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전폭적 지지 필요한 이재명…송영길은 화답할까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07 10:00
  • 호수 164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심-민심 갈등이 드러낸 민주당의 민낯
유능함 증명해야 신뢰 회복…‘비전 경쟁’이 마지막 기회

이번 4·7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은 크게 두 가지다. 내년 대선에서 정권을 교체할 수도 있다는 국민의 강력한 경고, 그리고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유능함을 증명하라는 명령이다. 민주당으로선 2020년 4·15 총선에서 180석을 휩쓴 지 불과 1년 만의 참패다. 탄핵 이후 진보 쪽으로 기울었던 스윙보터인 중도·무당층이 다시 보수 쪽으로 기울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선거 패배 후엔 후폭풍이 있기 마련이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패배 원인을 짚는 과정은 가혹하다. 자기 살을 도려내는 아픔이 있다. 많은 언론과 전문가는 정권심판론이 강하게 작동한 이유로 민주당의 실력(무능)과 태도(내로남불)의 문제를 꼽았다. 4·7 선거 후 한 달 넘게 민주당을 지배한 이슈는 ‘당심-민심 논쟁’이었다. 의원들은 청와대와 정부가 그동안 먹고사는 민생 문제를 소홀히 한 채 검찰 개혁 등에 지나치게 매달렸다고 반성문을 썼다. 반면 당원들은 검찰 개혁에 몸을 사린 의원들이 선거 패배를 빙자해 내부 총질을 한다고 성토했다. 최근엔 친문 성향의 열성 당원들이 의원들에게 보내는 ‘문자폭탄’을 둘러싸고 내홍에 휩싸이기도 했다. 

문제는 당심-민심 갈등 자체가 아니다. 이 갈등을 풀어나가는 민주당의 실력과 태도다. 선거 패배 이후 지난 한 달간 민주당의 모습에선 “민주당의 적은 민주당”이라는 말이 왜 여의도 정가에 회자되는지 잘 보여줬다.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는 태도는 여전했고, 갈등을 관리할 리더십은 부재했다. 새 지도부를 선출했지만 흥행에 실패했다. 친문(親文)-비문(非文)이란 계파 갈등만 노출시켰다. 무엇보다 내년 대선을 향한 비전과 정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LH 사태와 가상화폐 이슈 등에 대응할 때도 여전히 아마추어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인사 참사’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민주당의 선거 패배 원인을 그대로 노출시킨 지난 한 달간의 모습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신임 대표(왼쪽)와 여권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 이재명 경기지사ⓒ시사저널 박은숙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신임 대표(왼쪽)와 여권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 이재명 경기지사ⓒ시사저널 박은숙

리더십 부재가 키운 당심-민심 갈등

‘문자폭탄’을 두고 논란이 있긴 했지만 당심-민심 논쟁의 본질은 정당 민주주의와 관련이 있다. 노선 차이를 두고 논쟁하는 건 정당의 건강한 모습이다. 그리고 정당의 의사결정 권한이 위(당 지도부와 의원)에서 아래(당원)로 내려오면서 발생한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논란이 되고 있는 강성 당원들의 모습은 다른 표현으로 하면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했던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다. 어찌 보면 민주적 정당이라서 나타나는 갈등이다.

당심-민심 논쟁이 갈등 폭발로 나타나는 진짜 이유는 리더십 부재에서 찾아야 한다. 민주당 지도부는 당원들이 요구하는 다양한 의제를, 대선을 내다본 전략과 우선순위에 맞게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했다. 지도부 교체기라서 한계가 있었다고 해도 전당대회에 나온 후보들 모두 그 역량과 의지가 부족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민주주의의 제1원칙은 선거로 권력을 선출한다는 것이다. 민심을 얻어야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 즉 당심과 민심의 교집합을 넓혀야 집권할 수 있다. 민주당 강성 당원들의 목표도 결국 정권 재창출이다. 새로 선출된 송영길 지도부의 큰 숙제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김기식 더미래연구소장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만하다. 김 소장은 최근 한겨레 기고에서 “현실정치에서 민심과 당심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조화와 균형의 문제다. 그러나 우선순위는 있다. 민심과 민생이다. 특히 결정적인 국면에선 민심을 기반으로 당심을 설득해 내야 한다. 그것을 해내는 자가 리더”라고 했다. 

김 소장은 태도의 문제도 짚었다. “민주당은 여전히 집단적 비주류 의식이 지배한다. 스스로를 여전히 우리 사회의 강고한 기득권 주류에 맞서는 비주류로 인식하고 비주류적 태도를 보인다. 왜곡된 비주류 의식이다. (중략) 비주류는 문제 제기로도 충분하지만, 주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비주류가 정치적으로 싸우는 것은 당연하지만, 주류는 이견을 포용하고 조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실 앞서 답을 낸 사람이 있다.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의 4월19일 수석·보좌관회의 발언이다. “국민의 평가는 어제의 성과가 아니라 오늘의 문제와 내일의 과제에 맞추어져 있다. 정부는 무엇이 문제이고 과제인지 냉정하게 직시하고, 무거운 책임감과 비상한 각오로 임해야 한다. 공직기강을 철저히 확립하고, 더욱 낮은 자세로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마지막까지 부패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유능해야 한다.” 답은 나왔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송영길 신임 대표의 최대 과제는 내년 3·9 대선에서 승리해 민주당 정권의 재창출을 이뤄내는 것이다. 10개월의 대장정이다.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다. 당장 민심 이반이 심상치 않다. 탄핵 이후 민주당이 전국 단위 선거에서 4연승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보수 야권은 헌정체제를 운영할 자격이 없다’는 민심의 엄중한 선고였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번 4월 선거에서 참패했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무능에 대한 실망’ 수위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선후보 경선에서 비전 경쟁의 장 열어야

기회의 문은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경선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유력 대선주자들의 비전을 전면에 내세워 경쟁시키는 것만큼 좋은 반전 카드가 없다는 얘기다. 실제 민주당 대선주자들의 비전은 만만치 않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소득’, 이낙연 전 대표의 ‘신(新)복지체제’, 정세균 전 총리의 ‘분수경제’. 여기에 김경수 경남지사의 ‘메가시티’도 있다. 모두 시대사적 전환기를 맞은 대한민국호의 나침반으로서 제시된 비전들이다. 특히 이 정책비전들은 한국 정치사에서 처음으로 재정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지금의 미증유 위기에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렇게 보면 송 대표의 숙제는 계파 갈등 관리나 8월말~9월초로 예정된 경선을 연말이나 내년 초로 연기해야 한다는 ‘경선 연기론’을 질서 있게 조율해야 하는 데서만 그치지 않는다. ‘지금 국민들은 무엇을 가장 원하고 필요로 하는가’라는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비전 경쟁을 국민에게 선보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문재인 정부가 한계를 보인 불평등과 불공정을 해소할 해법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송 대표와 대권주자들 간 미묘한 관계가 설정될 수 있다. 현재 여권에서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지사의 ‘기본 시리즈’ 공약은 한국에서 처음 실험되는 정책이다. 비전은 정책으로 완성된다. 송 대표가 이 지사의 공약과 비전을 당에서 채워주는 방향으로 갈지, 견제구를 던지며 검증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비주류’인 이 지사 입장에서도 당의 지지는 필수다. 자신의 비전을 정책으로 입법화하려면 송 대표의 도움은 필수적이다. 민주당은 지금 ‘원팀’을 강조하고 있다. 원팀은 비전과 정책의 화학적 결합으로 완성된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