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지사직 사퇴 여부 고민 중…국민의힘 이러다 한 방에 훅 간다”
  • 감명국·이원석 기자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21.05.03 07:30
  • 호수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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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차기 대선 출마’ 선언한 원희룡 제주지사
“차기 대통령은 무조건 통합의 리더십으로 가야”

2010년 10월, 시사저널이 매년 창간기획으로 선정하는 ‘차세대 리더’ 조사에서 원희룡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정치 분야 1위에 올랐다. 2008년과 2009년에 이어 3년 연속 1위였다. 30대에 국회에 입성해 40대에 이미 서울 지역 3선 반열에 올랐던 원희룡은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43세에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해 이명박·박근혜와 맞서기도 했다. 2010년 차세대 리더 순위에서 원희룡 뒤에 이름을 올린 면면들은 이인영, 안희정, 오세훈, 송영길, 나경원, 이광재, 남경필, 최재성 등 그야말로 여야의 기라성 같은 차기 주자들로 총망라됐다. 그중에서도 원희룡이 3년 연속 1위였다.

그러나 2011년 서울시장 후보 경선 탈락과 당 대표 출마 낙선, 2012년 총선 불출마 등으로 나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40대 기수론’을 다투던 경쟁자들은 당에서, 국회에서, 그리고 지자체장으로서 모두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하며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 연일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원희룡 이름 석 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고심 끝에 그는 2014년 고향 제주도로 내려가 도지사 선거에 출마했다. 제주지사직은 그에게 동전의 양면이었다. 행정 경험을 쌓을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지만, 중앙정치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질 수밖에 없는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원희룡에게 제주지사직은 다시 반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는 다시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일찌감치 내년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며 대권 도전에 대한 결의를 다졌다.
4월27일 시사저널과 만난 자리에서 원희룡 지사는 “아직 절반의 성공밖에 못 했다”며 자신의 정치 역정에 대한 아쉬움을 곱씹었다. 대선에 올인하기 위해 제주지사직을 조기 사퇴할 가능성이 있느냐고 묻자 “현재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사퇴)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박은숙
ⓒ시사저널 박은숙

김종인 전 위원장이 떠난 뒤 당이 ‘도로 새누리당’ ‘도로 한국당’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현재 수많은 민생의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런데도 일부에서 (박근혜) 탄핵 부정 얘기가 나오고, 서울·부산시장 당선자들이 대통령을 만나러 가서 한 일성이 전직 대통령 사면 건의였다. 우리 당이 뒤로 가고 있다기보다는 어디가 앞인지 어디가 뒤인지도 모르고 개인 차원에서 하는 언행들이 국민의 질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나.

“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아는 리더십 있는 인물이 나오든지, 특정 개인 인물로 안 되면 과거 한나라당 소장파처럼 그룹이 나서 목소리를 내며 밀고 나가야 할 것이다. 초선이니 뭐니 스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확한 방향성을 아는 것과 혁신적인 마인드, 민심을 읽고 제대로 담으려는 진정한 정치인으로서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지도부나 중진들부터 정신을 차려야 한다. 개혁적 목소리를 내야 하는 초선들도 분발해야 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뚜렷한 방향 제시와 실천 방법을 제시해야 하는데 아직 미약한 느낌이다. 당이 이번 재보선 결과에 대해 자력에 의한 승리도 아닌데, 벌써 승리에 취해 옛날 모습으로 간다면 속된 말로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

기성 여야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 탓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제3지대가 생겨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서 가능하다고 보나.

“김 전 위원장도 얼마 전 경험적 결론을 얘기했다. ‘제3지대는 없다’고. ‘제3당은 일시적으로 만들 수 있지만, 제3당이 성공한 적도 없다’고 했다. (제3지대를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기존 양 진영이 다 무너져야 한다. 민주당이 두 개로 쪼개지거나 국민의힘이 혁신의 가망조차 없는 상태가 된다면 가능하겠지만, 아직까지 그런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내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출마를 결심한 계기는 뭔가. ‘원희룡이어야 한다’는 이유가 있나.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며 두 딸을 길러봤고, 정치인으로서 일하면서 딱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국민의 분노지수가 내려갈 수 있는 역할을 정치가 했으면 좋겠다 하는 것과 다음 세대가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을 만들어야겠다 하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2억 하던 아파트가 8억, 10억으로 뛰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20억으로 뛰었다. 젊은이들이 숨만 쉰 채 연봉을 모아도 넘을 수 없는 벽만 쌓이고 희망이 없는 상황이다. 원희룡은 국민과 다음 세대를 위해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1~2년 사이에 실현 가능한 핵심 문제의 중심을 찌르는 해법에 대해 더 잘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과 전문가들이라면 좌우 진영을 가리지 않고 협치할 것이다. 끝없이 토론하고 배워서 겸손하게 하나의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는 통합 정서, 인간성, 마인드를 갖고 있는 게 바로 원희룡이다.”

부동산 정책 방향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예를 들어 신도시의 경우, 토지공개념에 기초해 공공 땅 위에 세우는 질 좋은 집들을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 원가 공개, 후분양제 등을 통해 싼값에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 토지 값이 부담되는 경우엔 건물만 분양하는 형태도 일정 비율을 넣도록 해야 한다. 세금에 대해서도 무조건 다주택자에게 강하게 부과하는 것이 아닌, 납득되는 부분들에 대해선 보호할 수 있도록 정당하게 매겨야 한다. 대신 불법적인 땅 사재기 등에 대해선 토지공개념을 적극 발동해서라도 막아야 한다.”

현재 야권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윤석열 전 총장에 대해 ‘역대 대통령 당선자 중 선거를 한 번도 안 치러보고 당선된 사례가 없었다’고 평했다. 검증이 필요하다는 뜻인가.

“당선이 된다, 안 된다 하는 얘기를 한 것은 아니다. 윤 전 총장은 평생 검찰이라는 질서 속에 살아온 인물이다. 정치 현장이라는 건 그것과는 전혀 다른 환경과 도전, 변수들이 도사리는 곳이다. 선거를 해 보면 어마어마한 공격과 네거티브가 쏟아진다. 좋든 싫든 선거에선 그런 과정을 통해 남이 가르쳐줄 수 없는, 위험을 줄이는 능력들이 생긴다. 그런 배경에서 자신이 앞으로 증명해 보여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는 의미다.”

반면 또 역대 대통령 당선자를 보면, 선거를 1년도 채 안 남겨둔 시점에서 5%의 지지율도 얻지 못한 후보가 당선된 경우도 없었다. 현재 원 지사의 지지율은 5%에도 못 미치는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과거에 비하면 이번 선거는 변동성이 매우 높은 선거가 될 것이다. 아직 대선주자들 자체가 오리무중이다. 양 진영의 현재 1위 주자들도 기존에 없던 캐릭터다. 전혀 다른 양상의 대선이 펼쳐질 것이다. 지금부터 열심히 앞서 말한 여러 문제에 대해 진정한 비전과 해법을 제시할 계획이다. 야구로 치면 아직 개막전도 안 했다. 여름 야구, 가을 야구가 남았고, 겨울에 가서야 한국시리즈가 펼쳐진다.”

‘86세대’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많은 헌신을 했지만, 기성세대가 된 뒤 지금의 청년들은 586을 비판한다. 원 지사도 586세대에 속하는데.

“현 정권의 586 정치인들은 위선과 내로남불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받는다. 세상이 바뀌고 많은 현실적인 문제가 생기는데도 문제 인식과 해법에 대한 노력과 공부를 하지 않는다. 나도 정말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소장파로 정치를 시작해 20년 가까이 됐다. 연륜은 쌓여가고 있지만, 처음 마음처럼 정치권이 젊은 세대와 호흡할 수 있는 혁신적 방향으로 갔으면 하는 책임감과 열정은 더 불타오른다. 그동안은 절반의 성공만 했다. 이대로 마감할 수는 없다.”

국회의원을 12년 지냈고, 이후 지방행정을 7년 경험했다. 도정은 어떤 경험이었나.

“행정은 일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제주도에 와서 잘못된 인사 관행, 이권을 둘러싼 유착, 부패 등에 대해 우선은 공직사회가 가져야 할 본연의 모습으로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이뤄냈다. 원희룡의 트레이드마크로서 정의·청렴·공정은 양보할 수 없는 가치다. 민주당과도 협치했다. 또 제주도는 중국 자본 유입 등으로 인한 난개발이 심했는데, 투기를 전면 금지시켰다. 전수조사를 실시해 농사 안 짓고 투기한 사람들을 처벌하고, 갭투자 같은 행태를 막았다. 최근 LH 사태 등으로 문제가 커지고 있는데, 제주도는 2014년부터 단속해 이미 예방을 했다. 마지막으로는 미래를 위해 탄소 없는 섬, 전기자동차, 풍력발전, 디지털 인재 육성 등을 위해 노력했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 결과물 내지는 시제품이라도 만들 수 있는 행정 경험이었다. 물론 계란도 맞고, 욕도 많이 먹고, 힘든 부분도 많았지만 내가 세웠던 가치와 약속한 방향에 대해서는 7년간 치열하게 해 왔다. 언제 도청에서 걸어나올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대선 도전을 위해 내년 지방선거 불출마 선언을 했다. 일각에서는 대권 도전에 대한 좀 더 강한 집념의 일환으로 제주지사직을 조기 사퇴하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다양한 의견이 있다. 임기 전에 도지사직을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좀 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사퇴)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것이 국민을 위해 더 큰 헌신을 하려는 사람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원 지사에 대한 주변의 평가를 보면, 어떤 위기의 순간에 과감하게 치고 나가는 결기,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범하는 오판 등에 대해 아쉬움을 지적하는 의견이 있다.

“돌이켜보면 참 아쉽거나 후회되는 장면도 분명히 있었다. 왜 좀 다르게 하지 못했나 늘 반성하면서 제대로 된 용기를 가지고 제대로 된 방향으로 돌파하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분발의 결기를 갖고 있다.”

현재 여권에선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이 지사를 어떻게 평가하나.

“이 지사는 나름대로 여당 내에서 자기 어젠다와 목소리를 내온 사람이다. 그러한 독자적 행보로 국민에게 자신을 각인시킨 것 자체만 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것만 가지곤 안 된다. 이 지사는 권력을 가졌을 때 그 칼을 지나치게 휘둘러온 측면이 있었다. 그런 이 지사가 갑자기 국민 통합을 얘기한다면 와닿겠나. 지금은 진영 논리가 극단화된 위기의 세상이다. 누가 집권하든 광화문에 사람들이 계속 모일 판이다. 그걸 부추기는 대통령을 또 받아들일 수 있겠나. 입만 열면 상대 당을 범죄집단 취급하는데 협조하겠나. 그런 면에서도 차기 리더십은 무조건 통합의 리더십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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