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범죄자 100명 중 99명은 빠져나간다
  • 조해수·유지만·공성윤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1.05.04 10:00
  • 호수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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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아동학대는 범죄가 아니다”

올해는 5월5일 ‘어린이날’이 제정된 지 99주년이 되는 해다. 아동 인권을 위한 기념일이 만들어진 지 100년이 다 돼 가고 있지만, 아동학대는 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지난 4월27일, 국제아동인권센터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위원회, 사단법인 두루, 정치하는엄마들 등 시민단체는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천 아동학대 사건(정인이 사건) 진상조사와 아동학대 근절 대책 특별법안 제정’을 눈물로 호소했다.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이는 우리나라 아동 인권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정인이 사건’의 양부 안아무개씨가 1월13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1차 공판기일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시사저널 임준선
‘정인이 사건’의 양부 안아무개씨가 1월13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1차 공판기일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시사저널 임준선

“어린이였던 우리는 운 좋게 살아남아 억울하게 숨진 아이들 앞에 오늘 이 자리에 섰다. 면목 없다. 부끄럽다. 세상에 맞을 짓이란 없으며 맞아 죽어도 되는 사람은 없다. 부모도, 경찰도, 아동보호전문기관도, 국회도, 국가도, 누구도 묵인하고 방조할 권리는 없다. 살아 있는 우리에게는 오로지 죽음에서 배울 의무만이 남아 있다.”-4월27일 기자회견 中

아이들의 죽음으로부터 우리 사회는 무엇을 배웠을까. 정인이 사건 이후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검찰은 정인이 양모에 대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국회도 움직였다. 지난 2월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정인이법’에 따라, 아동을 학대해 살해한 경우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을 받게 됐다. 그러나 처벌 강화를 얘기하려면 정확한 실태 조사부터 이뤄져야 한다.

“한 해 40~50명의 아동이 학대로 사망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지금까지 ‘국가 차원의 아동학대 사망 사건 진상조사’는 단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 대체 언제까지 아동들이 죽음으로 정치권의 망각을 일깨워야 하는가.”-4월27일 기자회견 中

이와 관련해 대통령 직속으로 ‘아동학대 사망사건 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한 ‘아동학대 특별법’이 발의된 상태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위원회는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진상조사, 기관 및 관계자 대응의 적정성 점검, 아동 보호 및 아동학대 근절과 관련한 개선사항 대책 마련 등을 수행하기 위해 조사 개시를 결정한 날부터 2년 동안 활동할 수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이종현

5년 새 학대·재학대·사망 아동, 3배 폭증

이보다 앞서 시사저널은 보건복지부, 경찰청, 대검찰청, 대법원 등의 자료를 통해 아동학대 실상을 파악했다. 아동학대는 5년(2015~19년) 만에 1만 건대에서 3만 건대로 폭증했다. 재학대 역시 1000건대에서 3000건대로 치솟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망 아동 역시 3배 가까이 급증했다. 또한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는 10년(2010~19년) 사이에 16%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처벌은 참혹할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었다. 아동학대 중 3분의 1만이 형사사건화됐다. 아동학대 3건 중 2건은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심지어 재판까지 가서 형사처벌을 받은 것은 1%에 불과했다.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아동학대 범죄자 100명 중 99명은 벌금조차 내지 않았다는 얘기다.

법무부는 “많은 국민은 112 등으로 신고된 아동학대 사건이 경찰, 검찰, 법원을 통해 형사사법 절차가 진행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아동학대로 인정된 사건 중 약 70%는 아예 형사사건화되지 않아 사법적 조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한국에서 아동학대는 범죄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올라온 보건복지부의 피해 아동 현황에 따르면, 2019년 아동학대 건수는 3만45건이다. 이는 2015년 1만1715건에 비해 3배 가까이 폭증한 것이다. 아동학대 건수는 2017년 처음으로 2만 건을 돌파했고, 해가 갈수록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그래프① 참조).

재학대 건수도 똑같은 모습을 보였다. 2015년 1240건에서 2019년 3431건으로 약 3배 치솟았다. 재학대율은 약 10%로, 이는 학대 아동 10명 중 1명은 또다시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뜻이다(그래프② 참조).

학대로 인해 사망한 아동은 2015년 16명에서 2019년 42명까지 증가했다. 올해도 아동학대 사망 사건은 줄을 잇고 있다. 국제아동인권센터, 정치하는엄마들 등 시민단체는 4월27일 기자회견에서 “국회는 ‘정인이 사건’ 방송이 나간 후 일주일 만에 아동학대 관련 법안만 수십 건을 쏟아내더니 4개월도 채 안 된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하다”면서 “국회가 잇단 아동학대 사망 사건을 망각한 사이에도 죽음의 행렬은 계속됐다”고 비판했다.

만 17세 이하 아동 인구는 약 780만 명으로, 학대 아동 수는 1000명당 약 4명(2019년 기준)꼴이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이 많다. 아동은 다른 피해자와 달리 자신의 피해를 제대로 표현해 구조를 요청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 아동학대가 자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아동학대 3만 건 중 징역형 24건에 그쳐

아동학대 유형을 보면, 정서학대와 신체학대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성학대 역시 6~7%의 비율로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아동 대상 성범죄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2019년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는 1376건이다. 이는 2010년 1180건에서 16.6% 늘어난 것이다. 13~20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 역시 2010년 6218건에서 2019년 7108건으로 14.3% 증가했다(그래프③ 참조).

문제는 아동 성폭력 범죄의 재범률이 높다는 것이다. 13세 미만 아동 대상 성폭력 범죄자의 51.7%가 1회 이상의 전과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21.2%가 성폭력 관련 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는 동종 재범자였다. 13~20세 대상 성폭력 범죄자의 경우, 44.0%가 전과가 있었고 동종 재범자는 21.9%였다. 

상황은 악화되고 있지만 법망은 허술하기만 했다. 2019년 3만45건의 아동학대 중 수사의뢰, 인지수사, 고소·고발 등으로 형사사건 처리된 것은 1만998건에 그쳤다(그래프④ 참조). 아동학대 범죄자 10명 중 7명은 제대로 된 수사조차 받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재판을 통한 최종 처벌은 어땠을까. 형사처벌까지 이어진 것은 361건이다. 아동학대 100건당 1건만이 처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마저도 25%(90건)는 벌금이었다. 집행유예도 38건이나 됐다. 실제로 징역을 산 경우는 24건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학대 아동이 죽어야만 피해자를 단 하루라도 교도소에 가둘 수 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면 보호처분은 1410건에 달했다. 이와 관련해 이수정 교수는 “(보호처분이란) 형사법원으로 가지도 않고, 가정법원에서 아동보호 사건으로 처리한 것이다. 이것은 사건 처리가 됐다기보다는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라면서 "우리사회는 아직도 아동학대를 범죄로 보지 않고 있다. 형사처벌(361건)보다 보호처분(1410건)이 4배나 많은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아동학대 가해자 70%는 친부모

2019년 3만45건의 아동학대에서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는 2만2700건이었다. 무려 73%에 이르는 수치다. 그중에서 양부모를 제외한 친부모의 아동학대는 2만1713건(부 1만2371, 모 9342)으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이와 관련해 이수정 교수는 “아동학대처벌법의 기본 목표가 ‘원가정 복귀’다. 아동학대로 신고되더라도 아동을 분리하지 않고 원가정으로 복귀시키려 한다. 가해자(부모)에게 형사책임을 묻기보다는 일종의 계도나 선도를 해 보겠다는 것”이라면서 “문제는 계도나 선도를 할 사안이 아닌 것도 사건 처리를 못한다는 점이다. ‘정인이 사건’만 해도 3번가량 내사 종결된 사건이었다. 3번이나 신고됐는데,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하지 않고 불기소 의견으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넘겨버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무부 측은 “아동학대 사건을 외부에서 개입하기 곤란한 가정 내 일로 치부하는 경향이 남아 있다”면서 “피해자인 아동과 달리 가해자는 학대 사실을 강하게 부인한다. 이런 ‘힘의 불균형 상황’에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 의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동의 ‘보호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피해 아동 국선변호사’ 제도가 도입됐다. 지난 3월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으로 모든 피해 아동에게 국선변호사가 의무적으로 선정돼,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피해 아동의 권익을 좀 더 두텁게 보호할 수 있게 됐다. 이 법으로 인해 올해 1분기 아동학대 피해자 국선변호사 지원 건수는 1974건으로, 전년 같은 분기 530건에 비해 4배 가까이 증가했다.

美 아보전, 특별사법권까지 보유

“서울 양천, 전북 익산, 경기 용인, 경북 구미, 인천 부평…우리는 왜 그 아이들을 지켜내지 못했을까? 왜 지금까지 학대의 신호를 인지하지 못하고 즉각적인 구조작업을 실시하지 못했을까? 왜 아이가 죽고 사건화돼야만 뒤늦게 개입하는 무책임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나?”-4월27일 기자회견 中

정확한 실태조사 다음에는 예방책과 대처법이 마련돼야 한다. 이때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 지방자치단체, 경찰-검찰, 법원의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 미국의 ‘차일드 프로텍티브 서비스(Child Protective Service)’가 좋은 예다. 여기에는 형사정책 전문가·사회복지사는 물론 심리학자까지 참여하고 있으며, 경찰 못지않은 권한을 가지고 있다. 텍사스의 경우, 법원 명령 없이 아동의 즉시 격리가 가능하며, 아보전은 특별사법권을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수정 교수는 “법원의 역할도 중요하다. 외국의 경우에는 ‘패밀리 코트(Family Court, 가정법원)’가 적극적으로 나선다. 한국에서는 법원이 절차의 가장 마지막에 있지만, 외국은 패밀리 코트가 경찰 바로 다음 단계에 있다”면서 “외국에서는 패밀리 코트가 보호처분뿐만 아니라 사안이 심각할 경우에는 직접 형사처벌도 할 수 있다. 패밀리 코트에 잘못 보일 경우에는 감옥에 갈 수 있는 것이다. 아동학대 가해자들은 생업이 끊기고 감옥에 가게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러니 자신의 행동을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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