을 두고 있다. 앞서 언급한 하이브는 방시혁 의장이 직접 상장 기념식에서 “세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기업이 되겠다”고 선언해 업계에서 화제를 낳았다. 유명 연예인을 발굴해 공연과 음반, 방송 위주로 육성하는 기존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와 다른 길을 걷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코로나19가 백신에 의해 사라진다고 해도 아티스트, 아이돌에 의존하면 언제든지 불확실한 환경 변화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이브가 곧바로 글로벌 팬 커뮤니티 플랫폼 ‘위버스(Weverse)’를 만들어 중장기 성장 전략의 초점을 BTS에서 온라인 플랫폼으로 이동시키자 엔씨소프트, CJ ENM, 카카오, 네이버 등이 합종연횡하며 백신 이후의 성장 전략을 플랫폼으로 전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혁신과 변화의 갈림길에 선 글로벌 경제

관광 산업도 백신으로 인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가장 기민하게 준비하는 분야다. 관광 산업은 그 특성상 콘텐츠 산업보다 대면 접점이 훨씬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데 고민이 있다. 지난해 국내 학술지 《관광학연구》에 게재된 ‘포스트 코로나에 대응하는 혁신적인 관광정책 연구’는 백신 이후의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관광 산업이 선제적으로 드라이브 스루 관광 모델 개발 등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올 3월 경주시는 김유신 장군묘에서 보문 일대에 이르는 구간에 드라이브 스루를 통해 벚꽃을 관람하는 일명 벚꽃 관광 정책을 내놓았다. 강릉과 경남 하동에서도 드라이브 스루를 통해 행락객이 차량에서 명소를 감상하는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선보였다. 미래 환경 변화가 점점 예측하기 어려워지는 만큼 관광 산업도 ‘안전’에 방점을 두고 제도 변화 및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호텔경영학연구》에 게재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관광 산업 발전방안 연구’에서는 관광 산업의 핵심인 호텔 프런트 데스크의 모습이 전통적인 대면 방식에서 비대면 결제와 자동화 시스템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리고 호텔에서 주로 진행되던 연회와 컨벤션도 소규모 그룹에 장소를 대여하는 대관 사업으로 향후 전환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비대면의 일상화가 곧 도래할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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