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250만원 주민들에 수억원짜리 집 사라는 LH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1.05.10 12:00
  • 호수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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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인터뷰] 전국 퍼지는 판교發 ‘공공임대 분양 갈등’ 입주민들의 절망…“앞으로 ‘공공’ 단어 안 믿는다”

10년 묵힌 뇌관이 터졌다. 지난 2009년 LH가 공급한 10년 공공임대주택 얘기다. 2018년 말 이들 주택의 분양전환이 시작되자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고 있다. 분양전환 방식이 당초 약속과 다르거나,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분양됐다는 이유에서다. 일부 주민은 10년 동안 정들었던 집을 떠났다. 남은 주민들은 LH와 소송전을 이어가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5월5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공공임대주택 봇들마을 3단지에 LH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① 부산/ 조기분양 사실 감춘 LH…“엄청난 권력 느꼈다”

부산시의 한 공공임대주택은 LH가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해 공급한 곳이다. 김아무개씨(48)는 부인과 세 아이를 데리고 2009년 이곳에 입주했다. 그때만 해도 김씨는 물류 사업가로 가장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그러다 2015년 사업이 기울어 손을 떼야 했다. 지금은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후 자신이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는 걸 알게 됐다. 2013년 아파트 조기분양이 가능했는데, LH가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LH는 2013년 “자금 조기회수 방안 검토가 필요하다”는 감사 지적에 따라 내부지침을 수정했다. 주민들이 입주한 지 5년만 지나도 분양전환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김씨가 바뀐 지침에 따라 조기분양 받았다면 2억2000만원 정도 내고 유주택자가 될 수 있었다. 20만원씩 나가는 월세도 아낄 수 있었다. 하지만 ‘5년 뒤 분양전환 가능’ 사실은 김씨를 포함한 모든 입주자에게 통보되지 않았다. 김씨는 10년을 꼬박 채운 뒤 분양을 받게 됐다. 그 사이 분양전환가는 2억8000만원으로 올랐다.

김씨의 현재 월 수입은 250만~300만원이다. 대출원리금 80만원을 값고 나면 실제 손에 쥐는 돈은 200만원이 안 될 때도 있다. 김씨는 5월4일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외식은 가족에게 말도 못 꺼낸다”며 “차라리 외식하기 힘든 요즘 코로나 시국이 반가울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그 외에 LH는 김씨 아파트를 사기업에 매각했다가 돌려받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2019년 국회 국정감사 때 “부채 감축을 노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씨는 “수년째 LH와 싸우다 보니 때려도 바뀌지 않는 엄청난 권력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시사저널 이종현
김동령 전국LH중소형10년공공임대아파트연합회 회장이 LH의 횡포에 대해 설명하는 인터뷰를 하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② 성남/ 대통령도 못 바꾼 LH…“서민 위한다는 거짓말”

경기도 성남시 판교는 LH가 10년 공공임대주택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공급한 지역이다. 그래서 갈등도 가장 먼저 시작됐다. 5월5일 판교 임대아파트인 산운마을 12단지를 찾았다. 정자에 앉아 있던 주민 신아무개씨(61)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경기도 국회의원 여당이 싹쓸이했는데 왜 여기선 야당이 됐겠어요? 거짓말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옆에 있던 이형춘씨(75)가 “서민 위한 정부라더니 보탬 된 거 하나도 없다”며 거들었다. 순간 주변 주민 서너 명이 끼어들면서 성토장으로 변했다.

지난 2016년 총선 때 문재인 대통령은 판교 유세현장에서 “10년 공공임대주택 분양전환을 5년 임대와 꼭 같은 방식으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5년 임대주택은 주변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10년짜리보다 분양가가 낮게 책정된다. 당시 문 대통령의 지원에 힘입은 김병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분당갑에서 배지를 달았다. 하지만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고, 2020년 총선 때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에게 자리를 내줬다. 그럼에도 정부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국토교통부는 “10년 공공임대주택은 법령에 따라 분양전환하도록 돼 있어 가격을 깎아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LH의 생각도 국토부와 같다.

김지혜씨(62)는 남편과 둘이서 산운마을 12단지에 살고 있다. 김씨는 10여 년째 청소일을 하고 있다. 그 와중에 유방암에 걸려 1년 정도 돈을 벌지 못했다. 남편은 인테리어 쪽 일을 하지만 수입이 일정치 않다. 관절염 때문에 거동도 불편하다. 두 사람의 월평균 수입은 약 350만원. 김씨는 “몸도 아프고 다른 데로 갈 수도 없어 3억7000만원 융자를 내고 일단 아파트를 분양받았다”고 했다.

성남시에 따르면, 분양전환된 판교 임대아파트 1884가구 중 장애인·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은 18%(342가구·2019년 말)다. 김씨는 “아무리 판교 한복판이라지만 분양전환가는 저소득층이 감당하기에 너무 비싸다”며 “집값은 올려받을 생각도 없으니 분양가 상한제라도 적용해 주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분양가 상한제는 건축비와 땅값을 더한 가격 이하로 분양하도록 한 제도다. 김동령 ‘전국LH중소형10년공공임대아파트연합회’ 회장은 “민간 건설사도 중대형 임대주택에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는데, 공기업이 서민을 위해 지었다는 중소형 임대주택을 시세에 맞춰 팔겠다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③ 부천/ ‘평생임대’ 뒤집은 LH…“누가 공공주택 들어오겠나”

윤상준씨(51)는 2009년 약혼녀와 함께 경기도 부천시 팰리스카운티 아파트에 입주했다. LH가 재건축 단지를 매입해 공급한 임대주택이다. 입주할 때 회사에 다니며 월 400만원 넘게 벌었지만 뜻하지 않은 소송에 휘말리며 퇴사하게 됐다. 약혼녀도 떠나갔다. 지금 윤씨는 정육점에서 배달일을 하고 있다. 직장인 시절에 비하면 월급은 반으로 줄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집에서도 내쫓길 판이다. ‘평생임대’를 약속했던 LH가 돌연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

윤씨 아파트의 입주공고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이 주택은 무주택 세대주에게 공급하는 것으로 분양전환하지 않는 임대주택입니다.” 그러나 LH는 입주한 지 3년이 지나자 “2019년에 분양전환하겠다”고 예고했다. 그 사이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분양전환이 금지됐던 재건축 임대주택이 분양전환 가능 대상으로 바뀐 것이다.

윤씨는 4월30일 시사저널과 만나 “이런 식으로 정책을 뒤집으면 누가 공공주택을 믿고 들어오려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임대아파트를 공급했다는 LH가 실은 자신들 적자 메우기용으로 임대아파트를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LH는 1억3600만원에 인수한 윤씨 집에 대해 분양전환가 3억7000만원을 매겼다. 차익이 1억원 이상이다. 그 사이 걷어온 월세 40만원은 별도 소득이다.

윤씨는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은 LH 측 의견을 받아들여 기각했다. LH는 윤씨를 상대로 명도소송을 냈고, 오는 6월11일 결과가 나온다. LH가 승소하면 윤씨는 집을 비워줘야 한다. 그는 “내가 패소하면 LH는 이를 선례로 전국 모든 재건축 임대주택 세입자들을 내쫓으려 할 것”이라며 “앞으로 정책기관 수장이 누가 됐든 ‘공공’이란 단어가 들어간 정책은 절대 안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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