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로 변신한 구준엽·하정우·하지원
  • 반이정 미술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16 13:00
  • 호수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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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에도 아트테이너 전시회 ‘북적’

강석우, 조영남, 구혜선, 심은하, 강리나, 구준엽, 하정우, 빽가, 솔비, 박상원, 이병진, 임하룡, 권상우, 유준상…. 연예인이자 미술가로 거론되는 이들을 당장 떠오르는 대로 적어봤다. 만일 전수조사라도 한다면 연예인 미술가 명단은 한 페이지를 채우고도 남는다. 해외 사정도 다르지 않다. 영화배우 앤서니 퀸, 데니스 호퍼, 클린트 이스트우드, 음악가 폴 매카트니, 밥 딜런, 데이비드 보위, 마일스 데이비스처럼 국제적인 인지도의 셀럽도 미술 창작물을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순수예술을 창작하는 극소수의 대중 예술가를 ‘아트테이너(artainer)’라는 신조어로 칭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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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엽 작가ⓒ레이빌리지 제공

문턱 높은 미술 전시회의 흥행에 촉매제 역할

창작의 주체가 아니어도 연예인은 문턱 높은 미술 전시회에서 주목 효과를 끌어올리는 촉매제가 된다. 지난해 초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커넥트, 비티에스(Connect, BTS)》나 2015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피스마이너스원(PEACEMINUSONE)》은 각각 방탄소년단과 지드래곤을 주제로 정해 팬들을 전시 관객으로 빨아들이려고 기획된 ‘블록버스터급’ 전시회였다.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쇼룸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의 4층에는 작은 갤러리가 있는데, 소의 해를 맞아 《우행 牛行_Amulet》이란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전업 미술가에 더해 3명의 연예인 구준엽, 하정우, 하지원을 출품 작가로 초대했다.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이 손수 그린 그림이라는 소문 때문에 필자가 전시장을 방문했을 때도 한 지상파 방송에서 전시를 취재하고 있었다. 이 전시에 초대된 하정우는 5월초 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마친 직후였을 만큼 미술가로도 바쁘다. 명성이 덤으로 준 집중 효과 때문에 아트테이너의 전시회는 상반된 찬반 논쟁을 일으켰고,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제시돼도 여론과 언론이 주시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판촉으로 이어진다. 칭찬이건 욕이건 득인 게 연예인 미술 전시다. 이들에 대한 반감은 아트테이너의 원조 격인 가수 조영남의 대작(代作) 사건이 터진 2016년에 부풀어 오르기도 했다.

아트테이너를 향한 상반된 평가는 모두 극단적이어서 호소력도 커진다. 먼저 호평. 연예인 미술가가 미술 대중화와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는 의견. 과연 그럴까? 후술하겠지만 전체 미술판에서 연예인 미술(가)이 차지하는 파이가 다르다. 전혀 다른 미술세계라는 얘기다. 미술시장 관계자들은 투자를 위해 연예인의 그림을 구입하는 이는 드물다고 입을 모은다. 해당 연예인의 인기와 그가 제작한 작품의 수요가 비례관계를 맺기에 작품 가격이 안정적이지 못한 만큼 투자 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거다. 2020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이 났지만 조영남에 대한 반감이 그의 그림에 대한 수요를 실추시킨 게 대표적인 예다.

다음은 혹평. 미숙한 완성도에 비해 연예인의 인지도 때문에 작품이 과대 평가받는다는 지적이다. 그런 불공정함이 악전고투하는 전업 미술가에게 박탈감을 준다는 의견. 과연 그럴까? 연예인의 미술세계가 전체 미술판에서 다른 파이라고 앞서 지적했듯이, 연예인 그림의 주요 구입자는 팬층이라고 알려져 있다. 작품의 구매는 팬심을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거다. 시장이 다르다는 얘기다.

가장 자주 거론되는 혹평을 보자. 완성도에 비해 작품이 과대 평가받는다는 불평은 어떻게 봐야 할까? 아트테이너의 작품을 퉁쳐서 어떠하다고 규정할 순 없다. 개인마다 완성도의 편차가 크고,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말하자면 누구는 봐 줄만 하지만 누구는 형편없기도 하다. 다만 연예인 화가의 간판 스타급인 구세대와 신세대를 한 명씩 골라 얘기해 보자. 작품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기준 중 하나는 자기 스타일을 확보했느냐다.

원조 아트테이너 조영남은 대법원의 무죄 확정 판결에도 2016년 대작 논란으로 5년여의 고초를 겪으며 국민적 반감의 표적에서 여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인간적인 호오를 떠나 화투를 미술 재료로 사용한 전례 없는 자기 스타일을 확보한 경우인 것은 맞다. 이처럼 자기 스타일을 구축한 미술가는 조수를 고용해 다량의 완성도 높은 작업을 생산하는 게 미술계에선 정당하게 굳은 관행이다. 그는 1973년 첫 개인전을 연 후 미술계의 주요 전시회에 초대된, 데뷔 50년을 목전에 둔 중견 작가가 맞다.

하정우는 어떨까? 코로나19 사태로 미술시장이 얼어붙었지만, 5월초 끝난 그의 개인전에서는 전시 초반에 출품작 대부분이 팔렸다. 잭슨 폴록이나 장 미셀 바스키아의 작품을 따라 그리면서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한 게 2003년. 첫 개인전을 2010년 열었고, 2013년 뉴욕 전시에선 출품작이 모두 솔드 아웃되기도 했다. 잘 팔린다고 완성도까지 인정되는 건 아니다. 이목구비를 도드라지게 묘사한 검정 윤곽선, 물감의 재질감을 화면에 부각시키는 촉각적인 처리, 표현주의적 색채 등 딱 보고 알아볼 만한 스타일을 갖춘 건 맞지만, 미숙련된 데생 솜씨나 어딘지 바스키아의 아류 같은 직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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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원 작가ⓒLG전자 제공

미술계 저변 확대 vs 인지도 장사 

그렇다면 과대 평가된 연예인 미술이 전업 미술가의 사기를 꺾는 불공정한 폐단이라는 일각의 불평에 나도 동감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연예인 미술(가)이 미술판에서 차지하는 파이는 다르다는 말을 이제 세 번째 하려 한다. 연예인의 창작물은 미술이라는 동일한 명칭을 쓸 뿐 다른 종류의 미술세계다. 연예인의 미술품은 조형적 가치와는 별개로 연예인의 명성이 완성도에 기여하는 미술이다. 그 점이 불공정한 게 아니냐고 따져 묻는 이들이 있을 게다. 요 몇 년 사이 전가의 보도가 된 ‘성적 대상화’로 비난받는 걸그룹을 비유해 답하련다. 흔히 걸그룹들이 결여하고 있는 가창력을 갖춘 평범한 미모의 여성들로 진용을 짠 ‘정치적으로 올바른’ 걸그룹을 구성했다고 치자. 이게 될까? 시장에서 안 팔리는 건 둘째 치고 완성도가 확보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걸그룹은 음악의 원점인 가창력과는 별개로 구성원들의 섹스 어필이 완성도를 좌우하는 대중음악이기 때문이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로움’이라는 올바른 슬로건이 세속의 삶에서 진실로 구현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세속의 질서가 이럴진대 일상에서 탈출하는 해방구인 예술세계를, 평등·공정·정의의 잣대로 바라보고 평하려 들면, 예술 감동은 작동을 멈추고 다만 각박해진다. 정치판이 그렇듯 미술판도 각기 다른 미학을 지향하는 미술들이 공존하고 있다. 연예인의 미술은 개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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