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살해범의 대담했던 이중생활… 수사관에게도 ‘거짓 문자’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5.03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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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생존해 있는 것처럼 꾸민 뒤 부모·경찰 모두 속여
경찰, CCTV 확인 제대로 안해…‘부실수사’ 논란 자초
30대 누나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남동생 A씨(20대)가 4월29일 오후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강화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A씨는 누나 B씨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뒤 인천시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 한 농수로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30대 친누나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남동생 A씨(20대)가 4월29일 오후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강화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A씨는 누나 B씨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뒤 인천시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 한 농수로에 유기한 혐의로 구속됐다. ⓒ 연합뉴스

친누나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유기한 뒤 태연히 거짓 진술을 한 20대 남동생이 경찰 수사관에게도 조작 문자를 보냈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이 남동생의 '뒤바뀐 진술'을 파고들지 못해 조기 검거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3일 경찰 등에 따르면,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된 A(27)씨는 초기 수사 단계에서부터 경찰에 거짓 진술을 했고 수사관들에게 직접 꾸며낸 메시지까지 캡처해 보냈다. 

A씨는 그의 부모가 지난 2월14일 인천 남동경찰서 한 지구대에 누나 B씨에 대한 가출 신고를 하자 자택에서 현장 조사를 받았다. 사건 당시 남매의 부모는 경북 안동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A씨만 사라진 누나 B씨와 함께 살고 있었다. 

실종 신고를 접수한 경찰 수사관들은 당일 오후 8시가 넘은 시각에 A씨와 B씨가 함께 살던 인천시 남동구의 아파트를 방문했다. 

당시 A씨는 "누나가 언제 마지막으로 집에서 나갔느냐"는 경찰 수사관들의 물음에 2월7일"이라고 답했다. 수사관들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2월6일 오전부터 7일 오후까지 녹화된 엘리베이터 폐쇄회로(CC)TV를 돌려봤지만 결국 B씨가 나온 영상을 찾지 못했다.

수사관들이 함께 영상을 찾던 A씨에게 "2월7일이 맞느냐"고 재차 묻자 A씨는 "2월6일 새벽"이라고 갑자기 말을 바꿨다. A씨는 그러면서 자신의 진술이 바뀐 것에 대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 "평소 누나가 외박을 자주 했다. 외박한 사실을 부모님에게 감춰주기 위해 2월7일에 집에서 나갔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당일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자정을 넘겨 문을 닫자 누나의 가출 시점이라며 A씨가 재차 번복한 2월6일 새벽 CCTV 영상은 확인하지 않고 철수했다. 이후 시신이 발견되기 전까지도 경찰은 CCTV를 다시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남동생의 범행을 좀 더 빨리 밝혀낼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와 유일하게 함께 살던 남동생의 진술이 어긋나는데도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아 수사 혼선을 자초했다는 이유에서다. 

남동생에게 잔혹하게 살해 당한 뒤 유기된 30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 인천시 강화군 농수로 ⓒ 연합뉴스
남동생에게 잔혹하게 살해 당한 뒤 유기된 30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 인천시 강화군 농수로 ⓒ 연합뉴스

이후 A씨의 은폐 행각은 더 대담해졌다. 그는 경찰이 집에 다녀간 이틀 뒤인 2월16일 오전 카카오톡 메시지를 캡처한 사진을 수사관들에게 직접 문자메시지로 보냈다. 해당 메시지는 그가 같은 날 오전 5시22분께 누나로부터 받았다는 카톡 메시지였다. 메시지에는 '너 많이 혼났겠구나. 실종 신고가 웬 말이니.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라고 적혀 있었다.

며칠 뒤 카톡 메시지에는 A씨가 '부모님에게 남자친구 소개하고 떳떳하게 만나라'고 하자 누나는 '잔소리 그만하라'고 답장했다.

경찰 수사관들까지 속아 넘어간 이 메시지는 A씨가 누나의 휴대전화 유심(가입자 식별 모듈·USIM)을 다른 기기에 끼워 혼자서 주고받은 대화였다. A씨는 누나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부모까지 속여 경찰에 접수된 가출 신고를 지난달 1일 취소하도록 했다. A씨 부모는 지방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동생의 거짓말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인천 남동서 관계자는 "카톡으로 누나와 주고받은 메시지를 남동생이 캡처해서 수사관에게 보내줬다"며 "'동생이랑은 연락이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더는 의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대한 열심히 수사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가 속았다"고 덧붙였다.

A씨는 지난해 12월 중순 새벽 시간대에 자택인 인천시 남동구 한 아파트에서 친누나인 30대 B씨를 흉기로 수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해당 아파트 옥상에 10일간 누나의 시신을 방치했다가 같은 달 말께 렌터카를 이용해 인천시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에 있는 한 농수로에 유기했다.

B씨의 시신은 농수로에 버려진 지 4개월 만인 지난달 21일 발견됐다. A씨는 시신이 발견된 후 자신의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접속, 관련 기사를 검색한 정황도 포착됐다. 경찰이 프로파일러(범죄분석관)를 투입해 조사한 결과 A씨는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 성향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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