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잔치는 그들이 끝낸 거예요, 최근에”
  • 박찬용 작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08 11:00
  • 호수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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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시집 《공항철도》의 운동권 정치 비판
그의 눈엔 모든 게 시의 재료 “인생은 맛있는 것만 골라 먹는 뷔페가 아냐”

나는 한국문학이나 시와는 큰 상관이 없는 라이프스타일 잡지의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어디 가면 뭐가 멋있고 어느 동네에서는 뭐가 맛있고 그런 거나 말하는 필부다. 그런 생활 속에서 내가 최영미라는 이름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2019년 초의 재판이었다. 최영미와 고은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법원은 최영미의 일기를 근거로 고은이 성추행한 게 맞다고 판단했다.

그 일기의 구절을 아시는 분이 계시는지? ‘광기인가 치기인가 아니면 그도 저도 아닌 오기인가.’ 나는 이 구절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인간 언어가 생각의 표현이고, 시어가 그 생각을 압축시킨 말이라고 했을 때, 시인의 구절은 정확하면서도 낭만적이고, 효율적이면서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그가 공전의 인기를 끈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제목부터가 한 시대 전체를 8글자로 정리해 버린 것 아닌가.

ⓒ시사저널 임준선
ⓒ시사저널 임준선

“완벽해 보이는 것들이 제일 위험해”

“잔치는 그들이 끝낸 거예요. 최근에. 몇 달 전에. (그렇게) 알아들으시라고. 난 더 이상 설명하고 싶지 않아요.” 2019년 말, 최영미가 경기도 일산의 어느 카페에서 검지손가락을 총처럼 겨누며 내게 말했다. 시인과의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최영미는 당시 내가 필자로 일하던 ‘에스콰이어’의 섭외에 응해 주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사진촬영 포함해 2시간 정도를 쓸 것 같다고 했지만 그날따라 바빴는지 모든 게 한 시간 안에 끝났다.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좋은 장소를 봐두었지만 최영미가 바쁘고 추웠기 때문에 횡단보도 앞에서 찍었다. 춥긴 추운 날이었다.

이런 건 촬영 현장에서 늘 일어나는 일, 나는 그래도 그날 인터뷰가 무척 좋았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보기 힘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원칙을 예민하게 세워두고, 그 원칙에 따라 행동으로 살아가는 개인들이다. 최영미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기의 룰이 확고하고, 확고한 룰 사이로 세상을 이야기하는 자신만의 표현이 생길 뿐이었다. 그 표현이 너무 훌륭하기 때문에 자신의 표현이 시대의 간판이 되는 것이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구절처럼. 아니면 ‘박정희가 유신을 거대하게 포장했듯이 / 우리도 우리의 논리를 거대하게 포장했다 / 그리고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시대의 우울》 같은 구절처럼.

‘완벽해 보이는 것들이 제일 위험해.’ 시인의 말과 글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번 인터뷰에서 내게 했던 이야기 중 하나가 그의 일곱 번째 신작 시집 《공항철도》의 시 한 구절로 등장했다. 한때 동지였다가 기득권으로 타락한 586운동권을 향한 쓴소리였다. 최영미 시 특유의 압축률은 여기서도 잘 드러난다. 최영미는 결코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고, 동시에 신문 뉴스에 나올 법한 단어를 시의 세계로 옮겨오는 데 거부감이 없다. 그래서 ‘그가 운전하는 차에 민주주의와 자유를 싣고 / 드라이브를 즐기던 / 그때가 나의 전성기였지’ 같은 표현이 나온다. ‘옛날에 순수하던 누구와 차를 타고 어디에 가서 뭘 했을 때 좋았고 우리는 젊었고…’ 같은 일들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대신 아주 깔끔하게 해야 할 말들만 발라낸 것이다. 시인에게 비할 수는 없으나 나 역시 원고를 만드는 직업을 가진 자 입장에서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기술이다.

‘그래서 걔 누군데?’ 보통 독자에게는 이 질문이 더 중요하실지도 모른다. 《센티멘탈》에는 어느 인물의 이니셜 K와 몇 가지 디테일 요소가 나온다. K가 이름인지 성인지, ‘소년의 나르시시즘을 버리지 못한’이라는 구절에 어울릴 사람은 누군지, 그런 게 궁금할지도 모른다. 물론 최영미는 관록의 문학인, 그의 시 《최후진술》처럼 아주 세련되게 빠져나간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 진실을 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시대에 굴복하지 않는 솔직하고 멋있는 시인

그래서인지 추천사를 쓴 고종석은 최영미를 정치시인이라 칭했다. 고매한 고 선생께 토를 달 생각은 없으나 나는 최영미와 같은 세대가 아니라서인지 이 시집 속의 시들을 정치시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 눈에 이 시는 그저 최영미라는 시인이 최영미라는 렌즈로 본 세상에 가까워 보인다.

제목부터가  《정치》인 시가 아주 재미있는 예다. 이 시는 W. B. 예이츠의 시 《정치》와 같은 구조를 쓴다. 이 시의 내용은 제목과 달리 ‘당장 내 눈앞에 더 중요한 게 있으므로 난 정치에 큰 관심이 없다’이다. 예이츠는 눈앞에 서 있는 여자 때문에, 최영미는 세상의 맛있는 것들 때문에 정치에 일절 관심이 없다. 나는 이런 개인주의적인 면모가 최영미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최영미가 예이츠보다 더 좋았던 부분도 있다. 최영미판 《정치》의 마지막 행은 ‘오! 나 다시 젊어져 잇몸 걱정 없이 바게트 씹어 봤으면!’이다. 바게트의 딱딱함을 걱정하는 잇몸을 소재 삼아 자신의 현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모두 젊은 게 좋다고 하고, 《내 나이가 어때서》 같은 노래로 노화를 부정하려는 시대에 역시 최영미다운 솔직한 태도가 보여 좋았다. 글 안에서 솔직한 건 정말 용맹한 일이다. 누구나 글 안에서는 손쉽게 거짓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시대든 환경이든 굴하지 않는 솔직함이야말로 최영미 시의 아름다움이다. 정치는 최영미 시의 소재 중 하나일 뿐, 그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시의 재료가 된다. 코로나 시대의 마스크도, 병원에 계신 모친도, 바깥에 나가지 않은 날도, 가시를 잘 바른 생선전도, 모두 최영미에게는 시의 소재다. 그의 말처럼 ‘인생은 맛있는 것만 골라 먹는 뷔페가 아니’(원죄)고, 최영미는 자기 시 역시 그렇게 쓰고 있다.

“이 잔이 왜 나에게 왔을까 싶었어요.” 2년 전 ‘에스콰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최영미는 이런 표현을 썼다. 고은에 대한 시를 썼을 무렵의 일을 말하면서였다. 최영미는 이른바 ‘문단’에 가깝지 않은 시인이지만 그는 해야 할 말과 써야 할 글이 있을 때 물러서지 않았다. 최영미는 해야 할 말은 해 버리고 마는 사람이다. 과학자의 이론이나 정치가의 제국이 생기기 전, 예민한 작가들은 문학이라는 가설 안에서 자유롭게 세상을 예측하고 정리하곤 한다. 그거야말로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인 작가의 영원한 업무일지도 모른다. 그 말로 인해 어떤 일이 생긴다 해도. 최영미 역시 그렇게 살고 있다

나는 생각해 보면 그 모습을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멋있는 것들을 다루는 라이프스타일 잡지에서 최영미를 인터뷰해도 손색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같다. 내게 최영미는 강인한 시인, 혹은 무슨무슨 주의자라기 전에 그냥 용감하고 통찰력 있어 멋있는 작가다. 이 글이 최영미의 멋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박찬용은 누구

잡지 에디터. 여행, 고가 시계, 브랜드 등 현대 도시사회의 소비문화를 구경했다. 그때 본 것들로 《요즘 브랜드》 등의책을 냈다. 1983년생. 서강대 영미어문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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