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최보기의 책보기]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thebex@hanmail.net)
  • 승인 2021.05.0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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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문장들》ㅣ림태주 지음ㅣ행성B 펴냄ㅣ244쪽ㅣ1만4000원

림태주는 ‘그리움은 서로의 부재를 견디는 방식이므로 곁에 있을 때는 가장 기쁜 기쁨으로 사랑하고, 곁에 없을 때는 심장에 동판화를 새기듯 죽을 것처럼 그리워하면 될 일이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움에 종사하다 그리움에서 퇴직하는 일이라 그리움에서 해방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고픔과 기다림과 외로움의 합체어가 그리움이라 그리움의 뿌리는 외로움’이라고 한다.

“외로움은 어느 순간, 복리로 불어나는 이자처럼 주체할 수 없이 는다. 이 물기 많은 고무주머니는 점점 늘어나다가 통제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터진다. 노인들은 두 가지 형태로 외로움을 드러낸다. 하나는 울음의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침묵의 방식이다. 울음이 양지에 드러낸 대낮의 외로움이라면, 침묵은 음지에 웅크린 한밤중의 외로움이다. 노인들의 입을 보라, 울음과 침묵이 한 입술에 걸려 어느 것이 튀어나올지 종잡을 수가 없다. 오늘은 아버지가 울었다. … …”

이리 말하는 림태주 표 《그리움의 문장들》은 ‘외로움의 문장들’이기도 하다. 외로움이 짙어져 지독한 그리움에 다다르면 그 너머에는 무엇이 기다릴까? 아마도 절망일 것 같은데, 작가는 생각이 다르다. 사랑이 교환적이라면 그리움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이라 의무나 책임이 아니라서 무해하고 무용하다. 그래서 때로 사랑보다 온유하고 오래 참고 유용하다는 것이다. 작가는 또 ‘그리움의 엄마는 동사 <긁다>이다. 나무껍질이나 동판에 긁어 새기는 것이 글과 그림이 되었고, 마음에 긁어 새기는 것이 그리움이 되었다’고 한다.

저자가 책 한 권이나 되는 분량으로 그리움에 관한 자신의 말들을 저러한 문장들로 내리 ‘긁어’ 놓았다. 림태주는 꽤 유명한 글쟁이다. 감동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진 ‘어머니의 편지’는 어머니의 생전 말씀을 그가 유언처럼 문장으로 옮긴 것이다. 어머니의 편지는 ‘아들아, 보아라. 나는 원체 배우지 못했다. 호미 잡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이 천만 배 고되다. 그리 알고, 서툴게 썼더라도 너는 새겨서 읽으면 된다.’로 시작해 ‘나는 너를 사랑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웠다. 내 자식으로 와주어서 고맙고 염치없었다. 너는 정성껏 살아라.’로 끝난다. 그는 또 지난 해 여름을 달구었던 ‘시무7조’와 ‘하교’의 한쪽 당사자로 조은산과 인터넷 논쟁을 벌인 문장가로서 유명세를 탔다.

이번 《그리움의 문장들》은 ‘그리움’이라는 추상어를 벼린 문장들이라 때로는 뜬구름에 달 가듯 관념적이다. 추상형 그리움이 생활밀착형 그리움으로 튼실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 탓에 사색을 싫어하는 말초적 독서가라면 권하기가 부담스럽기도 해 책이 많이 팔릴 것 같지는 않다. 불구하고, 문장가 림태주의 《그리움의 문장들》을 읽다 보니 가객 송창식이 미당 서정주의 시로 노래한 ‘푸르른 날’이 문득 듣고 싶어졌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 …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이런 림태주가 특히 ‘만나고 싶지 않은 선배’가 있다. 책을 읽지 않는 선배다. ‘책을 읽는다는 건 시대를 같이 사는 것이라 책을 읽지 않는 선배는 답답하고 고루해 대화가 금방 바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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