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도 못할 얘기 많네요”…학대 막으려 학대당하는 그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1.05.04 07:30
  • 호수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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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아동보호전문기관과 함께한 96시간…업무는 넘쳐나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가폭(가정폭력)이 있었다는데 경찰은 출동 안 한대요!”

4월21일 오후 5시10분, 서울 성북구 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아보전) 사무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인근 도봉구의 한 집에 출장 나간 상담원이 학대 위험을 알려온 것. 하지만 별다른 행동은 뒤따르지 않았다. “너무 걱정되죠. 그런데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김병익 성북 아보전 관장(46)이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서 상담원은 아동의 할머니 몸에 멍이 든 것을 발견했다. 어젯밤 술에 취한 할아버지로부터 맞은 상처였다. 게다가 할아버지는 아동이 보는 앞에서 구타를 저질렀다. 다행히 세 살짜리 아동에게는 손찌검을 하지 않았다.

상담원은 아동이 사실상 폭력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판단해 경찰·구청에 신고했다. 돌아온 답은 “출동 상황은 아니다”란 것이었다. 당사자의 신고가 없었고, 아동이 직접 맞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지난 3월30일부터 아동복지법 시행령 개정으로 학대 아동은 ‘즉각 분리’가 가능해졌다. 김병익 관장은 “누가 봐도 위기 상황일 때 즉각 분리가 가능한데 그 최종 결정은 행정기관(구청)이 한다”며 “우리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했다.

시사저널은 4월19~22일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에 있는 성북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머물며 직원 회의를 지켜보고 현장 사례관리를 동행 취재했다.ⓒ시사저널 최준필·굿네이버스

아동 앞에서 구타 일어났는데…경찰 “출동 상황 아냐”

권한은 제한적인데 업무량에는 제한이 없다. 시사저널은 4월19일부터 나흘간 성북 아보전에 머물며 업무를 지켜봤다. 이곳에선 매주 월요일 저녁 임시조치를 받은 보호자를 대상으로 교육이 진행된다. 임시조치는 아동학대 행위자에 대해 법원이 재발 방지 차원에서 내리는 명령이다. 월요일인 19일에는 오후 7시부터 3시간 동안 수업이 이뤄졌다. 수업이 끝날 때까진 직원들도 퇴근할 수 없다.

한 상담원은 “수업 중에 ‘내가 왜 이런 수업을 들어야 하느냐’며 화를 내고 나가버리는 경우도 있다”며 “우리는 법원 명령을 대행하는 민간기관일 뿐이라 제재할 권한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날 수업에는 5명의 학대 행위자가 참석했다. 1교시 수업 주제는 ‘화를 다스리는 방법’이었다. 수업을 맡은 상담원은 “우리는 밤에도 당직근무를 서니 화가 가라앉지 않으면 전화해 화풀이를 하라”고 당부했다. 2교시 수업 주제는 ‘역경에 대한 회복력’이었다. 김병익 관장이 “살면서 가장 큰 역경이 뭔가요”라고 참가자들에게 물었다. 초등학생 딸을 둔 40대 여성이 “지금이 가장 힘들어요”라고 볼멘소리로 답했다.

4월20일 낮 12시30분. 권주영 팀장(36)이 사무실을 나와 차를 몰았다. 아보전의 주요 업무인 사례관리를 위해서다. 이는 아동학대 종료 후에 가정방문, 전화상담 등을 통해 재발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다. 원칙상 가정방문은 월 1회 시행한다. 성북 아보전에서 각 상담원이 사례관리를 맡은 가구는 최대 60곳. 한 달 업무일(20일)을 고려하면 하루 3곳은 들러야 한다. 권 팀장은 “보호자가 상담을 원하면 정해진 횟수와 상관없이 만나러 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각종 서류 업무는 별도다.

권 팀장이 아동학대 관련 업무를 맡은 건 올해로 7년째다. 이는 매우 이례적이다. 2019년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아보전 상담원의 평균 근속기간은 2.6년에 불과하다. 과중한 업무가 원인으로 지적됐다. 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점도 거론된다. 권 팀장은 “예전 경기북부 아보전에서 일할 때 사례관리를 나갔는데 아이 아버지가 죽도를 옆에 두고 집 안쪽에 앉힌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상담원들은 혹시 모를 위기 상황을 대비해 보통 대문 가까운 곳에 앉는다.

시사저널은 4월19~22일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에 있는 성북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머물며 직원 회의를 지켜보고 현장 사례관리를 동행 취재했다.ⓒ시사저널 최준필·굿네이버스 

“죽도 옆에 두고 대화”…위험 느껴 떠나는 상담원들

현장업무가 위험하다 보니 상담원들은 2인1조로 출동한다. 권 팀장의 사례관리에는 김아무개 상담원(24)이 동행했다. 그는 경력 1년 미만이지만 벌써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 김 상담원은 “작년 9월 사례관리를 위해 방문한 집에서 아이 어머니가 ‘극대노’를 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고 했다. 이런 상황들이 잦다 보니 상담원들도 ‘상담 지원’을 받는다.

전화상담도 녹록지 않다. 기자는 성북 아보전의 한 상담원이 사례관리를 맡았을 당시 상황이 담긴 녹음파일을 들어봤다. “야이 씨X 전화하지 말라고!” “당신 내가 쫓아갈 거야!” 남성의 목소리는 볼륨을 낮췄는데도 방 안 가득 울려 퍼졌다. 10대 딸로부터 학대 신고를 받은 아버지였다. 그는 “아이와 한 번만 통화하게 해 달라”는 상담원의 부탁을 끝내 무시했다.

다른 녹음파일을 재생했다. 중년의 여성이 상담원의 자녀를 성적으로 유린하는 폭언을 쏟아냈다. 상담원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아보전 상담원으로서 늘 자부심을 가졌는데 가족에게도 못 할 얘기가 많네요.” 상담원은 “사례관리 대상자가 곤란해질 수 있으니 제 이름은 익명으로 해 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4월21일 오후 3시. 정구환 팀장(35)이 차를 몰고 강북구 수유동으로 향했다. 사례관리 가정에 불시 방문하러 가는 길이다. 대면 상담을 하지 못하면 피해 아동의 안전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해당 가정은 앞서 수차례 가정폭력으로 신고 대상이 된 적이 있다. 정 팀장은 방문 전에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안 됐다고 한다. 그는 “사례관리에 3회 불응하면 구청에 보고해야 하고, 이후 행정조치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해당 가정은 이미 한 차례 불응한 상태였다.

정 팀장은 “최대한 행정조치를 받지 않게 하려고 온갖 방법을 써서 접촉을 시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겐 경찰의 수사권도, 구청의 조사권도 없으니 현장에서 무시당하면서도 부딪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 주택에 도착했다. 벨을 눌렀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두 번째 불응이다. 약 30분 가까이 차를 몰고 왔지만 헛수고가 됐다.

상담원들이 대면 상담을 위해 수십 분 동안 이동하는 건 기본이다. 성북 아보전의 경우 성북구 외에 도봉구와 강북구도 관리한다. 관리 대상에는 아이뿐만 아니라 학대 행위자인 성인도 포함된다. 총 인구로 따지면 3개 구에 거주하는 106만 명을 상담원 18명이 관리하는 것이다. 상담원 1인당 5만8000여 명이다. 다른 아보전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김병익 관장은 “서울 내 아보전이 9개인데 서울 인구를 고려하면 기관당 100만 명 넘게 관리하는 셈”이라며 “너무 비현실적인 수치”라고 주장했다. 특히 학대 현장에 긴급 출동해야 할 때는 기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시사저널은 4월19~22일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에 있는 성북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머물며 직원 회의를 지켜보고 현장 사례관리를 동행 취재했다.ⓒ시사저널 최준필·굿네이버스

사명감으로 일하는 그들…”선생님이 큰 도움 돼”

열악한 근무 환경에도 아보전을 지키는 상담원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권주영 팀장은 “학대 행위자나 피해 아동이 우리의 노력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대화의 끈을 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권 팀장과 함께 20일 오후 5시30분 성북구 월곡동의 한 카페를 찾았다. 이곳에서 과거 학대 사건으로 사례관리 대상이었던 한 모녀를 만났다.

기자는 권 팀장과 모녀 간 대화를 옆에서 지켜봤다. 학대 행위자였던 40대 어머니는 권 팀장에게 “선생님 말 한마디가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어머니는 기자에게 “신분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데 선생님이 부탁하셔서 동석을 허락한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학대 피해자였던 고등학생 딸은 “저 시집 가야 하니 (기사) 적당히 써주세요”라며 익살스럽게 말했다. 이들 모녀는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학대가 있었다는 사실이 전혀 떠오르지 않을 만큼 화기애애했다.

김병익 성북 아동보호전문기관장ⓒ시사저널 최준필
김병익 성북 아동보호전문기관장ⓒ시사저널 최준필

▣ “3200만원으로 3개 구 아동 지원…처우 개선 꿈도 못 꿔”

[인터뷰] 김병익 성북 아동보호전문기관장…“유관기관 함께 복지 지원체계 마련해야”

- 아동 학대는 왜 근절되지 않나.

“일반 국민 입장에서도 의아할 것이다. 수년째 돈을 쏟아붓는데 해결될 기미가 없으니. 아동 학대는 유독 한 아이에게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가족 내에 전반적으로 발생하는 스트레스가 가장 취약한 구성원에게 옮겨가기 때문이다. 즉 가족 내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지 않으면 피해 아동을 분리하거나 처벌을 강화해도 또 다른 학대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주나.

“아보전이 자체적으로 가족 중심 상담 등 관계 개선을 위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유관기관이 함께 나서 복지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또 사례관리가 끝난 뒤에도 가족을 대상으로 심층 관리를 이어나가야 한다. 전국적으로 사례관리 종결 가정의 10%는 재학대를 일삼는다는 통계가 있다.”

- 심층 관리할 여건이 되나.

“쉽지 않다. 성북 아보전에 지원되는 국·시비 중 연간 사업비가 약 3200만원이다. 이 돈으로 아이들 심리치료 하고 병원비와 검사료도 내야 한다. 또 업무 특성상 대면 서비스가 많은데 인건비는 한정돼 있다. 처우 개선은 꿈도 못 꾼다. 결국 유동적인 후원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지원되는 총 예산이 연 8억~10억원 정도인데, 최소 50%는 늘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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